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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말라 추적장치 헐렁…부산 온 '멸종위기' 붉은여우 어디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 해운대 야산에서 포착된 붉은여우. 사진 독자 신병륜씨

부산 해운대 야산에서 포착된 붉은여우. 사진 독자 신병륜씨


“혼자 와서 외롭게 지내던 ‘우리아기’. 새 짝 만나서 잘 살았으면….”

부산 해운대에 사는 ‘여우 명예보호원’ 하경숙(70)씨가 12일 오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하씨가 말한 ‘우리 아기’는 지난해 6월 부산 해운대 달맞이공원 주변에서 발견된 ‘1급 멸종위기종’ 붉은여우(개체 고유번호 SKM-2121)다. 이 붉은여우는 경북 영주에서 약 400㎞ 내달려 부산에 왔다.

최근 이 붉은여우가 부산 서식지를 떠났다. 붉은여우를 발견해 최초 신고한 하씨의 근심이 커진 이유다. 그는 붉은여우가 좋아하는 닭가슴살을 가끔 사먹이거나 다른 사람이 여우를 다치게 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등 정성을 쏟았다. 하씨는 “처음 만났을 때 목에 설치된 위치추적장치가 덜렁 거릴 정도로 말랐었다”며 “제가 ‘우리 아기’하고 크게 부르면 뒤돌아보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다치지 않고 건강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작년 12월 중순 이후 사라져

야생 적응 훈련 중인 붉은여우. 목에 추적장치가 부착돼 있다. 사진 환경부

야생 적응 훈련 중인 붉은여우. 목에 추적장치가 부착돼 있다. 사진 환경부

12일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중부보전센터(센터)에 따르면 이 붉은여우는 지난해 12월 14일 새벽 이후로 ‘행적’이 끊겼다. 해운대 달맞이공원 인근 야산에 설치된 무인 감시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센터는 “(포착 당시)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붉은여우 주요 동선을 따라 설치된 무인카메라 10대에는 아무런 모습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

붉은여우 목에 걸어놓은 추적장치에 GPS 기기가 탑재돼 있지만, 지난해 9월부터 배터리가 방전됐다. 대신 VHF(초단파·주파수 종류 중 하나) 통신 기기는 배터리가 남아 있어 추적이 가능한 상황이다. 통상 500m 근처까지 접근해야 주파수 신호를 수신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센터가 지난주까지 붉은여우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7번 국도 인근 야산을 따라 주파수 수신을 시도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붉은여우가 부산을 떠났을 것으로 센터가 판단하는 이유다.

센터는 부산과 가까운 경남 양산, 경북 청도 등 다른 산악지역에서 붉은여우의 흔적을 찾을 계획이다.

“1·2월 짝짓기 시기, 짝을 찾아 이동한 듯”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붉은여우. 사진 환경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붉은여우. 사진 환경부

센터는 부산에 서식하던 붉은여우가 겨울철 먹이활동이 어려워 이동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인 감시카메라에 여우의 먹이인 작은 고라니, 집쥐, 청설모 등이 다수 포착됐기 때문이다. 또 환경부가 지정한 ‘여우 명예보호원’ 하씨 등 시민이 종종 먹이를 공급해오던 터였다. 센터는 1·2월 짝짓기 기간이라 붉은여우가 짝을 찾아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현재 전국 야생에서 활동하는 여우는 90여 개체다. 주로 소백산 권역에 있는데 타 지역에서도 여우들의 이동이 감지되고 있다”며 “여우는 초저녁부터 야간에 활동한다.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다만 직접 포획하거나 (야생성을 잃을 수 있어) 먹이를 주는 행위는 삼가하고, 발견되면 센터에 즉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부산 붉은여우는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암수컷 교배를 통해 2021년 3월 태어났다. 먹이활동 등 야생적응 훈련을 거쳐 같은 해 12월 경북 영주 소백산 일대에 다른 여우 13마리와 함께 방사됐다. 당시 몸길이 약 70㎝, 몸무게 5㎏가량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 여우는 약 80일간 소백산에 머물다가 지난해 2월 강원도 동해시로 이동했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동해안을 따라 경북 포항·울산을 거쳐 부산까지 국토를 종단했다. 전체 이동 거리가 400㎞에 이르렀다. 이후 6개월가량 부산 해운대 달맞이공원 인근 야산에서 서식했다.

사람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한 붉은여우는 종종 도심에서도 목격되기는 하지만 반년가량 도심에 서식한 것은 이례적이다. 해운대 달맞이공원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하지만 이 여우 서식지는 경사가 심해 사람이 직접적으로 찾기 어려운 데다 쥐나 고양이 등 먹이가 풍부해 장기간 머물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센터 측은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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