“50여 년 전 작은 공으로 해빙된 미·중 관계가 큰 공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
주펑(朱鋒) 중국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의 얘기다. 1970년대 초 작은 공(탁구공)을 주고받는 ‘핑퐁 외교’로 적대 관계를 청산했던 미국과 중국이 현재 큰 공(풍선)을 놓고 대치하고 있다. 북미 대륙에 출몰한 중국산 풍선을 미국은 지난 4일 전투기를 동원해 격추했다. 미국은 문제의 풍선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정찰 풍선(Spy Balloon)’이라며 영토 침범 행위로 간주해 분노했고, 중국 측은 자국 기업의 민간 관측 자산을 폭파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중쏘공’(중국이 쏘아올린 큰 공)이 미·중 관계를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한 셈이다.

중국 국기 무늬와 풍선, 미국 국기 무늬와 미국 국토를 합성한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신문 옵서버는 이를 놓고 지난 5일 사설에서 “미국과 중국의 매파들이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첨단 군사위성과 스텔스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21세기다. 도대체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떠다니는 풍선을 놓고 왜 이런 섬뜩한 전망을 내놨을까.
“문제는 풍선이 아니다”
옵서버는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미·중 관계의 위태로움을 드러냈다”며 “정찰 풍선 뒤에 숨겨진 진짜 위협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양국 간 상호 신뢰와 시의적절한 의사소통, 냉철한 판단 등이 한심할 정도로 부족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게 옵서버의 진단이다.
옵서버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을 앞둔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고의로 풍선을 띄웠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그보다는 실무진의 실수이거나 미국과의 화해 분위기를 바라지 않는 강경파의 사보타주일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찰 풍선이 미국 영토로 들어간 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뜻은 아니며 우발적 ‘해프닝’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해프닝은 계획된 정책만큼 위험할 수 있다. 옵서버는 특히 그것이 세계 1, 2위의 최강대국이며 글로벌 패권 경쟁을 이유로 곳곳에서 대립하고 있는 두 나라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웃고 넘어갈 수 없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