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제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득시키고 공감을 얻으려고 노력해왔는데, 이번만큼은 ‘이해해 달라’고 외치고 싶지 않았어요.”
9일 종영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 안수영을 연기한 문가영은 처음으로 자신이 연기한 인물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했다. 종영 이튿날인 10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사실 우리가 연애를 하고 이별하는 사랑의 모든 상황들을 100% 이해하면서 흘려보내진 않지 않느냐”며 “누구나 사랑 앞에 흔들리고 나 자신도 나를 알 수 없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기에 수영이를 답답해하면서도 이해하려 애써주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수영은 극의 주인공이면서도 가장 심리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고졸 은행원으로, 같은 지점에서 일하는 대졸 공채 출신 하상수(유연석)에게 끌리지만, 상수가 머뭇거리는 찰나를 본 뒤로는 철저히 그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재력·학력 차이에서 비롯된 계급적 격차, 과거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 등이 수영으로 하여금 사랑을 회피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지만, 극 중 수영의 입을 통해 속 시원히 설명되진 않는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면서도 후반부까지 명확히 이어지지 않는 상수-수영의 모습에 “고구마 먹은 것 같다”며 답답해하는 시청 평도 많았다.
하지만 문가영은 “수영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며 “수영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려고 애써주는 시청자들 모습이 내가 원했던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드라마가 전혀 공감이 안 됐다면 오히려 다들 무관심하셨을 텐데, 이 정도로 많은 분들이 토론해주셨다는 건 인물들의 감정을 언젠가 겪어봤거나 당해봤기 때문 아닐까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감정들을 불편할 만큼 현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내색하지 않는 안수영…나와 많이 닮아”
속내를 알 수 없는 수영의 모습은 문가영이 철저히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그는 “수영이는 살아온 모든 환경이 가혹했고 삶의 선택지 폭이 넓지 않았다”며 “차라리 확 울어버리길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수 있지만, 안수영은 그렇게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수영의 처지가 안쓰러워서 저절로 눈물이 날 때면 눈물을 닦고 다시 찍기도 했다. “소리 내서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방법을 모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떨어질 때가 있었는데, 혀를 깨물어가며 참기도 했던 순간들이 기억나네요.”
“제가 곧 안수영이었다” “저만은 안수영을 완벽히 이해했다” 등의 말을 자신 있게 한 문가영은 수영에게 가장 공감이 갔던 모습으로도 “내색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저도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아요. 힘든 걸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도 되게 자존심 상해하고요. 제 입으로 ‘못한다’고 말하는 걸 용납하지 못해요. 스스로에게 가혹한 잣대가 있다는 점에서 사실 수영이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 알았지만…”
작품을 선택할 때 “그 시기에 문가영이 말하고 싶어 하는 소재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작품을 택하려 한다는 그는 ‘사랑의 이해’도 “딱 그 시기에 하던 고민과 맞아 떨어진 행운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인간관계와 사랑에 대해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을 필모그래피에 넣는 건 참 행운이겠다는 생각에 시놉시스만 읽고도 너무 하고 싶었다”면서 “사실 소재와 결이 대중적으로 시청률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만한 작품은 아니란 걸 알았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하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2006년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래 쉼 없이 작품에 출연해온 문가영은 간만에 차기작이 없는 상태로 휴식기를 갖고 있다. 그는 “쉬면서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들을 돌아보니 공통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인물들이더라”며 “그게 지금 문가영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나도 뒤늦게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이해’가 다양한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의 관계를 통해 사랑을 이해(理解)해보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끌렸듯,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이야기들에 눈길이 간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다독가인 그는 쉬는 동안 “읽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져서 한 달에 7권을 읽었다”며 올해 독서 목표는 밀란 쿤데라의 전집을 끝내는 것이라고 했다. 밀란 쿤데라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그의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사랑의 이해’와도 비슷하다. 되게 불친절하다”며 “한 사람에 이입해서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장마다 이 사람 입장이 됐다가 저 사람 입장으로 바뀐다. 그걸 이해하는 건 독자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인물을 이해하려는 과정을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며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려고 매우 애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