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AI 예술 시대] 직접 그림 그리기 시켜보니
“AI가 다 해먹는 세상.” 웹툰 ‘신과 함께’로 유명한 만화가 주호민이 지난 10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의 제목이다. 글을 입력하면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인공지능(AI) 시스템들이 한 때 인간 고유의 것으로 여겨진 창작의 영역을 넘보는 가운데 웹툰 작가 같은 창작자들에게 어느 정도 위협이 될지 라이브 시청자들과 논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주제의 동영상과 글이 지난 수개월간 소셜미디어에 급격히 많이 올라왔다.
AI그림, 정치 평론 동영상에 활용할 만
이른바 3대 AI 이미지 생성기라고 불리는 미국의 ‘달리(Dall-E)2’와 ‘미드저니(Midjourney),’ 영국의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이 지난해 7-8월에 차례로 일반에 공개된 여파다. 특히 국내 웹툰·게임 종사자들은 스테이블 디퓨전을 기반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 이미지를 뛰어나게 만들어내는 ‘노블 AI’의 출현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AI가 그려주는 그림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반응일까. 먼저 달리2 공식 웹사이트부터 찾았다.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와 픽사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로봇 월-E에서 이름을 따온 달리는, 지금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는 대화형 AI 서비스 ‘챗GPT’를 내놓은 미국 연구소 오픈AI가 개발했다. 챗GPT의 기반인 AI 언어 모델 GPT-3이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원리를 이미지에 적용한 것이다. 2021년 초에 처음 나왔으며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2022년 하반기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달리 사이트는 구글 아이디로 손쉽게 로그인할 수 있다. 이용 첫 달에는 이미지를 50회 생성할 수 있는 50크레딧이 무료로 제공되고 그 후에는 달마다 15크레딧이 제공되며 그 이상 쓰고 싶으면 유료로 크레딧을 충전하면 된다. 입력창에 프롬프트(prompt), 즉 원하는 이미지를 묘사하는 문구를 쓰고 ‘생성(generate)’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AI가 한글을 이해하지 못하니 영문으로 써야한다.
시험 삼아 ‘서로 싸우는 국회의원들,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영어로 쓰고 생성 버튼을 누르자 1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 4개의 만평 스타일 그림이 나타났다. 손 모양 등 디테일이 다소 허술했지만 전체 분위기는 잘 살아있어서 정치 평론 동영상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없으면 다시 생성 버튼을 눌러 새로운 이미지 4개를 얻을 수 있다.
그 후 ‘한복 입은 토끼, 귀여움,’ ‘기계적이고 미래적인 우주선이 된 거북선’ 등의 문구를 입력해 보았다. ‘한복 입은 토끼’는 사진과 비슷한 이미지, 3D 렌더링 이미지 등이 비교적 만족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우주선이 된 거북선’의 경우에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거북선의 모습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에 거북선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고 묘사가 제대로 못 되어서일 수도 있다”고 카이스트에서 AI 체험 연구실을 운영하는 이탁연 교수가 설명했다. “달리와 미드저니 모두 아시아 문화에 대한 데이터 학습이 부족해 보인다”고 한 유저는 평했다.
가장 완성도 높은 이미지는 ‘근처 화산 폭발로 화산재 구름에 덮인 현대 도시, 유화’와 ‘카페 테이블에 앉아 대화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남녀, 에드워드 호퍼 그림 스타일’을 입력했을 때 나왔다.
특히 후자의 경우, 20세기 미국 화가 호퍼가 빛과 그림자, 넓은 여백으로 대도시의 고독한 분위기를 표현한 것을 AI가 정확히 간파하고 그 핵심 특징을 오늘날의 풍경에 적용한 것이 놀라웠다. 라이벌 AI 미드저니에 같은 문구를 입력했을 때 호퍼 시대 남녀가 스마트폰을 든 1차원적 합성 이미지를 그려낸 것과 대조적이었다.
미드저니에게도 ‘우주선이 된 거북선’을 그려보게 했으나 정말 거북이처럼 생긴, 그리고 우주선보다 잠수함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생성할 뿐이었다. ‘용머리 모양의 충각과 뚜껑을 씌운 갑판이 있는 한국의 옛 전함’이라는 설명을 구구절절 붙이고 복원된 거북선 사진도 삽입했으나 별로 알아듣지 못하는 듯 점점 더 기괴한 이미지를 생성해낼 뿐이었다. 다만 미드저니는 그 어떤 이상한 그림도 디테일이 정교하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었다.
하루에 하나 하던 프로젝트 5~10개 가능
SF·판타지 게임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이미지가 미드저니의 특징이다. 지난 8월, 미드저니가 그린 그림이 미국 콜로라도 주(州) 박람회 디지털아트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그 퀄리티에 대한 찬탄과 AI 그림을 창작물로 볼 수 있느냐는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종합해볼 때, AI가 생성해 낸 그림의 퀄리티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림 업계에 충분히 지각변동을 가져올 만했다. 이탁연 교수는 “단편적이고 비교적 단순한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 (AI에 의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일러스트레이터가 AI를 활용해 더 잘할 가능성도 크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자산으로 삼아 자신의 마지막 터치를 추가해서, 혼자 했을 때 하루에 프로젝트 하나 하던 것을 5개-10개 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웹툰 작가 주호민 역시 앞서의 영상에서 “(웹툰) 창작자가 위협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창작자를 도와주는 기술적 어시스턴트들, 배경(그림)이나 채색을 하는 분들은 빠르게 (AI로) 대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상에서 달리2의 ‘아웃페인팅’ 기능을 소개하며 웹툰 작가들도 이 기능을 이용해 배경 문제를 혼자 해결하게 될지 모른다고 예측했다. 이 기능은, 이를테면 17세기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업로드하고, 소녀의 머리 부분만 그려진 원작 바깥에 소녀의 몸이 서있는 부엌 공간이 있을 것이라 상상해서 그것을 묘사하는 글을 입력하면, 원작과 비슷한 명암과 질감으로 소녀가 부엌에 선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을 생성하는 것이다.
저자·강사·유튜버·웹소설가 등 콘텐츠 창작자들의 활동은 한층 풍요롭게 될 전망이다. 콘텐츠에 넣을 삽화를 예전에는 간단한 것이라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하거나 일일이 이미지 스톡 회사에서 구입해야 했는데 이제 AI를 시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물론 직업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타격을 주겠지만 그들은 AI를 적극 활용해 작품의 질과 양을 늘리거나, 아직 AI가 잘 하지 못하는 영역인 클라이언트의 세밀한 요구에 맞춘 창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AI가 인간 창작의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은 이 교수의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지금 우리 연구실은 6명의 초보, 4명의 취미 일러스트레이터, 4명의 전문 작가를 초청해 달리2로 작품을 만들게 하면서 그들이 이미지 생성 AI를 동료로, 조수로, 혹은 그저 도구로 인식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전문 작가들의 경우 AI를 참고자료 모아주는 검색엔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생각지 못했던 이미지 생성을 해도 오히려 그것을 좋아한다. 어차피 그것을 자료로 자신이 최종 작품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이교수는 설명했다. 결국 이것이 AI와 인간 예술가가 공존하며 인간이 창조성을 지켜나가는 방식일 것이다.
인간과 AI의 협업은 저작권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미술법 전공자인 캐슬린 김 뉴욕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저작권법에서는 ‘인간’만이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AI는 저작권자가 될 수 없고 저작물로 보호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인간 예술가가 창작 활동의 주체가 되어 AI의 능력을 그저 도구적으로 이용했다면 이 예술가에 해당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 귀속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주체적 개입 정도, AI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저작물로 보호 대상이 되는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AI가 과거의 컴퓨터 프로그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체성을 갖고 있으므로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법조계도 고민”이라고 했다. 이래저래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