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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배상, 전범 기업 참여가 관건…기시다 결단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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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호 15면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지난 7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대일 관계는 반일이나 친일이 아닌 일본을 적극 활용하는 용일(用日)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근 기자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지난 7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대일 관계는 반일이나 친일이 아닌 일본을 적극 활용하는 용일(用日)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근 기자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에 빠졌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양국 정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관계 개선의 선결 조건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양국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 이어, 오는 13일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를 계기로 한·일 차관이 만난다. 17~19일 독일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에서는 박진 외교부 장관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전방위적으로 해법 찾기에 나선 것이다.

한·일 관계 정상화는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주요 외교 정책 중 하나다. 특히 상반기 방미를 앞두고 이 문제를 매듭지어 한·미·일 3각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한·일 정상간 셔틀 외교를 복원하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기대다.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초청국 자격으로 참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강제동원 협상은 기금 조성에 일본 기업의 참여 여부를 놓고 양국 이견이 팽팽하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를 만나 현재 진행 중인 강제징용 문제 협상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들어봤다.

강제징용 해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양국이 협의하고 있는 방안은 제3자 변제다. 다시 말해 한국이 정부 산하 재단(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대신 변제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의 수혜 기업 등이 참여한다. 관건은 미쓰비시 중공업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같이 실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고용했던 기업들의 참여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상으로 이 문제가 매듭지어졌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들 기업의 참여를 관철하기 위해 협상력을 집중하고 있다.”
양국이 타협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결국 협상은 결렬되는 것 아닌가.
“현재로썬 협상 타결 여부를 전망하기 어렵다. 단지 이전보다 일본 내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있다. 2013년 신일철주금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서울고법 판결이 나왔을 때 일본 여론은 싸늘했다. 한국이 이미 끝난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 트집을 잡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과거 식민지배를 했던 동남아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제기될 수 있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실질적인 소송 당사자가 1000여 명밖에 되지 않고, 이 가운데 증거 부족 등으로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200명 정도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이미 시효 3년이 지나 새로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다. 금전적으로 봤을 때 200억원 정도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이 끝내 미쓰비시 중공업 등의 배상금 참여를 거부할 것으로 보는가.
“일본은 실용주의 외교를 중시한다. 일본 정부는 협상의 성공 여부에 따른 손익을 계산할 것이다. 특히 한·일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고심은 깊을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등 최고위층의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국내 여론도 만만찮다. 전범 기업의 참여가 없으면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는 피해자들도 있는데.
“우리 정부도 이와 관련해 또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최대한 공감하는 배상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생각으로는 지원재단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경우 대법원의 판결대로 일본 기업의 국내 재산을 매각해 현금화해 지불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일본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또 다른 과제다.”
양국은 배상과 함께 사과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하고 있는데.
“여기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일본 측이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와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계승하겠다는 선에서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협상에서 보듯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이 문재인 정부 때와는 크게 달라졌다. 윤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의 불필요한 악화로 인해 글로벌 외교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대미 외교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일 관계는 단순한 양자 관계라기보다 한·미 관계 속에 숨은 히든 코드로 볼 수 있다. 한·일 관계가 나쁠 때 한·미 관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한·일을 하나의 세트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일본을 외교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일본은 우리에게 굉장히 큰 외교적 자원이자 공간이다. 제대로 활용하면 도쿄는 워싱턴에 긴밀히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고, 베이징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대북 관계에서도 일본을 외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우리 외교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크다. 이런 인식은 현 정부 내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일본에 대해 친일과 반일 구도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19세기 패러다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반일을 고집하면서 전략적 이익을 계속 추구할 수 있다면 반일도 나쁜 선택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친일이나 반일 대신 실용적으로 일본을 활용하는 ‘용일(用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일본 정부가 보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아베 신조 정부 때부터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전략적 비중을 많이 낮춘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선 한국의 지난 정부가 대립각을 세웠기에 협력의 공간이 좁아졌다고 탓한다. 그러면서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을 배제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틀을 놓고 봤을 때도 한국의 입지는 상당히 애매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반도는 일본 외교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외교의 1순위인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일본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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