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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에 고기 먹어요"…로잔 홀린 18세 한국 여고생 둘 [스위스 달군 'K발레'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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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예고 박상원(왼쪽), 김수민 학생. 지난 5일 막을 내린 스위스 발레 콩쿨,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모두 입상했다. 김경록 기자

선화예고 박상원(왼쪽), 김수민 학생. 지난 5일 막을 내린 스위스 발레 콩쿨,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모두 입상했다. 김경록 기자

스포츠에 올림픽이 있다면, 발레엔 로잔이 있다. 매년 스위스 로잔에서 전 세계 15~18세를 대상으로 개최하는 콩쿠르,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이다. 올해 50회를 맞은 발레 등용문으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도, 서희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박세은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왈(수석무용수)도 로잔을 통해 전 세계에 존재감을 두루 알렸다. 지난 5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이 유서 깊은 대회에 올해 한국인 수상자가 3명이나 나왔다. 로잔의 무대를 빛낸 한국 학생들을 귀국 직후 중앙일보가 단독으로 만났다.

서울예고 김시현 학생은 지난 8일 서울예고에서, 선화예고 박상원·김수민 학생은 지난 9일, 강민우 학생은 컨디션 회복을 위해 이메일로 만났다. 다음은 박상원 학생과 김수민 학생과의 공동 인터뷰.

"한국어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자랑스럽고, (내일 결선)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4일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후 소감을 묻는 로잔 측 신시아 라바론 진행자 겸 전 발레리나에게 당당하게 이렇게 한국어로 소감을 전한 이는 선화예고 박상원(18) 학생이다. 귀국 직후인 지난 9일 학교 무용 연습실에서 만난 상원 학생은 "우리 한국어로 꼭 말하고 싶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상원 양은 3위로 입상했다.

그는 그러나 동갑내기로 초등학교부터 단짝이었던 김수민 학생이 없었다면 발레를 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유니버설발레단(UBC)에서 정기공연의 주역으로 발탁하는 등,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수민 양도 이번에 입상했다. 어린 시절 발레 전공을 망설이던 상원 양에게 "너가 가진 발등으로 발레를 안 하면 하늘에 미안한 일"이라며 그를 연습실로 이끈 이가 수민 양이다. 둘이 함께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무용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들은 사진기자의 요구에도 완벽한 포즈를 선보였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두 명을 두고 "스타일이 서로 참 다른데, 달라서 참 좋다"고 칭찬한다고 지도 선생님들이 귀띔했다. 김경록 기자

이들은 사진기자의 요구에도 완벽한 포즈를 선보였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두 명을 두고 "스타일이 서로 참 다른데, 달라서 참 좋다"고 칭찬한다고 지도 선생님들이 귀띔했다. 김경록 기자

축하합니다. 소감 들려주세요.
상원=파이널리스트가 꼭 되고 싶어서 엄청 떨렸어요. 중학생 때 로잔에 도전장을 냈지만 떨어졌던 기억도 있었고, 이번에도 예선 합격 이메일을 제가 제일 늦게 받아서 더 떨렸거든요. 하지만 '무대에서 네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겁다'는 부모님과 선생님들 말씀을 되새겼어요. 나중엔 콩쿨이라기 보다 공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공연은 관객께 춤을 선물하는 거잖아요. 로잔은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티켓을 사서 와주시는 관객이 있고, 그 객석과의 거리도 정말 가깝더라고요. 덕분에 편안히 출 수 있었어요.  
수민=전 지난번 출전에 파이널리스트가 됐었는데요, 그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던 거 같은데 이번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어요(웃음). 세 번째 날 생중계 영상이 (전 세계) 인스타그램에서 감사하게도 화제가 돼서 긴장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파이널리스트된 후엔 좀 마음이 풀리면서 '내 모든 걸 보여드리자'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출 수 있었습니다.  
발레는 어떻게 시작했어요?
상원=저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다섯 살에 처음 접했는데, 처음부터 전공할 생각은 못했어요. 서울에 왔더니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서울에서 만난 수민이가 꼭 발레 전공하라고 했어요. 이후 7개월 정도 바짝 연습했는데 감사하게 예중에 붙었고요.  
수민=저도 백화점 문화센터랑 학원에서 처음 접했는데, 무대가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래서 전공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시작했고요, UBC '오네긴' 공연을 처음 보고, 또 지금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친한 언니인 안수연 무용수를 보면서 발레리나의 꿈을 키웠어요.  

김수민 학생. '파키타 아다지오'의 시그니처 포즈다. 김경록 기자

박상원 학생. '코펠리아'의 발랄한 포즈. 김경록 기자
로잔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  
수민=2020년에 뵈었던 선생님을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기억에 남았었다'면서 '폴드브라(port de bras, 팔의 움직임)'가 마음에 들고 계속 열심히 하면 스타가 꼭 될 거'라고 말을 걸어주셨던 게 감사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요.
상원=선생님들이 해주셨던 말씀 중에 '발을 맛깔나게(tasty) 쓰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희 (UBC) 유병헌 감독님도 '부드럽기만 한 안심보다 쫄깃함도 있는 채끝처럼 질감을 살려서 추라'고 하시거든요. 그 말씀도 생각났고요."  
아쉬웠던 점이 있을까요.  
수민=저는 컨템(퍼러리, 현대무용)이 좀 아쉬웠어요. 제가 춘 작품을 안무한 친구가 저와 동갑인데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상원=저는 숫수(발끝으로 서는 동작)가 조금씩 흔들린 게 아쉬워요. 그래도 제가 무대를 즐겼으니 좋아요(웃음).  
수민=에이, 별로 흔들리지 않았어요(웃음)  
나만의 루틴 살짝 공개해주세요.
상원=새벽 6시반에 일어나도 아침식사로 꼭 고기를 먹어요(웃음). 다이어트가 고민이잖아요. 다시 통통해지면 또 빼야 하는 그 과정이 너무 싫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유지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저녁을 적게 아침을 잘 먹으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아침마다 고기 먹는 게 습관이 됐어요(웃음).  
수민=무대 서기 전날에 한 번, 그날 아침에 한 번, 무대 나가기 직전에 기도를 해요.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서요. 애착 폼롤러도 꼭 갖고 다니면서 발바닥 포함해 근육을 골고루 꼭 풀어주고요. 상원이가 뺏어서 쓸 때도 많지만요(웃음).  
어떤 무용수로 성장하고 싶나요.  
상원=저는 발레를 늦게 시작했으니 지금까진 숨 가쁘게 달려오기만 했거든요.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꿈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고, 이제 진로가 더 선명히 정해진 거 같아요. 꿈은...(잠시 수민 양을 바라본 뒤) 수석무용수요(웃음). 하지만 꼭 수석이 아니더라도, 어느 무용단에서도 즐겁게 행복하게 춤을 추고 싶어요. 남에게 보여주기만을 위한 춤이 아니라,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춤이요.  
수민=일단 저는 20대엔 정말 열심히, 다양하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열심히 춰보고 싶어요. 조심스럽지만 수석무용수가 되는 건 정말 모두의 꿈이죠(웃음). 버킷 리스트 하나만 살짝 덧붙여 보면 (상원 양을 바라보며) 브누아 드 라 당스(세계적 발레 무용수를 선발해 주어지는 상)요. 나중엔 지도자로도 활동하면서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상원 양과 수민 양은 서로를 항상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김경록 기자

상원 양과 수민 양은 서로를 항상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김경록 기자

시기 질투도 많이 받을 텐데요.  
수민=제가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 주역으로 선정됐을 때 '쟤는 돈 주고 배역을 샀다더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안 좋은 얘기들 들은 건...숱하죠. 처음엔 멘털이 흔들렸는데 당하다보니 성격도 무던히 바뀌더라고요. '어쩌라고?'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어쩌다 울음이 터질 땐 그냥 더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다 울어요.  
상원=너무한 사람들 정말 많아요. (수민을 위로하며) 중요한 건 남 얘기에 신경 끄고 마음을 다잡는 거죠. 사람은 각자 다르잖아요.  
0.5초도 하기 힘든 포즈를 계속 취하며 미소를 선보이는 박상원 학생과 김수민 학생. 김경록 기자

0.5초도 하기 힘든 포즈를 계속 취하며 미소를 선보이는 박상원 학생과 김수민 학생. 김경록 기자

힘든데 발레를 계속하는 이유는요.  
상원=발레는 음...매력적인 나쁜 남자 같아요(웃음). 힘들어서 그만둘까 하다가도 다시 생각나거든요. 그만큼 매력이 커요.  
수민=맞아요(웃음). 저는 발레가 장미 같아요. 꽃은 화려하고 예쁘지만 가시가 돋아 있잖아요. 몸도 마음도 아프지만 무대에서 박수 받으면 마음이 다 풀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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