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중국의 부당한 압력엔 ‘원칙 외교’가 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류예리 경상국립대 지식재산융합학과 초빙교수

류예리 경상국립대 지식재산융합학과 초빙교수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주권 차원에서 지난달 2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일부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비자 제한 조치는 1월 말에 한차례 연장했지만, 춘제(중국식 설) 이후에도 중국발 입국자 양성률이 1%대로 낮아지자 과학적 판단에 따라 지난 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을 40일 만에 재개했다. 중국도 이에 호응할 움직임을 보인다.

사실 대중국 비자 제한 조치는 과거 문재인 정부라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단호하고 신속했다. 지난해 12월 초 중국 정부가 갑자기 ‘위드 코로나’로 정책을 바꾸면서 수억 명이 단기간에 감염되고 중국인이 대거 해외여행에 나서자 전 세계 16개국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강화된 검역 조치를 발동했다.

당연한 방역주권을 무시한 중국
미리 겁먹는 악순환 이제는 끊고
우방과 경제안보 협력 강화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한국은 중국발 입국자가 다른 국가들보다 많기 때문에 국내 방역 여건을 고려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 검역 절차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지난달 10일 한국에 대해 단기 비자발급을 갑자기 전면 중단했다. 누가 보더라도 비과학적이고 감정적인 부당 보복 조치였다.

중국이 다른 나라에 경제적으로 압박한 사례는 차고 넘치고 각국의 대응 유형도 다양하다. 어떤 국가는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며 굴복했지만, 정면으로 맞선 국가도 많다. 중국의 보복 조치에 즉각적으로 맞대응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기술 개발과 시장 및 수입선 다변화 조치를 통해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서 벗어난 국가도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문재인 정부가 취했던 대중국 저자세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전히 차별화한 장기적 포석을 두는 외교로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대응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적 타격을 노린 중국의 압박에 너무 쉽게 굴복했던 지난 정부의 무원칙 대응 전례와 단호히 절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국 경제 압력에 대응하는 행동지침(매뉴얼)을 정립해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첫째, 중국의 의도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1999년 마늘 파동 때부터 중국의 경제 보복 트라우마가 우리에게 깊이 각인됐다. 그 영향 때문에 중국이 무슨 조치를 하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고 정부가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수행해야 할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도 중국의 눈치를 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중국은 한국의 예민한 반응과 보복 트라우마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걸핏하면 보복 카드를 남용한다. 따라서 닭을 죽여 원숭이에게 경고하는 중국의 살계경후(殺鷄儆猴)처럼 한국을 압박해 서방국가에 경고하는 중국의 의도를 예측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둘째, 힘들어도 분명한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대중국 방역 조치는 지난 정부가 과학 방역을 하지 못한 오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긴급 처방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초기처럼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중국발 입국자 방역을 이번에도 느슨하게 했다면 한국은 방역 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경제 보복이 예상되더라도 언제든지 방역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단호하게 보여줘야 한다. 이번에 대중국 방역 조치를 해제한 것은 중국의 경제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과학적 판단에 따라 방역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임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셋째, 우방국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은 저자세인 국가를 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경제 보복 공포증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거리를 두는 국가들과 경제안보 차원에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을 포함한 많은 우방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통상협력 국가들이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체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나아가 중국이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반도체·배터리 외에도 핵심 전략기술을 정부가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향후에 중국의 부당한 경제 압력 조치가 발동되면 표적이 되는 산업을 지원·보상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비해 외화보유액을 축적하는 것도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처럼 대중국 외교 원칙을 당당히 견지하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류예리 경상국립대 지식재산융합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