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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시간만의 '기적의 햇살'...살아낸 4살 소녀는 눈만 깜빡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눈부신 듯 눈만 연신 깜빡인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 발생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진앙지인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극적으로 구조된 직후 반응이었다. 센굴 카라바카크(4)는 강진으로 무너진 5층 건물 잔해에서 사고 132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이날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이 전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진앙지 가지안테프에서 4세 여아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사진 데일리메일 캡처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진앙지 가지안테프에서 4세 여아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사진 데일리메일 캡처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인간 띠를 만들어 잔해 더미에서 떨어져 있는 구급차까지 카라바카크가 누운 들것을 머리 위로 안전하게 옮겼다. 카라바카크 손에 꽂힌 링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한 구조대원의 모습도 포착됐다. 구조 작업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연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튀르키예에서 지진 발생 엿새 만에 5층 건물 잔해 속에서 4세 여아가 들것에 실려 구출됐다. 데일리메일 캡처

튀르키예에서 지진 발생 엿새 만에 5층 건물 잔해 속에서 4세 여아가 들것에 실려 구출됐다. 데일리메일 캡처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지진 피해 지역 곳곳에선 이처럼 기적의 생환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가지안테프에서 매몰됐었던 일가족 5명이 한꺼번에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이들은 "신은 위대하다"라고 말하며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13세 소녀 에스마 술탄도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 구조대원들은 술탄을 구하면서 "당신은 기적"이라고 했다.

구조대원들이 11일(현지시간) 지진 직격타를 입은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구조대원들이 11일(현지시간) 지진 직격타를 입은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큰 지진 피해를 입은 카라만마라슈에서도 70세 할머니 메넥세 타박이 살아돌아왔다. "주민들이 콘크리트 잔해를 뚫고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는 그를 보면서 신을 향해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타박은 "거기 세상이 있는가"라고 말하는 등 생존 사실에 감격했다. 같은 지역에서 건물 잔해 속에 묻혔던 27세 남성 무함마드도 140시간 만에 구조됐다. 현지 방송 영상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구출되자 구조대원들은 "알라는 위대하다"고 환호했다.

튀르키예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인 하타이주(州)에선 어린 소녀 다나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지 150시간 만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선 생후 7개월 된 '함자'라는 이름의 아기가 지진 발생 140시간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또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된 신생아도 지진 발생 128시간 만에 구출됐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아기가 어떻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크리스토퍼 콜웰 미국 캘리포니아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영하의 추위에서 잔해에 갇혀 물도 없이 130시간 동안 생존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 대원들이 65세 여성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다. 뉴스1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 대원들이 65세 여성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다. 뉴스1

튀르키예로 급파된 한국 긴급구호대의 구조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튀르키예 안타키아 지역에서 탐색·구조 활동 중인 우리 긴급구호대는 11일 저녁 생존자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고 밝혔다.

생존자들은 17세 남성과 51세 여성으로 같은 건물에서 구조됐다. 구조된 남성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여성은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 이로써 한국 구호대는 지난 9일 구조 활동을 시작한 이후 총 8명의 생존자를 구조했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가 12일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현지 구조팀과 합동으로 지진 피해자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가 12일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현지 구조팀과 합동으로 지진 피해자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생존자 수색이 이어지며 사망자와 부상자 집계도 빠르게 늘고 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2일 현재 2만9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유엔은 "사망자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약 8만 명이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 중"이라며 "100만 명 이상이 임시 대피소에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부상자가 속출하자 튀르키예 당국은 군함들을 임시병원으로 개조해 이번 지진에 직격탄을 맞은 튀르키예 남부로 긴급 투입했다. 튀르키예 국방부는 "이번 작전에 상륙함 두 척이 동원됐으며 외상·정형외과 수술을 위한 병상 560개가 설치됐다"고 밝혔다.

구호품 등 국제사회의 원조가 피해지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거리 곳곳에는 시신을 담은 가방이 즐비하고 터전을 잃은 생존자들은 부패한 시신에서 스며나오는 악취를 막으려 마스크를 쓴 채 추위, 배고픔과 싸우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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