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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예술 시대] 노상호 작가 “AI에 눈사람 보여주고 상상하게 해”…아나돌 ‘AI가 꿈 꾸도록’ 한 작품 뉴욕 모마에 전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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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호 09면

[SPECIAL REPORT - AI 예술 시대] 

미술가 노상호가 AI가 배치한 이미지를 에어브러시로 화폭에 옮긴 그림. 문소영 기자

미술가 노상호가 AI가 배치한 이미지를 에어브러시로 화폭에 옮긴 그림. 문소영 기자

평범한 목조주택 굴뚝 위로 춤추는 풍선 인형이 솟아나와 있는 그림, 무시무시하게 키가 커진 눈사람 밑에서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그림… 창덕궁 옆으로 이전해 다시 문을 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4층에는 이렇게 기묘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재개관전 ‘낭만적 아이러니’에 참여한 5인의 아티스트 중 노상호(37)의 신작들이다.

“그림 생성 인공지능(AI)에게 주택가 이미지를 주면서 그 속에 춤추는 풍선 인형을 배치해 보라고 했더니 제가 상상도 못한 굴뚝에 얹어 놓더라고요. 또 눈사람 사진의 일부를 주고 나머지를 상상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엄청나게 키워 놨어요. 하지만 AI의 결과물을 그대로 쓴 건 아니에요. 그걸 바탕으로 제가 편집을 하고 그 이미지를 화폭에 제가 에어브러시(스프레이처럼 물감을 분사해서 그리는 도구)로 그린 것이죠.” 작가는 설명했다. 그가 사용한 AI 프로그램은 달리(Dall-E)2와 미드저니(Midjourne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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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결과물, 편집하고 다시 손으로 그려

혁오 밴드 앨범 커버 그림(2015)으로 일찍부터 유명해진 작가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 만나는 수많은 “얄팍하고 쉽게 복제되고 쉽게 소비되는” 이미지들 중 몇 개를 골라 매일매일 회화로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많은 팬을 모아왔다. 그 그림들을 모아 거대한 모자이크처럼 만들어 미술관에 전시하기도 했다. 당시에 ‘왜 디지털 이미지를 굳이 다시 손으로 그려서 보여주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라는 나라는 (인간) 필터가 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라고 답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노상호 작가의 작품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재개관전 '낭만적 아이러니'에 전시되어 있다. 문소영 기자

인공지능을 이용한 노상호 작가의 작품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재개관전 '낭만적 아이러니'에 전시되어 있다. 문소영 기자

이번 신작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작가는 “AI가 다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신체를 매개로 한 것”이라며 “에어브러시를 쓴 것도 내 손길이 직접 닿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안 들어간 것도 아니라서 AI를 쓰는 작업 방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 협업 작업의 취지에 대해 “왜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리는가 생각하다가, 우리는 결국 중간적인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디지털화되지도 않고 완전히 아날로그이지도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 완전히 메타버스화되지 않는 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한 중간적인 우리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설명했다.

노 작가 외에도 순수예술계에서 AI와 협업하는 작가들이 국내에도 이미 많다. 지난해 가을, 세계적인 아티스트 듀오 문경원·전준호는 기후 위기를 다룬 다학제적 전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면서 몰입형 멀티미디어 작품 ‘불 피우기’를 선보였다. 비인간(non-human)인 돌멩이의 관점에서 지구 환경 변화와 인류 종말의 역사를 바라보는 내용인데, 그 내러티브는 “인간인 작가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해 구성했다”고 작가들이 밝혔다. 여기 사용된 AI가 바로 지금 장안의 화제인 챗GPT의 바탕이 된 GPT-3이었다.

미국에서는 “AI가 꿈을 꾸도록” 하는 작품까지 나왔다. “지금 가장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한편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뉴요커 지)라는 평을 듣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모마)의 ‘레픽 아나돌: 감독되지 않은(Unsupervised)’ 전시에서다. 미술관 로비에 2층 높이의 거대한 화면이 설치되어 있고 화면에는 색색의 물감을 짜놓은 듯한 진한 액체가 꿈틀거리고 튀어나올 듯이 파도 치며 끊임없이 형태를 바꾼다. 그 앞에는 관람객들이 앉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모마)의 ‘레픽 아나돌: 감독되지 않은(Refik Anadol: Unsupervised)’ 전시. 미술관 로비에 2층 높이의 거대한 화면이 설치되어 있고 화면에는 색색의 물감을 짜놓은 듯한 진한 액체가 꿈틀거리고 튀어나올 듯이 파도 치며 끊임없이 형태를 바꾼다. 이 작품은 현대미술가 레픽 아나돌(38)이 엔비디아(NVIDIA)의 AI를 시켜 모마에 소장된 미술작품의 사진 아카이브를 학습하고 해석하게 한 뒤 “현대 미술의 역사를 재창조하고 과거에 있었을 수도 있고 미래에 있을 예술에 대해 꿈을 꾸도록” 한 것이라 한다. [AP/연합뉴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모마)의 ‘레픽 아나돌: 감독되지 않은(Refik Anadol: Unsupervised)’ 전시. 미술관 로비에 2층 높이의 거대한 화면이 설치되어 있고 화면에는 색색의 물감을 짜놓은 듯한 진한 액체가 꿈틀거리고 튀어나올 듯이 파도 치며 끊임없이 형태를 바꾼다. 이 작품은 현대미술가 레픽 아나돌(38)이 엔비디아(NVIDIA)의 AI를 시켜 모마에 소장된 미술작품의 사진 아카이브를 학습하고 해석하게 한 뒤 “현대 미술의 역사를 재창조하고 과거에 있었을 수도 있고 미래에 있을 예술에 대해 꿈을 꾸도록” 한 것이라 한다. [AP/연합뉴스]

모마에 따르면, 이 작품은 현대미술가 레픽 아나돌(38)이 엔비디아(NVIDIA)의 AI를 시켜 모마에 소장된 미술작품의 사진 아카이브를 학습하고 해석하게 한 뒤 “현대 미술의 역사를 재창조하고 과거에 있었을 수도 있고 미래에 있을 예술에 대해 꿈을 꾸도록” 한 것이라 한다.

미술사학자인 변경희 뉴욕대학교 교수는 미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 작품은 인간이 구상한 영상이 시퀀스와 상영시간이 정해진 채로 반복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AI가 계속 자신이 학습한 것을 곱씹으며 외부 날씨, 관람객 움직임, 주변 소음 등의 외부 조건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므로 같은 화면이 다시 나오는 법이 없다. “이번 설치 작업에서는 최소한의 매개변수를 적용하여 인공지능이…. 꿈을 꾸는 인간의 두뇌처럼 ‘상상’ 같은 작용을 하도록 최대한 간섭을, 아니 감독을, 배제한 것이다. 따라서 부제는 기계의 환각(Machine Hallucination)이다.”

AI 예측능력과 인간 창조력 구분 모호

변 교수는 “레픽 아나돌의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 로비에 전시되었다는 것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시각적 표현물이 현대미술의 범주에 속한다는 개념적 태도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뉴요커 지는 이 작품에 대한 일각의 비난에 대해 “컬러사진은 한때 시시한 상업적인 것으로 무시되다가 1976년 바로 모마에서 주요 미술관 최초로 컬러사진 전시를 열면서 그 위상이 변했다.”면서 “기계의 도움을 받은 예술”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전 속도라면 AI가 협업의 대상을 넘어 아예 인간 예술가를 대체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미디어 아티스트인 강이연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말했듯이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AI에 대해서 그 높은 예측능력(predictability)을 감응능력(sentience)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AI가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이미지를 구성하거나 사람들의 넋두리에 위로가 될만한 대답을 해주는 능력은 엄청난 데이터를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갖는 높은 예측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지, 인간 특유의 감응력과 감수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측능력이 극도로 높아지면 그것이 인간의 핵심 능력인 창조력이 대체 뭐가 다를까라는 고민도 있다”라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강 교수의 경우에는 최근 작업에 AI를 직접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주로 8k-10k의 초고화질에 초당 30프레임이 들어가는 영상을 제작하는데, 아직 AI는 이 정도 고화질 무빙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여러 참고 이미지를 찾을 때 이제는 AI에게 물어보는 것이 편리하며,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 참고물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이렇게 AI는 이미 인간 예술가들과 공존 협업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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