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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직방도 당했다…잡코리아 10년 싸운 '크롤링' 법정 논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이 “스타트업 방픽이 ‘크롤링(crawling·자동으로 웹사이트 정보 수집 및 가공)’을 못하게 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거대 플랫폼과 스타트업 사이 크롤링 분쟁이 늘어나는 가운데 법원이 ‘데이터베이스(DB)권’ 침해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한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2부(부장 이영광)는 “방픽은 크롤링으로 얻은 데이터를 폐기하고, 직방에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3일 판결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방픽 어플의 캡처 화면.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직방, 다방 등 부동산 정보 플랫폼의 거래 정보를 모아 제공하고 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방픽 어플의 캡처 화면.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직방, 다방 등 부동산 정보 플랫폼의 거래 정보를 모아 제공하고 있다.

크롤링은 ‘크롤러’로 불리는 프로그램이 웹데이터를 긁어와 수집·가공하는 것으로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로 꼽힌다. 방픽은 크롤링 기술을 활용해 여러 부동산 플랫폼에 등록돼 있는 매물 정보를 한 곳에 모아 제공하겠다며 2020년 5월 출범했다. 직방의 매물 정보 역시 복제돼 일부 가공을 거친 다음 방픽에서 제공됐는데, 2020년 5월 기준 방픽에 게재된 약 45만개의 매물정보 중 직방의 매물정보는 약 20만개였다.

직방은 “부동산 중개인이나 임대인으로부터 매물정보를 수집해 DB 체계를 구축하고 상당한 인적·물적 투자를 해왔다”며 “방픽이 허락 없이 매물정보를 도용해 게재하는 것은 저작권법상 DB 제작자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방픽이 타인의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반해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부정경쟁방지법상 책임도 물었다.

반면 방픽은 “직방에 게재된 매물정보는 공인중개사나 임대인이 직접 입력한 것을 지역별로 배열한 것에 불과해 ‘DB’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방픽에 게재되는 직방 매물은 직접 링크 방식으로 직방 홈페이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직방 영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도 항변했다.

법원은 직방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직방 매물 정보가 DB에 해당한다고 봤다. 저작권법상 DB는 ‘소재를 체계적으로 배열 또는 구성한 편집물로서 개별적으로 그 소재에 접근하거나 그 소재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한 것(제2조 제19호)’을 뜻한다. 재판부는 직방이 안심광고정책이나 헛걸음보상제, 삼진아웃제 등을 도입하는 등 DB 구축에 상당한 투자를 한 점도 고려했다.

직방이 이용약관에서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크롤러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도, 방픽이 크롤링 방식으로 매물 정보를 복제해간 것도 권리 침해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방픽 이용자들이 굳이 직방으로 이동하지 않더라도 주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직방 이용자 수나 이용 시간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방픽 측은 “기존 크롤링 방식처럼 상시적·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 대신 직방에 접속해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이라며 ‘지능형 크롤링 시스템’ 특허 등록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시스템을 이용하더라도 데이터를 임의로 복제해 게재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대법도 지난해 'DB 보호' 해석 기준 마련 

데이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크롤링’을 둘러싼 분쟁은 IT업계에서 뜨거운 화두가 됐다. 취업정보 플랫폼 사람인과 잡코리아는 10년 동안 법정 다툼을 벌였다. 2017년 대법원은 “사람인이 무단으로 잡코리아 정보를 크롤링해 이익을 해쳤다”며 민사 소송에서 잡코리아에 승소 판결했다. 잡코리아에 게재된 채용정보 DB가 저작권법 보호를 받는지부터 쟁점이 되던 때였다. 저작권법은 DB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할 경우에 한해 보호하고 있는데(제93조), 이 ‘상당한’의 범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됐다.

해석 기준을 내놓은 건 지난해 5월 대법원이었다. 야놀자 정보를 끌어가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심명섭 전 위드이노베이션(여기어때 운영사)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은 “상당한 부분의 복제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는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크롤링한 정보가 전체 DB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DB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 상당한 투자를 했는지를 살핀다는 것이다. 야놀자 정보는 회원가입 없이도 자유롭게 접근 가능했고 상당수 이미 알려진 정보였던 데다, DB 갱신 등에 대한 자료도 없었다는 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다만 야놀자가 여기어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는 부정경쟁행위가 인정돼 1·2심에서 승소했다.

지난해 5월 네이버가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윈중개를 상대로 DB권 침해금지를 청구하며 낸 소송 역시 직방-방픽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에 배당돼 있다. 직방 측은 대법원이 내놓은 기준에 따라 ‘권리 침해’를 입증했다는 데에 의미를 뒀다. 김경환 변호사(법무법인 민후)는 “대법원 판결 이후 나온 첫 사례”라며 “DB권에 관한 대법원의 변경된 기준에 입각해 직방의 DB권이 인정됐고 방픽의 침해 사실이 인정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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