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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포퓰리즘 시대의 한국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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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 민주주의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지난해 6월 미국 스탠퍼드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에서 신기욱 소장과 함께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위기의 한국 민주주의)』를 편집해 출간한 바 있다. 책의 부제는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양극화의 위협’이다. 자유주의의 빈곤, 포퓰리즘의 발흥, 경제·정치 양극화가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진단이다.

마침 2월 1일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전 세계 167개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 16위에서 2022년 24위로 떨어졌다. 다행인 것은 2020년 23위에 올라 ‘결함 있는 민주주의’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발돋움한 이래 여전히 완전한 민주국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엘리트주의와 반다원주의
‘21세기 포퓰리즘’의 두 특징
유능한 정치와 상호 관용으로
민주주의 위기의 해법 찾아야

EIU의 평가 영역은 다섯 항목이다. 우리나라는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9.58점(10점 만점), 정부 기능 8.57점, 정치 참여 7.22점, 정치문화 6.25점, 국민 자유 8.53점을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평균 8.03점의 성적표를 받았다. 대립적인 정당정치와 이분법적인 정치문화가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게 EIU의 분석이다. 이 적대적인 정치 지형은 ‘21세기 포퓰리즘’에 기인하는 바 크다.

포퓰리즘의 기원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나로드니키와 미국 인민당까지 올라간다. 특히 인민당은 산업 및 기업 규제, 불평등 해소를 위한 누진세를 주장해 포퓰리즘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퓰리즘은 1940~50년대 페론주의에서 보듯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러시아 푸틴 정부까지 지구적으로 다시 한번 위세를 떨쳐 왔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20세기 포퓰리즘’과 ‘21세기 포퓰리즘’ 간의 공통점과 차이다. 21세기 포퓰리즘은 인기영합주의라는 점에서 20세기 포퓰리즘과 유사하다. 동시에 21세기 포퓰리즘은 정치학자 얀-베르너 뮐러가 주장하듯 반엘리트주의와 반다원주의를 앞세운다. 기득권을 공격하고 국민주권을 부각하는 게 반엘리트주의다. 다른 세력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자기 정파만 ‘진정한 국민’으로 인정하는 것이 반다원주의다. 반엘리트주의는 기성 정치의 혐오화로, 반다원주의는 상대 세력의 악마화로 나타난다. 혐오화와 악마화는 21세기 포퓰리즘의 감춰진 두 전략이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날카롭게 분석한 이들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다. 이들은 1990년대 탈냉전 시대가 열린 이후 민주주의가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전복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위시해 조지아,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폴란드,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과 푸틴의 러시아가 바로 그 사례들이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이제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열거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들이다. 구체적으로, 기성 정당들이 포퓰리스트와 결탁한다. 집권 세력은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음모론을 제기하고 결과에 불복한다. 대통령은 의회를 우회해 행정명령을 남발한다. 의회가 예산권을 빌미로 행정부를 혼란에 빠지게 하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탄핵을 추진한다. 정부는 명예훼손 소송으로 비판 여론의 입을 막는다.

포퓰리즘이 국가 재정을 탕진하는 인기영합주의로만 민주주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의 반다원주의와 비자유주의는 극단적인 이념 대결의 고착, ‘정치적 부족주의’의 등장,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선동적인 가짜 뉴스의 범람을 낳는다. 포퓰리즘은 정치사회를 공통의 정서와 신념으로 무장한 세력들이 벌이는 권력 쟁취의 무한 전쟁터로 전환시킨다. 권력의 탈이성화와 과잉 감성화는 21세기 포퓰리즘의 어두운 두 얼굴이다.

이쯤 해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우리 사회에서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잘 작동하고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균형이 나름대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영정치의 강화와 불평등 해결에 무력한 정부 및 정치사회의 신뢰 하락은 21세기 포퓰리즘과 아주 많이 닮았다. 우리 민주주의에 위기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지난 20세기 전반에는 파시즘에, 후반에는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 이겼다. 이제 세 번째인 ‘포퓰리즘 모멘트’에 도달해 있다. 기성 정치의 무능에 대한 불만 및 거부는 포퓰리즘의 매혹 및 확산과 정확히 비례한다.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정치사회가 문제 해결 능력을 제고하고, 서로에 대한 관용 및 자제를 발휘해야 한다. 이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해법을 우리 정치가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길 나는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