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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돈 벌던 까르푸, 28년 신화 막 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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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역사가 무너진다. 프랑스의 대형 슈퍼마켓 브랜드 까르푸(Carrefour)의 중국 사정이다. 1995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까르푸는 진출 당시 원발음과 유사한 ‘家樂福(자러푸)’로 작명했는데, 이는 ‘집이 즐거워지고 복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한때 중국을 평정하며 매출 1위를 기록했던 까르푸. 복이 절로 굴러 들어왔던 까르푸가 이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매장 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선반은 텅 비었고 까르푸 쇼핑 카드도 사용할 수 없다. 올 1월부터 이어진 대규모 품절 사태로 ‘까르푸가 파산한다’는 소문까지 일 정도다. 심지어 까르푸 중국 법인의 COO(최고 운영 책임자) 마저 사임했다. 부사장과 고위직도 줄줄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경제전문매체 ‘차이징11인(財經十一人, 이하 차이징)’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영업 중인 까르푸 매장의 3분의 2가 ‘품절’상태로 영업 중이며, 베이징과 상하이 매장의 비정상 영업률은 80%를 훌쩍 넘는다. 중국 까르푸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2월 5일 중국 광저우 위안춘 까르푸 매장 내 모습. CCTV

지난 1월, 베이징 소재 한 까르푸 매장의 진열대가 비어있다. 한때 중국 최대의 외국 소매 체인이었던 까르푸는 지난 3년 동안 84개의 매장을 폐쇄하고 항저우, 청두, 지난을 포함한 일부 대도시에서 철수했다. 차이신(財新)

지난 1월, 베이징 소재 한 까르푸 매장의 진열대가 비어있다. 한때 중국 최대의 외국 소매 체인이었던 까르푸는 지난 3년 동안 84개의 매장을 폐쇄하고 항저우, 청두, 지난을 포함한 일부 대도시에서 철수했다. 차이신(財新)

중국보다 1년 앞선 1994년, 까르푸는 한국에도 진출했었다. 국내 진출 외국기업으로는 사상 최고액인 1조 2천억 원을 투자하며 매장을 확장했다. 2000년 말까지 19개 매장을 열어 1위인 이마트와 선두 자리를 다퉜으며 한국 진출 10년 만에 매장 32곳, 직원 수 7000여 명을 거느리는 대형 유통 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토종 업체의 급부상과 IMF, 외화 밀반출 사건, 본사의 갑질로 인한 불매 운동 등으로 순이익이 급감했고 결국 한국 까르푸는 2006년 철수하게 된다.

당시 까르푸는 투자금의 약 두 배가량인 2조 3천억 원을 받고 홈플러스에 까르푸를 매각했는데, 당시 중국 시장에 올인하기 위한 투자금 마련을 위해 한국에서 철수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2006년은 중국 내 까르푸의 입지가 대단한 해였다. 까르푸 차이나는 납품업체의 상품을 한꺼번에 매입하여 고객에게 가격 우위를 제공했다. 또 진출 지역의 유통 업체와의 합작을 통해 점포 확장을 시도했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상품군을 보유했던 까르푸는 당시 매출액 1위(248억 위안)를 기록했는데, 경쟁업체였던 따룬파(大潤發·RT-mart)가 195억 위안, 월마트가 150억 위안이었던 것에 비하면 걸출한 성적표다.

시기도 적절했다. 그 당시 중국은 ‘시장경제 절정’의 시기였다. GDP 성장률은 10%대의 고성장세를 지속했고 도시와 농촌 주민의 소득과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 소비 수준이 높아진 중국인들은 생필품 구매를 위해 자연스레 시장 점유율 1위인 까르푸를 찾았다. 가만히만 있어도 고객을 불러 모으는 까르푸에 ‘누워서 돈 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까르푸는 2010년까지 중국 23개 성에 250개의 매장을 내며 중국 최대의 외국 소매업체로 자리 잡게 된다. 2015년 까르푸 매출은 꾸준히 증가해 50억 유로(약 6조 7813억 원)에 육박했다.

 2019년 촬영한 청두 시내에 있는 까르푸 매장. 중국 최고의 슈퍼마켓이었지만 지금은 철수 위기에 몰려있다. 셔터스톡

2019년 촬영한 청두 시내에 있는 까르푸 매장. 중국 최고의 슈퍼마켓이었지만 지금은 철수 위기에 몰려있다. 셔터스톡

그러나 사실 까르푸의 상황은 2009년부터 악화했다. 중국 본토 전자상거래 업체의 급부상 때문이다. 2008년 알리바바와 징둥의 티몰이 전자상거래를 설립하며 소비습관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꾸준히 옮겨갔다. 온라인 구매와 더불어 ‘신유통(New Retail)’ 개념도 생겨났다. 알리바바는 오프라인 백화점, 마트를 온라인 데이터와 통합하는 온·오프라인 융합 강화를 시도하며 중국 유통의 신바람을 일으켰다. 2015년 중국의 온라인 소매 총 거래액(GMV)은 3조 8,700억 위안(5,712억 3,000만 달러)이었으며 2018년에는 거의 3배인 9조 위안 (1조 32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2018년 까르푸는 이미 부채 137억 달러, 영업 손실 5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저가 매각 직전 상황까지 오게 됐다. 이듬해 까르푸는 결국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쑤닝이거우(蘇寧易購)에 매각된다. 까르푸 중국 법인 지분 80% 이상이 매각되며 사실상 까르푸는 완전한 중국 기업이 됐다. 쑤닝의 매각 덕에 까르푸의 사정은 나아지는 듯했다. 쑤닝은 향후 중국 1~3선 도시에 300개의 까르푸 매장을 개설하고 온라인 배송 서비스 역시 전면 시행하기로 계획했다. 다수 증권사는 인수합병이 기업 간 시너지 효과와 효율 향상 측면에서 이로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까르푸는 2년여의 회생 노력에 실패했다. 업계에선 쑤닝의 인수가 까르푸의 쇠퇴를 가속했다고 분석한다. 쑤닝 그룹은 까르푸 인수 후에도 유동성 위기를 겪어왔다.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은 데다가 실적도 악화했다. 까르푸에 쏟아부을 투자금이 없었다. 이에 결국 쑤닝이거우 지분 23%를 선전시 국유기업에 매각해 자금을 수혈했다.

2019년 3억 400만 위안의 순손실을 기록한 까르푸는 2021년, 약 33억 3700만 위안의 순손실을 내고 만다. 2022년 3분기 말 까르푸 매장 수는 151곳으로, 문 닫은 점포만 54곳에 달했다. 최근 까르푸 매장 운영현황에 따르면 2월 7일 기준 영업 중인 매장은 131개로 확인됐다. 6개월 사이에 스무 곳의 매장이 문을 닫은 셈이다.

지난 1월, 베이징 소재 한 까르푸 매장의 진열대가 비어있다. 한때 중국 최대의 외국 소매 체인이었던 까르푸는 지난 3년 동안 84개의 매장을 폐쇄하고 항저우, 청두, 지난을 포함한 일부 대도시에서 철수했다. 차이신(財新)

지난 1월, 베이징 소재 한 까르푸 매장의 진열대가 비어있다. 한때 중국 최대의 외국 소매 체인이었던 까르푸는 지난 3년 동안 84개의 매장을 폐쇄하고 항저우, 청두, 지난을 포함한 일부 대도시에서 철수했다. 차이신(財新)

남아있는 매장 운영도 수월하지 않다. 131개 매장 중 88곳의 매장엔 품절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거나 진열된 상품 대부분은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다. 계산이나 도움을 줄 직원 수도 현저히 부족하다. 차이신에 따르면 현재 베이징에 소재한 17곳의 매장 중 14곳이 비정상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상하이의 경우 22곳의 매장 중 세 곳만이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역시 ‘빚’이다.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에 따르면 까르푸와 수년 동안 협력해 온 공급업체들은 최근 몇 년간 까르푸의 반복적인 체납으로 계약을 중단했다. 광둥성의 한 식품 관련 관계자는 “쑤닝의 인수 후 자금줄이 불안정해 지급 불이행이 빈번해졌고, 협력 및 공급을 중단한 지 오래다”라고 밝혔다.

중국 경제전문매체 얼스이징지왕(21經濟網) 보도에 따르면 까르푸는 화난(華南)시장의 한 신선식품 업체에 대금 50여만 위안을 체납해 법원에 강제집행이 신청된 상태다.

까르푸 전용 ‘선불카드’사용도 일부 항목으로 제한했다. 회사가 폐쇄 직전 단계에 이르렀다는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남은 자금을 사용하려는 소비자들로 매장은 붐볐지만 물품이 없어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매장 곳곳에 쇼핑 카드 사용을 금지하는 안내문도 부착되어 있었다. 이에 환불을 받으려는 고객이 몰렸지만, 까르푸 측은 환불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2022년 까르푸의 중국 내 수익은 여전히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다. 2023년 1월 30일 까르푸는 지난해 실적 보고서에서 까르푸가 코로나 19와 전자상거래 경쟁 심화 등 종합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았고, 일부 지역 매장의 운영이 최소화되며 판매 규모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사진 Financial Times

사진 Financial Times

한편 글로벌타임즈(GT)에 따르면 까르푸 차이나는 ‘파산에 직면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추측을 부인했다. 까르푸 측은 성명을 통해 “위챗, 알리페이, 현금 등 다양한 결제 수단을 여전히 지원하고 있으며 쇼핑 카드 역시 사용할 수 있다”며 “공급망을 최적화하고 있고 여러 공급업체의 지원과 조정 아래 소비자에게 더 다양한 제품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더는 근거 없는 소문을 믿지도, 퍼뜨리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르푸의 ‘전례 없는 위기의식’은 지워지지 않는다. 한 유통 업체 관계자는 차이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수수료를 부과하는 공급업체의 수익 모델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해졌다”며 “격렬한 시장 경쟁 속에서 까르푸, 월마트와 같은 전통 대형 슈퍼마켓이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은 불가피한 추세”라고 밝혔다.

김은수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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