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시사일본어] 파워 커플(パワーカップル)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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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호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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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초 일본의 부동산 대폭락을 부른 ‘버블 붕괴’ 이후 미동도 않던 도쿄 집값이 최근 2년여 동안의 벼락 호황으로 사상최고가 행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도쿄 시내 중고 아파트 가격이 평균 9800만 엔을 기록, 2004년에 비해 2.2배 뛰었다고 보도했다. 전세계적 부동산 침체 추세와 정반대인 일본의 ‘나홀로 불장’의 원인에 대해서는 장기 저금리로 대출 부담이 떨어진 데다 ‘파워 커플’이 대거 구매에 나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파워 커플(パワーカップル)은 영어 ‘power couple’을 발음나는 대로 가타카나로 쓴 조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고 성공한 부부’로 설명돼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정치인, 사업가, 유명 배우, 스포츠 스타 부부를 주로 지칭한다. 일본에선 쓰임새가 조금 다르다. ‘고소득 전문직 맞벌이 부부’를 뜻한다. 이 용어가 일본에서 관심을 모은 계기는 2017년 닛세이기초연구소가 ‘파워 커플’ 리포트를 처음 내면서다. 부부 모두 연 수입 700만 엔 이상 가구로 정의했다. 이들은 남편이나 아내 혼자만 1,000만 엔 이상을 버는 외벌이 고소득 가구에 비해 지출이 훨씬 많은 게 특징이다. 공무원, 대기업 직원,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 부부가 많고 구매력 뿐 아니라 정보 수집과 확산에 뛰어났다.

코로나19 기간에 나온 2022년판 ‘파워 커플’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맞벌이 부부는 1,632만 가구로 일본 전체 가구의 약 30%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31만 가구가 파워 커플인데 매년 1만 가구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연수입 1000만 엔 이상인 고소득 여성의 58.3%는 남편도 연수입이 1000만 엔을 넘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가 전체의 32.6%를 차지하고 이어 50대 30.2%, 40대 27.9% 순이다. 30대는 전문직 부부인 경우가 많고 50대는 부부 모두 정규직으로 일하며 연봉이 올라가 ‘파워 커플’이 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파워 커플은 부동산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구조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3인의 다자녀를 가진 가구도 드물지 않다. 정년 퇴직 이후 부부 둘 다 연금을 받는 덕분에 평생 소비 활동도 왕성하다. 부동산 시장의 물줄기를 바꾼 파워 커플의 힘이 저출산과 저성장 문제를 푸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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