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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관 폭발, 바이든 지시" 폭로…중·러 발칵, 美언론은 침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가스관의 폭발 배후는 미국”이라는 내용의 최근 미 80대 탐사전문 기자의 보도를 두고 중국과 러시아의 진상 규명 촉구가 잇따르는 가운데 미 주류 언론은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해 대조를 보이고 있다. 미 백악관과 관련 당국은 해당 보도에 대해 “완전히 거짓이고 허구”라는 입장만 밝힐 뿐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는 상황이다.

노르트 스트림은 러시아에서 출발해 독일을 경유하는 대유럽 파이프라인가스(PNG)로 2011년부터 1호 가스관(노르트 스트림 1)이 운영되고 있었고, 2021년 말 완공된 2호 가스관(노르트 스트림 2)도 개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26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폭발이 발생해 언제 복구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지난해 9월 26일 폭발된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 3곳 중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이 매설된 덴마크령 보른홀름 섬 앞바다에서 가스가 대량 유출되고 있다. 사진은 폭발 이튿날 덴마크 공군 F-16 전투기에서 촬영한 것이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26일 폭발된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 3곳 중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이 매설된 덴마크령 보른홀름 섬 앞바다에서 가스가 대량 유출되고 있다. 사진은 폭발 이튿날 덴마크 공군 F-16 전투기에서 촬영한 것이다. AFP=연합뉴스

탐사보도 기자 세이무어 허쉬(85)는 지난 8일(현지시간) 서브스택(저작물 유료 구독 플랫폼) 계정을 통해 “노르트 스트림 폭발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지시였다”며 비밀공작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올렸다. 허쉬는 베트남전쟁 당시인 1968년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담은 ‘미라이 학살’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은 이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내 가혹 행위 등 미국이 해외에서 저지른 각종 공작을 추적 보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뉴요커에 기고해오던 허쉬는 지금은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 중이다.

허쉬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 해군 특수 잠수요원들이 지난해 6월 노르트 스트림 1ㆍ2 가스관 4개 중 3개에 C4 플라스틱 폭약을 설치했고, 3개월 뒤 미 중앙정보국(CIA)이 노르웨이군의 도움을 받아 폭발시켰다”고 보도했다. 동대서양ㆍ지중해를 관할하는 미 6함대가 지난해 6월 발틱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연례훈련(BALTOPS)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가스관에 폭약을 설치했고, 폭발 당일 노르웨이 해군의 P-8 ‘포세이돈’ 초계기가 일상적인 비행을 하는 것처럼 위장해 떨어뜨린 소노부이(sonobuoyㆍ음파탐지 부표)를 통해 원격 신호를 보내 이를 폭발시켰다는 게 그의 보도 내용이다.

"미국 언론 '미스터리' 취급"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부터 노르트 스트림 2 건설 등과 관련해 각종 제재를 하며 계속 반대해왔다. 독일ㆍ프랑스ㆍ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들의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미국이 액화천연가스(LNG)를 유럽에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위한 최대 걸림돌이 노르트 스트림이란 풀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유럽 각국에 러시아산 가스 수입 중단을 압박했고, 이에 가장 반대하던 독일도 국제사회의 비난에 처하자 결국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급격히 줄였다. 이와 관련, 허쉬는 “러시아가 수익성이 좋은 가스관을 파괴하려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다. 반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가스관 폭발 나흘 뒤)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에너지 무기화를 없앨 엄청난 기회라고 했다”며 미국 배후설을 강조했다.

허쉬는 기사에서 미국 주류 언론의 행태도 비판했다. 그는 “가스관이 폭발됐는데도 미국 언론은 이를 ‘미스터리’처럼 취급했다”며 “게다가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수리 비용 견적을 받았다는 사실과 관련해 ‘누가 공격 배후인지 알기가 복잡하다’는 식으로 문제의 핵심을 비껴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가스관에 대한 위협을 제대로 파헤친 미국 주요 신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공개적으로 국제조사 해야"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당사자인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정찰 풍선’ 이슈를 두고 골이 깊어진 중국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례가 없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기반시설 파괴 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국제 조사를 촉구한다”고 말했고,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튿날 정례 브리핑에서 “만약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고 규탄받아야 할 행위”라며 “미국이 책임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매설 지도와 주변국 국기가 독일 북부 루브민 항의 한 컨테이너에 그려져 있다. 지난해 9월 폭발 사고 직후 가스관은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매설 지도와 주변국 국기가 독일 북부 루브민 항의 한 컨테이너에 그려져 있다. 지난해 9월 폭발 사고 직후 가스관은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반면 미 정부는 ‘음모론’이라며 맞서고 있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허쉬 기자의 보도 당일인 지난 8일 “완전히 거짓이며 허구”라고 말했다. CIA와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같은 입장을 내놨다.

일각에선 “허쉬가 익명의 취재원에 의존해 보도를 부풀린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보도에서 출처는 익명의 취재원 한 명뿐이어서 해당 내용을 확증할 수 없었다”며 “과거 허쉬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은 거짓이었다’고 폭로할 때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진 못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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