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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이 던진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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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근육쟁이들이 몸과 힘만 자랑하다 1등을 뽑는 서바이벌 예능일 줄만 알았다. 요즘 화제인 ‘피지컬: 100’ 얘기다. 웬걸 아니었다. MBC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용으로 제작한 이 프로그램은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피지컬: 100’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무엇이 최강 피지컬(physical·육체)인가, 무엇이 강한 것이냐는 물음이다. 100명에게 주어진 첫 미션은 오래 매달리기. 일부 근육질 남성들은 시작부터 탈락했지만, 자기 무게를 온전히 견디는 참가자들은 더 오래 버텼다. 투자 호황기에 몸집을 키운 스타트업들이 불황기에 나가떨어졌지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키워 이익을 낸 회사들이 여전히 버티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떠오르기도 했다. 첫 미션에서 강함은 자신을 버티는 힘이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 처음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한 ‘피지컬: 100’. [사진 넷플릭스]

한국 예능 프로그램 처음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한 ‘피지컬: 100’. [사진 넷플릭스]

시청자 사이에선 공정성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힘을 겨뤄 공을 빼앗는 경기에서 남녀 대결은 공정한가, 약물 도핑 의혹이 있는 일부 참가자들을 볼 때 도핑 테스트를 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제작 관계자는 한 언론에 “예능은 예능으로 봐 달라”며 “스포츠 공식 경기가 아니라 도핑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형평성을 따지면 끝이 없다”는 이들도 있지만, 예능 이상의 몰입감을 주는 만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우승자 1명을 뽑는 예능이지만, 팀과 조직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100명 중 50명이 남은 뒤 5명이 한 팀씩을 이뤄 대결을 펼친다. 정해진 코스에서 더 많은 모래를 옮기는 팀이 승리하는 경기다. 빨리 이길 욕심에 건너갈 다리를 부실하게 만든 팀은 왜소한 스턴트우먼 참가자가 차분하고 튼튼하게 다리를 만든 팀에게 패배한다. 남성 팀원이 2명 더 많기에 “100% 이긴다. 어떻게 지겠냐”고 말한 팀은 자신들이 최약체로 지목한 팀에게 패했다.

박지성이 뛴 축구팀 맨유의 전성기를 이끈 퍼거슨 감독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말했다. 팀 대결에서 승리한 참가자는 “모든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자기 역할만 잘해주면 그 팀은 무조건 이긴다”는 소회를 밝혔다. ‘피지컬: 100’이 보여주는 팀워크와 승리의 조건은 팀원 모두가 제 위치를 알고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십과 팔로십이 조화를 이뤄야 제 위치를 알고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방송 다음 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지난주 법원 판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직 국회의원 아들이 받은 50억원 성과급·퇴직금은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시민들은 800원을 횡령한 버스 기사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떠올리며 의문을 표했고, 언론은 수사와 재판을 따져 물었다. 제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기 위함이다. 팀뿐 아니라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