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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쓸모없는 ‘가짜 죽나무’가 전하는 쓸모 있는 삶

중앙일보

입력

2월에는 봄을 알리는 절기 입춘(立春)도 있고 요즘 날씨는 예년에 비해 따듯하다고 합니다만, 아직은 겨울 기운이 완연합니다. 자꾸 움츠리게 되지마는 두툼하게 옷을 챙겨 입고 산책을 하다 보면 이 계절에도 다양한 나무를 만날 수 있죠. 겨울은 잎이 지고 열매도 보기가 어려워서 무슨 나무인지 구분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때에는 겨울눈이나 엽흔(잎 진 자리)을 보면 구분이 가능해요. 특히, 개성 있게 생긴 나무들은 몇 가지만 외워둬도 겨울철에 나무 공부하기에 꽤 쓸모가 있습니다. 오동나무나 가죽나무와 같은 나무는 수형이 단순하고 잎 진 자리가 커서 눈에 잘 띄죠. 이번에는 가죽나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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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나무는 ‘가중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유래는 ‘참죽나무’에서 비롯했어요. 가죽나무와 참죽나무는 생김새가 아주 비슷하죠. 참죽나무는 잎을 따서 나물로 먹거나 죽을 쒀서 먹기도 하는데, 가죽나무는 비슷하게 생겼어도 잎을 먹지 못한다고 해서 '가짜 죽나무'라는 뜻으로 ‘가죽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가죽나무의 학명은 'Ailanthusaltissima'예요. 아일란투스(Ailanthus)는 ‘아일란토(Aylanto)'라는 인도네시아 몰루카어에서 유래한 ’하늘의 나무‘를 뜻하고, 알티시마(Altissima)는 ’키가 매우 큰‘을 뜻한다고 합니다, 영어권에서는 ’Tree of Heaven(하늘 나무)'이라 불러요. 큰 키 때문인지, 하늘로 날아가려고 하는 형상 때문인지, 열매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가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사실 가죽나무를 부르는 이름은 꽤 여럿이에요. 잎 떨어진 자리가 마치 호랑이 눈 같다고 해서 ‘호목수(虎目樹)’ 혹은 ‘호안수(虎眼樹)’라고도 합니다. 저수(樗樹), 취춘수(臭椿樹), 산춘수(山椿樹)로도 불리죠. 특히 저(樗)는 가죽나무를 뜻하기도 하지만 쓸모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옛날에는 가죽나무로 주사위를 만들었나 봅니다. 그 주사위 놀이를 저포(樗蒲)라고 불렀는데, 학교 수업에서 배운 조선 초 김시습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저포가 바로 그 놀이를 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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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나무의 잎은 아주 큽니다. 아까시나무처럼 작은 잎이 여러 장 모여서 하나의 잎을 이루는 것을 ‘겹잎’이라고 하는데, 가죽나무도 겹잎입니다. 13~25장까지 달리고 크기도 60~80cm로 커서 마치 야자수 잎 같아요. 여름날 야자수 같은 큰 잎은 시원한 그늘도 주고, 이국적인 모습도 선사하죠.
열매는 시과(翅果·씨방의 벽이 늘어나 날개 모양으로 달린 열매)로 긴 타원형이며 길이는 3cm 정도 되는데 프로펠러처럼 생긴 날개 가운데 1개의 씨가 들었어요. 가을에 열려 봄까지 달려있기도 해요. 열매가 바람에 날아가는 모습은 단풍 씨앗 못지않게 멋진 모습이라서 한참 보게 되죠. 바람을 타고 이동하니 아무 데나 멀리 갈 수 있고 자라기도 잘 자랍니다. 가지가 옆으로 뻗어 제법 품위를 갖춘 모양새고, 공해에도 강하며 공기 정화에도 유용해 최근에는 가로수로도 많이 활용하죠. 다만 ‘꽃매미’라는 외래곤충의 먹이 식물이라 가죽나무로 인해 꽃매미가 나타난다고 하여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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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목재도 쓸모없고 잎도 못 먹는다고 쓸모없는 나무라고 했지만 장자는 나무 그늘 아래 쉴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고 한 적 있죠. 또 쓸모없기에 베어지지 않아 숲을 지킨다고도 합니다. 도종환 시인도 가죽나무에 대해 ‘새 한 마리 쉬어가면 좋은 삶’이라고 말한 바 있죠. 가죽나무는 빨리 자라는 편이라 재질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형편없는 나무의 대명사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건조하기 어려워 예전엔 잘 못 썼지만, 기술이 발달한 요즘 가죽나무는 목재로도 각광받고 있죠. 제지 원료 등 공업용으로도 쓰고, 황백색 또는 연한 황갈색에 아름다운 무늬를 지녀 가구용으로 인기예요. 뿌리 내피와 열매는 민간에서 한방약용으로 오래 써오기도 했죠. 사람이 못 먹는 가죽나무 잎은 누에 먹이로도 쓰고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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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의미가 있습니다. 감상적으로 그늘이니, 쉼이니 그런 겉핥기식 유용함이 아니라 생태적 유용함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인간 중심적으로 지금은 당장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여겨질 날이 있을 겁니다. 나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은 어떨까요? 새 학기를 맞이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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