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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구감소 패닉…'호구' 취급하던 2.9억명에 손 내민 이유 [영화로운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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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뉴스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곤 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낯선 땅의 사람들에게 금세 감정 이입이 되죠. 영화를 통해 더이상 ‘먼 나라’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국제 뉴스를 전합니다.

“결국 사람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친구가 죽었습니다. 험한 공사판에서 유일하게 위로가 됐던 이가 술 마시다 죽고 말았습니다. 누추한 차림의 중년 남자 라오자오(자오번산)는 빨리 장례를 치르자는 주변의 말에도 굳이 시체를 끌고 먼 길을 나섭니다. 죽으면 꼭 고향에 데려다 달라는 친구에게 의리를 지켜야 한다나. 그렇게 시체와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누가 봐도 빈털터리에 어리숙해 보이는 이 남자.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영화 '낙엽귀근' 스틸 이미지

영화 '낙엽귀근' 스틸 이미지

영화 ‘낙엽귀근’의 주인공 라오자오는 전형적인 중국의 농민공입니다. 중국에선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일컬어 ‘농민공’이라 하는데요. 주로 건설ㆍ제조업 등 육체노동에 종사합니다. 1978년 개혁ㆍ개방을 선언한 중국의 경제 성장을 떠받친 주역으로 약 2억9600만 명(2022년 기준) 정도로 추산됩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이들 손에서 탄생했죠.

그러나 농민공의 삶은 열악합니다. 중국 관련 보도나 대중매체에 종종 등장하는 ‘빈곤한 노동자’를 떠올려 보세요. 라오자오가 그 중 한 명이고요. 그런데 요즘 중국 정부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얼마 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정부가 농민공에 ‘도시 후커우(戶口ㆍ호적)’를 더 많이 발급해주고 복지 혜택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는데요. 그게 대체 뭐기에 큰 선심 쓰듯 준다는 걸까요?

중국 북서부의 화학산업기지. 중국의 농민공은 이 나라 경제 성장의 주역이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북서부의 화학산업기지. 중국의 농민공은 이 나라 경제 성장의 주역이다. 신화=연합뉴스

도시화ㆍ산업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것은 어느 국가에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만 왜 특별히 ‘농민공’이라 부르느냐. 이들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방침이 다소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1950년대부터 출생지에 따라 '후커우'를 발급해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했는데요, 개방 이후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이를 유지합니다. 농민들이 마구잡이로 몰려와 농촌이 텅 비고 도시는 과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시민과 농민을 엄격히 구분한 거죠. 도시로 와 일하는 걸 막진 않되, 해당 도시민 후커우가 있어야만 그곳에서 의료ㆍ교육ㆍ보험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겁니다. 농민에겐 도시 후커우를 주지 않으니 당연히 처지는 열악해졌습니다. '중국판 카스트’란 말이 나올 정도로요.

영화 속 라오자오는 속된 말로 ‘호구’ 중의 호구입니다. 같은 농민공들에게 차비를 빼앗기고, 위기에 처한 이를 도와줬다가 뒤통수를 맞는 등 온갖 산전수전을 겪죠. 탈탈 털린 그는 어쩔 수 없이 죽은 친구 몫으로 나온 위로금으로 밥값을 내려 하는데요. 식당 사장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그 돈, 위조지폐였다는 걸요. 중국 사회의 농민공이 어떤 위치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영화 '낙엽귀근' 스틸 이미지

영화 '낙엽귀근' 스틸 이미지

그러던 중국 정부가 태도를 바꾼 건 인구가 쪼그라드는 데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 성장이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중국에선 61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는데요. 사람은 줄어드는데 경제 성장의 엔진인 제조업 기업들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자 농민공에 주는 혜택을 부랴부랴 늘리기로 한 겁니다. SCMP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은 인구 감소와 그로 인한 경제 위기에 강력한 해결책이 된다”고 진단했죠.

그러나 농민공의 삶이 곧바로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란 게 외신의 분석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에서 “농민공들은 임금이 연체돼 정당한 불만을 제기해도 탄압받기 일쑤”라고 전했습니다. 그 때문에 후커우 제도가 점차 완화되는 추세임에도 이 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후커우 제도가 있기에 농민공들이 ‘돌아갈 곳(농촌)’이 있어 중국 사회 성장을 안전하게 뒷받침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들의 삶이 열악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제조업 현장에 농민공이 부족한 건 MZ세대 농민공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거부하고 배달 등 서비스업으로 빠져나간 탓”이란 분석도 이런 현실의 단면입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국의 유명 감독 장양은 ‘낙엽귀근’을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냅니다. 중국 정부가 농민공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들을 검열ㆍ탄압해왔기 때문인데요. 코미디라지만, 영화를 볼수록 웃기기보다는 애잔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뒤통수만 맞던 라오자오는 귀인들도 만납니다. 끝내는 그 길에서 일생을 약속할 사람도 얻게 되죠. 현대 중국과 뗄 수 없는 존재인 농민공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 마치 ‘나는 당신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고백하는 작품 같아요.

‘낙엽귀근’은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결국은 자기가 본래 났거나 자랐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영화는 고향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농민공의 처지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새로운 정책들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이들은 꼭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새로운 터전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구 대국 중국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61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인구 대국 중국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61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그래서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중국의 인구 문제, 달라진 농민공의 위상은 이 나라 제조업에 공급망을 얹은 우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 기업들 역시 중국의 농민공 부족과 계속해서 상승하는 임금, 노동자 권리 향상에 발맞춰 대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죠. 우리 역시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영화 '낙엽귀근' 스틸 이미지

영화 '낙엽귀근' 스틸 이미지

용어사전영화 '낙엽귀근'

'중국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리는 배우 자오번산이 주인공을 맡은 작품. 장양 감독이 연출해 2007년 내놨다. 하와이국제영화제, 벤쿠버국제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주요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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