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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시간 만에 생환, 기적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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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신 듯 눈만 연신 깜빡인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 발생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진앙인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극적으로 구조된 직후 보인 반응이었다. 센굴 카라바카크(4)는 강진으로 무너진 5층 건물 잔해에서 사고 132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이 이날 전했다.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인간 띠를 만들어 잔해 더미에서 떨어져 있는 구급차까지 카라바카크가 누운 들것을 머리 위로 옮겼다. 카라바카크 손에 꽂힌 링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한 구조대원의 모습도 포착됐다. 구조 작업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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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지진 피해 지역 곳곳에선 기적의 생환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12일 튀르키예 남부 아디야만에서는 건물 잔해에 갇힌 지 153시간 만에 두 자매가 구조됐다고 현지 하베르투르크방송이 전했다. 방송은 같은 지역에서 6세 소년이 150시간에 구조되는 장면을 실시간 방송했다.

11일 가지안테프에서 매몰됐던 일가족 5명이 한꺼번에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이들은 “신은 위대하다”고 말하며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13세 소녀 에스마 술탄도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 구조대원들은 술탄을 구하면서 “당신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일가족 5명 발견” “2세 아기 구조”…주민들 환호·감사기도

11일 카라만마라슈에서 구조된 여성. [AP=연합뉴스]

11일 카라만마라슈에서 구조된 여성. [AP=연합뉴스]

큰 지진 피해를 본 카라만마라슈에서도 70세 할머니인 메넥세 타박이 살아 돌아왔다. “주민들이 콘크리트 잔해를 뚫고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는 할머니를 보면서 신을 향해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타박은 생존 사실에 감격했다. 같은 지역에서 건물 잔해 속에 묻혔던 27세 남성 무함마드도 140시간 만에 구조됐다. 현지 방송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구출되자 구조대원들은 “알라는 위대하다”고 환호했다.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선 생후 7개월 된 함자가 지진 발생 140시간 만에 구조됐다. 앞서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된 신생아도 지진 발생 128시간 만에 구출됐다. 얼굴에 긁힌 상처가 있긴 했으나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아기가 어떻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11일 아디야만에서 130여 시간 만에 구조된 45세 여성. [AP=연합뉴스]

11일 아디야만에서 130여 시간 만에 구조된 45세 여성. [AP=연합뉴스]

하타이주 항구도시 이스켄데룬에선 건물 잔해 속에 있던 2세 아기와 12세·14세 자매가 128시간 만에 구조됐다. 이후 하타이주에서 생후 5개월 아기와 2세·6세·7세 여아가 각각 매몰 131~137시간 사이에 생환했다. 크리스토퍼 콜웰 미국 캘리포니아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영하의 추위에서 잔해에 갇혀 물도 없이 130시간 동안 생존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많은 생존자가 건물 더미에 묻혀 있다며 더 많은 구조 인력 투입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 부족과 영하권의 날씨 등으로 구조 작업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11일 튀르키예 안타키아에 설치된 이재민 텐트촌. [신화=연합뉴스]

11일 튀르키예 안타키아에 설치된 이재민 텐트촌. [신화=연합뉴스]

구호품 등 국제사회의 원조가 피해 지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거리 곳곳에는 시신을 담은 가방이 즐비하고 터전을 잃은 생존자들은 부패한 시신에서 스며 나오는 악취를 막으려 마스크를 쓴 채 추위, 배고픔과 싸우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도시 외곽 대규모 매장지에는 땅 파는 기계가 쉴 새 없이 대형 구덩이를 파고, 인부들은 시신 가방을 구덩이에 밀어넣고 있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는 인력 12만1128명과 굴착기, 불도저 등 차량 1만2244대, 항공기 150대, 선박 22척, 심리치료사 1606명을 투입하는 등 매몰된 생존자 구조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부 지역에선 총·칼로 무장한 약탈대가 기승을 부리면서 구조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약탈대는 강진 피해 지역에서 빈집을 털거나 상점의 창문을 깨고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굶주림에 못 이겨 식료품을 훔치고 있지만, 대다수는 옷가게와 전자제품 매장을 털어 값나가는 물건을 싹쓸이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약탈대와 구호대 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구조대는 지난 10일 신원을 알 수 없는 단체와 충돌해 수색 작업을 중단했다. 오스트리아 구조대 대변인은 “하타이 지방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오스트리아 구호대 소속 수십 명이 다른 국제구호대와 함께 베이스캠프로 피신했다”고 알렸다. 독일 국제수색구조대(ISR)도 안전 문제로 구조 작업을 중단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날 약탈 용의자에 대한 법정 구금 기간을 사흘 늘리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칙령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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