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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따기’ 행복주택 5채 중 1채 빈집, 수급 미스매치 심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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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호 14면

공공임대주택 공실 늘어난 까닭

‘청년→신혼부부→고령자’

청년 대상 물량을 신혼부부에게, 신혼부부도 없으면 고령자에게 공급한다는 행복주택 모집 공고 내용이다. ‘임대료 100% 할인’, ‘소득, 자산요건 배제’ 등의 입주 자격요건을 대폭 완화한 문구도 보인다. 행복주택은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라는 특정계층을 대상으로, 시세의 60~80% 수준의 임대료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유형 중 하나다. 물량의 80%는 청년(신혼부부 포함)에 배당된다. 최근 몇 년간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엔 유독 많이 보이는 단어가 있다. ‘입주자격 완화 모집’이다. 지난달에만 경상북도, 전라북도, 경기 화성, 수원, 평택 등에서 이와 같은 재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신규 모집은 미달이 나고, 기존 물량은 원래 입주자가 퇴거해 빈 집이 늘다보니 자격 요건을 완화해서라도 공가(空家)를 채우려는 것이다. ‘하늘의 별따기’였던 행복주택이 이제는 문턱을 낮춰서라도 새 입주자를 모셔와 빈집을 채워야 하는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경북 장기 미임대 비율 21.8%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행복주택의 빈방은 매년 늘어만 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건설형 행복주택 기준, 연도별 공실률을 보면 2018년 4.4%였던 공실률은 2020년 8.2%로 2배가량 껑충 뛰었고 3년 연속 8%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공공주택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해 공공임대주택 중 평형별 공급호수 10% 이상이 미임대일 때 재공급 시 입주자격을 완화하고, 최대 거주기간인 6년을 채웠더라도 계약 갱신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신혼부부는 자녀 연령이 6세 이하면 혼인기간이 7년을 초과했어도 1순위 자격이 되도록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첫째 원인으로는 시장 수요와 어긋난 공급자 위주의 정책을 들 수 있다. 행복주택 사업은 2012년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서민주거안정책’으로 산업지구, 철도부지 등 유휴부지를 활용해 임대주택 20만가구 공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원마련, 주거환경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며 실효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어받아 2017년 ‘주거복지 로드맵’의 일환으로 시행했다. 당시 문 정부는 계층별로 공급호수를 할당해 청년 21만호, 신혼부부 25만호, 고령자 5만호, 일반저소득층 39만2000호로 발표했다. 2년 뒤엔 ‘주거복지로드맵 2.0’으로 계층별로 공급호수를 더 늘리고 영구·국민·행복주택을 통합공공임대주택으로 통합키로 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애초 신규공급을 할 때 계층별로 물량 수(비중)를 정해 놓은 것이 지금의 공실률 증가 사태를 초래했다”며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청년 주거를 위한다고 하지만 숫자를 정해놓는 할당식 공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별 수요에 따른 ‘맞춤형 공급’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례로 충북 충주 첨단 행복주택은 34%가량이 3년 넘게 공가가 발생했다. 급기야는 지난해 8월 ‘2년 이상 공가에 대해 1년간 임대료 100% 할인’을 조건으로 재모집했다. 최 소장은 “고령자 1인가구가 많은 곳에 청년, 신혼부부 대상으로 그것도 초소형 면적으로 공급하니 공가가 생긴다”며 “지방의 경우 원도심도 비는데 부도심이나 외곽지역에 위치해, 기존 거주지를 선호하는 고령자 수요를 이끌어낼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행복주택 장기 미임대 비율은 경북이 21.8%로 5채 중 1채가 비었고, 충북(10.3%), 세종(9.7%)도 10% 내외를 기록했다.

소형 평형과 인프라 부족은 공실 발생을 부채질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LH토지주택연구원 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행복주택 1~3년 미만 공가 중 절반 정도(41.8%)가 19㎡ 이하의 초소형이다. 초소형은 국민임대, 영구임대 유형에선 공급하지 않고 있다. 특히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서도 초소형 공가의 재고 대비 비율은 7%, 비수도권 도 지역에선 22.9%로 더 높게 나타났다. LH토지주택연구원은 “소형일수록 공실률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공급 평형 별로 물량을 정할 때 수요 계층의 선호도와 주거 욕구 등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짚었다.

세종시의 한 행복주택은 2021년 청약이 미달돼 30% 정도 공가가 발생했다. 입주 포기의 주요 사유는 ‘인프라 부족’이었다. 성은종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그 때나 지금이나 인프라 구축 면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주변 대학유치와 산학협력 차원에서 건설이 추진됐지만 해당 계획도 늦춰지면서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비교적 도심지에 가까운 서울 강동구 행복주택에 1년 6개월째 거주 중인 박모(23)씨도 불편한 교통 사정 때문에 재계약을 고민 중이다. 박씨는 “직주근접보다 저렴한 임대료를 우선 고려해 입주했지만 마포구까지 출퇴근 시간과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반면 도심지에선 전혀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SH공사 2022년 2차 행복주택 평균 청약 경쟁률은 23.2 대 1로, 최고 경쟁률(맹그로브 신촌 30형 청년 우선공급)은 1363.8 대 1에 달한다. 전년(2021년 2차 모집) 평균 경쟁률 10.9 대 1보다 경쟁률은 더 치열해졌다.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고양의 행복주택에서 6년간 거주기간을 모두 채우고 나온 이선(30)씨는 “서울의 회사 밀집지에 행복주택이 많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며 “입지 좋은 곳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말했다. 사실상 수요가 높은 입지엔 행복주택이 설 자리가 비좁다. LH관계자는 “주요 도심지엔 사업승인이 나도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기관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며 “도심 유휴부지나 공유지라 해도 지자체장의 공약상, 도시계획상 이미 계획이 잡혀버리면 추진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의 LH보유 학교용지나, 2년여간 소송을 해온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경기 분당 ‘서현 공공주택지구’ 등이 그 예다. 지난해 기준 사업승인이 난 후 3년 이상 미착공 물량인 행복주택은 7400호에 달한다.

도심은 지자체·주민 동의받기 어려워

입지가 좋은 곳은 월세가가 생각보다 높아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도 퇴거하거나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행복주택은 임대시세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용산센트럴파크 헤링턴스퀘어 서울리츠 행복주택 19형에 혼자 거주하는 김모(83)씨는 “최근 주거취약계층 지원금도 삭감된 상황이라 월임대료가 너무 부담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행복주택의 취지를 ‘주거복지’라는 관점에서 열어놓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 소장은 “행복주택을 공공임대주택의 관점에서 본다면 계층 구분을 없애야 한다”며 “특정 연령층이나 소득으로 묶어 공급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존 원룸에 머물기보다 평형을 최대 40~60㎡ 정도로 늘리고 ‘청년+신혼부부’로 모집대상을 합쳐 공급해 공간을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수요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수급 미스매치’ 문제에 대해선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공의 역할은 수혜자를 늘리는 것인데, 입지가 좋은 곳에 짓는다 해도 소수의 당첨자만 수혜를 입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도심 내 다수 매물을 확보해 매입형 행복주택으로 공급하고, 3기 신도시 같은 신규 도심지에 택지 공간을 늘려 건설형으로 빠른 공급을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만 교통, 지역기반 시설 확충은 필수로 해야 수요를 동반한 공급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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