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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기안84 '개고생'에 힐링…'환장'하는 여행 예능이 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티빙 '두발로 티켓팅',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KBS2' 걸어서 환장 속으로'. 사진 티빙, MBC, KBS2

티빙 '두발로 티켓팅',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KBS2' 걸어서 환장 속으로'. 사진 티빙, MBC, KBS2

뉴질랜드 테카포 호수(티빙 ‘두발로 티켓팅’)부터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프랑스 몽생미셸(KBS2 ‘걸어서 환장 속으로’)까지. 최근 첫선을 보인 예능 프로그램들에는 평소 자주 접할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들이 넘실거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국경이 가로막힌 지 만 3년. 지난해 중순부터 서서히 세계 각국의 빗장이 풀리면서 바야흐로 예능계에도 ‘여행 예능’ 열풍이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팬데믹 이전에도 여행은 예능의 단골 소재였지만, 요즘 트렌드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즐겁게 놀고 먹고 구경하는 여행 대신 고생하고 좌충우돌하는, 여행의 현실적인 측면을 좀 더 부각하는 추세다.

지난달 20일 첫 공개된 티빙 ‘두발로 티켓팅’은 제목 그대로 연예인 출연진들이 ‘두발로’ 고생해 미션을 수행하면, 여행이 고픈 청춘들에게 비행기 표가 주어지는 예능이다. 예능 고정 출연이 처음인 충무로 스타 배우 하정우·주지훈을 필두로 여진구, 샤이니 민호가 함께 뉴질랜드 남섬을 횡단하며 ‘자전거 44㎞ 타기’ ‘12만보 걷기’ ‘빙하 호수 입수하기’ 등의 미션에 도전한다.

티빙 '두발로 티켓팅'은 배우 하정우·주지훈·여진구·민호가 뉴질랜드 남섬을 횡단하며 각종 미션을 수행해 청춘들에게 비행기 표를 선물하는 여행 예능이다. 사진 티빙

티빙 '두발로 티켓팅'은 배우 하정우·주지훈·여진구·민호가 뉴질랜드 남섬을 횡단하며 각종 미션을 수행해 청춘들에게 비행기 표를 선물하는 여행 예능이다. 사진 티빙

물론 미션 수행 과정은 순탄치 않다. 하정우는 자전거 여행 출발부터 “헬멧이 작다”며 머리에 쥐를 호소, 10㎞ 지점에서 라이딩을 포기한다. 팬들 사이 별명이 ‘불꽃 카리스마’인 민호도 라이딩을 이어가던 중 일명 ‘봉크’(운동 중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 증세를 보이며 주저앉고, 차가운 빙하 호수 입수 미션 앞에서는 다들 발만 담갔다 줄행랑치기 바쁘다. 톱스타들의 이런 고행길이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어떻게든 끝내 미션을 수행해내는 모습이 소소한 감동을 준다.

‘고생하는 톱스타’, ‘싸우는 스타 가족’ 보여주는 여행 예능  

지난달 22일 첫 방송을 한 KBS2 ‘걸어서 환장 속으로’와 지난달 시즌1 종영 후 시즌2 방영까지 확정지은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도 화려하고 잘 짜인 여행 대신, 고생과 갈등으로 가득한 사실적인 여행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KBS2 '걸어서 환장 속으로'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스타 가족들의 현실적인 해외 여행기를 다룬다. 지금까지 배우 서정희·김승현·고은아, 가수 나태주가 각자 가족들과 대만·프랑스·라오스·태국을 여행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사진 KBS2

KBS2 '걸어서 환장 속으로'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스타 가족들의 현실적인 해외 여행기를 다룬다. 지금까지 배우 서정희·김승현·고은아, 가수 나태주가 각자 가족들과 대만·프랑스·라오스·태국을 여행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사진 KBS2

‘걸어서 환장 속으로’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스타 가족들의 해외 여행기를 담아낸다. KBS1의 정통 여행 프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비튼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환장하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현실 가족여행이 펼쳐진다. 유방암 투병 중인 배우 서정희가 어머니, 딸과 함께 대만으로 떠난 3대 모녀의 여행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옷을 갈아입으려는 서정희의 고집 때문에 시작부터 삐거덕대는 식이다. 배우 김승현 부부와 시댁 식구들이 함께 떠난 프랑스 여행도 파리의 아름다운 풍광보다 며느리 장정윤의 고군분투, 시부모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더 방점이 찍힌다. 여느 가족이나 여행 중 겪을 법한 갈등이 웃음과 짜증, 공감을 함께 자아낸다.

웹툰 작가 기안84(김희민)가 배우 이시언,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과 함께 남미를 유랑하는 ‘태계일주’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계획 여행기를 담은 덕에 흥한 사례다. 특별할 것 없어 보였던 이 예능은 지난해 12월 첫 방송부터 시청률 4.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 같은 시간대 장기집권 예능인 SBS ‘런닝맨’(3.9%)을 제치며 화제를 모았다. 촬영 중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한 탓에 세 여행자는 고산병에 시달리고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 일쑤지만, 이런 모습에 되레 “무계획이라 오히려 힐링된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웹툰작가 기안84가 배우 이시언, 유튜버 빠니보틀과 '무계획'으로 남미 여행을 하는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시즌1 방영 중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 사진 MBC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웹툰작가 기안84가 배우 이시언, 유튜버 빠니보틀과 '무계획'으로 남미 여행을 하는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시즌1 방영 중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 사진 MBC

과거 인기를 끈 여행 예능들이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경험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tvN ‘꽃보다 할배’ 시리즈), 패키지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거나(JTBC ‘뭉쳐야 뜬다’), 여행 꿀팁을 알려주는 형식(KBS2 ‘배틀트립’)을 주로 택했다면, 팬데믹 이후 예능들은 정반대 길을 택한 셈이다. 요즘 여행 예능에 멋진 풍경과 유용한 정보가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출연자들 간의 관계성과 체력적·감정적 변화 묘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행 유튜버들 출연 잇따라…비대면 3년이 바꿔놓은 트렌드 

‘친근함’이 포인트인 만큼 출연진에도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유튜버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153만 구독자를 거느린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은 ‘태계일주’에 이어 스타 PD 김태호의 새 예능 ‘지구마불 세계여행’(23일 첫 공개)에도 출연한다. MBC 퇴사 후 제작사 테오(TEO)를 차린 김 PD는 ‘3대 여행 유튜버’로 꼽히는 빠니보틀·곽튜브·원지를 모아, 오직 주사위 던지기로 행선지를 정하는 예측불가 여행 예능을 만들었다.

부산 출신 4인방이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tvN ‘니가 가라 시드니’(가제, 상반기 방영 예정)에도 배우 허성태 등과 함께 구독자 137만명의 유튜버 곽튜브가 함께한다.

MBC 출신 김태호 PD가 선보이는 여행 예능 '지구마불 세계여행'. 유명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가 김 PD가 설계한 브루마블 게임에 참여해 오직 주사위로 행선지를 정하는 여행을 떠난다. 유튜브 채널 '테오'(TEO)에서 23일 첫 공개, 내달 4일부터 ENA에서도 방영된다. 사진 유튜브 TEO 캡처

MBC 출신 김태호 PD가 선보이는 여행 예능 '지구마불 세계여행'. 유명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가 김 PD가 설계한 브루마블 게임에 참여해 오직 주사위로 행선지를 정하는 여행을 떠난다. 유튜브 채널 '테오'(TEO)에서 23일 첫 공개, 내달 4일부터 ENA에서도 방영된다. 사진 유튜브 TEO 캡처

이처럼 시청자와 거리감을 좁히려는 여행 예능이 잇따르는 건, 사람들이 여행 정보를 얻고 여행하는 방식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일상과 비슷한 여행보다 낯설고 과감한 시도를 하는 여행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는 조사 결과가 많았다. 이런 심리를 제작진들이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행 정보를 유튜브로 얻는 것도 보편화된 만큼, 젊은 시청자를 유인할 수 있고 여러 여행지를 꿰뚫고 있는 유튜버들이 자주 기용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태계일주’ 김지우 PD도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트의 꾸밈없는 특징을 공중파 예능에 결합했다”고 밝혔다.

김 평론가는 “어떤 포맷의 여행 예능이든 결국 출연자 간의 관계성에서 오는 예능적 재미가 있어야 한다”며 “젊은 출연진들이 스스로 관계성을 형성했던 tvN ‘지구오락실’과 같이 구성원들이 각자 캐릭터와 서로 간 케미(서로 간의 조화)를 어떻게 형성하는지가 여행 예능 성패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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