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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주인도 바꾼 행동주의, 주주환원 고삐 더 당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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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호 03면

SM 사태로 본 행동주의펀드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K팝 왕국’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 다툼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SM 1대 주주이자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자신의 지분을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에 넘기기로 했다. 하이브는 이수만의 지분 18.46% 가운데 14.8%를 주당 12만원, 총 4228억원에 인수한다고 10일 공시했다. 앞서 카카오가 SM 현 경영진과 손잡고 지분 9.05%를 확보하면서 이수만을 축출하는 모양새였지만, 이수만은 동종업계 최대경쟁자인 하이브에 지분을 넘기는 ‘적과의 공생’을 선택했다. 계약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BTS와 NCT가 한솥밥을 먹는, K팝 공룡 기업이 탄생한다.

이수만

이수만

SM 사태의 발단은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이하 얼라인)가 소액주주의 표를 모아 이수만의 ‘황제 경영’ 실태를 문제삼으며 공격에 나선 지난해 3월의 주주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작 1.1%의 지분을 가진 데 불과한 얼라인의 공격이 1대주주를 경영 일선에서 몰아내고 급기야는 지배구조를 바꾸는 사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주주행동주의는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이른다. 이창환 얼라인 대표는 “주주행동주의가 지향하는 목적은 수익 창출”이라며 “다만 대주주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주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전제가 출발점이라고 했다. 글로벌 의결권 조사기관인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지난해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은 47곳에 이른다. 이는 2020년 10곳, 2021년 27곳에 비해 2배 규모로 급증한 규모다. 이는 미국(511곳) 일본(107곳) 호주(61곳) 캐나다(53곳)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준다. 최근 소액주주들의 권리 인식이 높아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 행동주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국내 주주행동주의펀드들이 과거 ‘기업 사냥꾼’ 이미지를 벗고, ‘주주 지킴이’로 거듭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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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엔터테인먼트 로고

SM 엔터테인먼트 로고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은 오는 3월 주주총회에 앞서 ‘2차 공격’에 나섰다. 트러스톤은 9일 태광산업의 독립적인 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과 배당성향을 상장사 평균인 20% 이상으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공개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이성원 트러스톤 부사장은 “태광산업은 주력산업이 견고하고, 재무구조가 안정적임에도 최근 2년간 평균배당성향은 0.3%로 전 상장사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며 “주주에게 손해를 강요하는 자본배치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러스톤은 지난해 12월에는 태광산업이 4000억원 규모로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해 무산시켰다.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이하 FCP)는 최근 “KT&G에서 한국인삼공사를 떼내라”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코스피 30권의 세계 5대 담배 회사인 KT&G의 시총이 자회사 가치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수준이라는 게 이상현 FCP 대표의 분석이다.  이상현 FCP 대표는 “핵심 자회사인 KGC인삼공사의 가치만 재평가받아도 KT&G의 주가가 크게 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SM 공격에 성과를 거둔 얼라인의 다음 타깃은 금융사들이다. 얼라인은 최근 KB금융 등 7곳의 금융지주에 “주주 환원을 당기순이익의 50% 이상으로 확대하라”며 배당을 늘리라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긴장한 금융지주들은 속속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의 주주환원책을 내놓았다. 이창환 대표는 “주주환원 정책이 미흡한 금융사들과는 3월 주주총회에서 다투게 될 것”라고 압박했다.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눈길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2006년 등장한 ‘라자드 한국기업 지배구조펀드’가 국내 행동주의의 원조격이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라자드와 손잡고 설립한 일명 ‘장하성 펀드’다. 그러나 단기 투기의 불쏘시개로 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큰 손실을 내며 결국 2012년 청산했다. 이후 삼성전자를 공격한 엘리엇매니지먼트, SK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소버린자산운용과 같은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튀로 얼룩졌다.

반면 최근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주주행동주의 펀드들은 ‘토종’ 한국형인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워 주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소액주주들이 응집력과 발언권이 커졌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같은 사회적·제도적 환경의 성숙도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선경 한국ESG연구소 ESG센터장은 “과거 주주행동주의는 지분 ‘51%’를 확보하지 않으면 동력을 갖기 어려웠다면, 지금은 ESG가 중시되며 여론으로도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 1%의 지분으로도도 이사회를 뒤흔드는 폭발력의 근간이다. 일각에서는 행동주의가 기업 경영에 과도한 압박을 가한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기업의 주주환원 정책 확대에 일조하는 것은 긍정적이나, 경기침체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자제 주문에도 ‘폭탄 배당’을 내세운 것은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행동주의의 목적이 진정 그 회사와의 동반성장을 위한 것인지, 펀드의 단기 성과를 높이기 위한 움직임인가도 사안별로 따져봐야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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