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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기 싫어?” 교수 갑질…‘공노비’ 전락 대학원생의 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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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호 13면

인권 사각지대 K-대학원

공노비.

대학원생 박모(31)씨는 이렇게 불린다. 뜨내기 같은 기간제 교사에서 벗어나, 어엿한 정교사가 되고 싶었다. 기술교사라는 꿈을 향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려 한국교원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연고가 없는 충북 청주로 삶의 터전까지 옮겼다. 그러나 그의 꿈은, 그저 ‘꿈’에 그쳤다. 입학 첫 학기. 지도교수를 배정받은 후 그의 꿈은 물거품이 돼 흘러내렸다.

한국교원대학교 이 모 교수의 수업 강의평. 제보자 제공

한국교원대학교 이 모 교수의 수업 강의평. 제보자 제공

지도교수 이모씨는 대놓고 학생들을 ‘공노비’라고 불렀다. ‘집에 컴퓨터를 설치해 달라’, ‘자료를 집으로 가져와라’는 부탁은 예삿일이었다. 교수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선 사실상 365일 24시간 호출 대기 상태였다. 강의실에서의 차별도 덤으로 따라왔다. 지도교수는 성별로, 출신 대학으로, 부모님의 직업으로 학생을 차별했다. 박씨는 내세울 게 없었다. 박씨를 비롯한 학생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졸업하기 싫어?”라는 협박과 횡포가 되돌아왔다. 수업마다 “맘에 안 들면 갑질로 신고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일이 반복됐지만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참을 수 없었다. 부당대우에 불만을 제기했다. 돌아오는 건 ‘졸업 불가’ 통보와 실습실 출입 금지 조치였다. 박씨는 “올해 임용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는데, 지도교수의 갑질로 졸업요건을 갖추지 못해 2차 시험에 응시조차 못 했다”며 “교사의 꿈을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 이런 대우를 당하고 졸업도 못 하니 너무 허탈하고,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결국 업무방해, 횡령 등의 혐의로 지도교수를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당한 갑질은 입증할 방법이 없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대학생 때 죄 많이 지어 가는 곳’ 자조

‘대학생 때 죄를 많이 지어서 가는 곳’이 대학원이요, ‘21세기 현대판 노예’는 대학원생이다. 농담 같은 말이라고 한다면, 아주 오래된 농담이자, 현실로 본다면 대학원생들에게는 진담이다. 전공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사실상 교수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곳이 ‘K-대학원’의 현실. 교수가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고(2015년), 제자 뺨을 때렸다는 건(2022년)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그 밑에는 억압과 착취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국내 최고의 연구대학인 카이스트 대학원에서만 사적으로 교수에게 노동력을 제공했다는 대학원생이 6.2%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 세계 대학원 중에서도 유독 ‘K-대학원’이 인권침해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입학하는 순간부터 졸업하는 날까지 지도교수가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컨트롤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지도교수의 승인 없이는 학위 취득 여부를 결정하는 논문이 통과될 수 없다. 때문에 학업 범위를 넘어서는 사적 요구를 거절하거나 불이익을 당해도 고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른바 ‘자발적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최동혁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지도교수가 전적으로 갖고 있는 학위 취득 여부 결정권은 강력한 무기”라며 “졸업심사위원회가 있지만 유명무실하고, 지도교수에게 권력이 쏠려있다 보니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지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영국·독일 등 해외 대학원의 경우 독립기관인 졸업심사위원회의 권한이 강력하지만, 국내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제주대학교에서도 지도교수의 갑질로 논문 심사 신청조차 받지 못했던 사례가 등장했다.

가까스로 졸업하더라도 지도교수의 ‘지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석·박사 졸업생의 경우 학위를 취득해 학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계 인맥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악순환이 된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대학원 특성상 ‘누구의 제자’라는 타이틀이 중요하고, 이를 중심으로 학계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며 “학생들 입장에서는 교수에게 복종하거나, 기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우리나라 대학원생의 지위는 이중적이다. 학생이자 근로자다. 연구실에서 공부와 노동(혹은 시중)을 겸한다. 이러한 이중적 지위는 인권 사각지대를 만들고 만다. 최 회장은 “국내 대학원은 교수가 사장님, 대학원생은 직원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며 “대학은 연구실 등 인프라만 제공하고, 모든 권한을 지도교수에게 위임해 방관하고 있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미국·프랑스 등 해외의 경우 학교가 직접 학생과 고용 관계를 맺고, 교수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며 감시·견제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학원생의 ‘밥줄’인 연구비도 교수가 쥐락펴락하게 된다. 인건비에 반영되는 ‘연구 참여율’을 교수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서다. 최 회장은 “연구 과제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도, 이에 따른 인건비도 모두 교수의 주관적 판단하에 결정되기 때문에 업무 과중이나 의도적 배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직장인 성격이 강한데, 교수의 권한 남용으로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2022년 카이스트 대학원 연구환경실태조사에 따르면 카이스트 대학원생의 연구 평균 시급은 7644원. 지난해 최저시급인 9160원보다 1516원이 모자란 액수다. 카이스트 대학원 재학생 A씨는 “국내 최고의 연구대학에 재학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자부심은 편의점 알바생보다 못한 대우에 꺾이고 만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 재학생 B씨는 “일과가 끝난 후 지도교수에게서 나를 찾는 전화가 올까 매일 조마조마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교수가 사장님, 대학원생은 직원 분위기”

부당대우를 받는 대학원생들의 하소연은 이내 벽에 부딪혀 메아리가 된다. 부당대우를 신고하고 상담을 받고 싶지만 그런 기관조차 마땅치 않다. 2012년 서울대학교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에 인권센터가 들어서고,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확산됐다. 하지만 실상은 유명무실하다. 박씨 역시 학교 교학처 등의 문을 두드렸으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 학생회장도 “지난해 뺨을 때린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가해자 교수와 동일한 학과의 교수가 인권센터 보직을 맡고 있어 상당히 곤란했다”고 설명했다. 이우창 전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인권센터와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갖춘 대학이 드물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대학원은 학부처럼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인 분위기도 아닐뿐더러 각자의 학과, 랩실에 분리돼 있어 서로의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걸림돌”이라고 전했다. 장다혜 연구위원은 “인권센터 등이 설치된 것은 괄목할만한 변화였지만, 기존 상담센터 인력의 업무만 가중되는 등 실질적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며 “인권위원회 구성원에 학생위원을 포함해 구성을 다양화하고, 법적 처벌 이외의 징계 수위도 현실화하는 등 아직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분석했다.

대학과 정부는 방관하는 모양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열악한 국내 대학원의 원인으로 대학과 정부의 무관심이 꼽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은 양적 팽창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질적 향상에는 소홀했다. 정부 또한 학부 교육에는 지원과 평가를 아끼지 않았지만 지식 생산의 허브인 대학원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논문 등 실적에만 매달리는 성과주의에 매몰됐고, 인권침해와 부당대우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원은 연구기관이기 이전에 연구자를 양성하는 기관인데, 원생들을 어떻게 훌륭한 연구자로 길러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며 “교수들이 일반 연구원이나 출연연구기관과 동일한 수준의 성과를 내는 것에만 매달린다”고 답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성과주의에 매몰된 대학원은 쇠퇴로 치닫는다. 이우창 전 위원은 “지금 20대들은 대학원을 마치 ‘X소기업’(중소기업을 비하하는 용어)처럼 바라보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며 “인권침해를 당해 구제를 요청해도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거나, 2차 가해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끊임없이 공론화되는 상황에서 대학원 진학을 꺼리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수년간 대학원 정원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대학과 교수들이 의식적으로 교육·연구문화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대학원 진학 기피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공노비’가 수두룩한 K-대학원의 현실은 우수 연구인력의 해외 유출을 부추긴다는 진단도 나온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2~2021년) 해외로 떠난 이공계 유학생은 34만6239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대학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지금 학계의 중추 역할을 하는 대학원생까지 사라지면 국가 연구·개발 경쟁력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학원이 교육기관, 연구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그 실태를 점검하는 곳은 있는가. 엄 위원은 “아니다. 전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늦었지만, 대학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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