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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사기 의혹' 윤미향 미소…1심 8개 혐의 대부분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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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피고인 윤미향이 기망 및 부정한 방법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각종 후원금·나비기금·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모금 등은 기부금품법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영리 목적으로 안성쉼터를 숙박업소로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는 윤미향 무소속 국회의원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벌금형을 받고 나오고 있다. 뉴스1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는 윤미향 무소속 국회의원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벌금형을 받고 나오고 있다. 뉴스1


1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문병찬)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전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59) 무소속 의원(전 정의연 이사장)에게 적용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벌금 1500만원 형만을 선고했다. 8개 혐의 중 업무상횡령 혐의 일부만 유죄라고 본 결과다. 재판부는 윤 의원을 도와 보조금 수령과 각종 후원금 모금의 실무를 담당했던 김모(48) 전 정의연 이사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9월 15일 검찰이 기소한 지 879일만에 나온 결과다.

이날 윤 의원은 노란 나비 스티커가 붙은 차량에서 내려 조개 브로치가 달린 회색 코트 차림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법정 앞에는 재판이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취재진과 정의연 관계자 등 방청객 60여명이 몰렸다. 윤 의원은 오후 1시 45분쯤 미소 띤 얼굴로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법정에 들어섰다. 윤 의원은 그간 “사익 추구 의도가 없었다”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해왔다.

앞서 검찰은 윤 의원에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보조금관리법 및 기부금품법 위반, 업무상 횡령·배임, 사기·준사기, 지방재정법 및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 8개 죄목이었다. 구체적으로는 2013년~2020년 거짓 서류를 꾸며 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서울시로부터 박물관 사업, 피해자 치료 사업 등의 명목으로 약 3억6570만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보조금관리법 위반), 2011년~2020년 217차례에 걸쳐 정대협 자금 1억원 가량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업무상횡령), 치매 증상이 있는 길원옥(95) 할머니의 심신미약 상태를 이용해 2017년~2020년 7920만원을 정의연 등에 기부·증여하게 한 혐의(준사기), 2015년~2019년 미등록 계좌로 기부금품 41억원을 모집한 혐의(기부금품법 위반) 등이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보조금관리법 및 기부금품법 위반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벌금형을 받고 나와 미소짓고 있다. 이날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됨에 따라 윤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뉴스1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보조금관리법 및 기부금품법 위반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벌금형을 받고 나와 미소짓고 있다. 이날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됨에 따라 윤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뉴스1

그러나 재판부는 이중 1700만원가량의 업무상횡령 혐의만 인정했다. 문병찬 부장판사는 “정대협 법인 계좌와 개인 계좌에 보관하던 자금 가운데 68회에 걸쳐 17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횡령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지출 일부에 대해) 영수증을 제출 못한 사실만으로는 횡령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정대협 자금은 다양한 목적으로 모금돼 모금 목적을 하나로 제한하기 어렵고, 정대협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사용됐다면 횡령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나머지 혐의는 증거가 불충분하고 고의성이 없다며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벌금형이 선고됨에 따라 윤 의원은 의원직 상실 위험에서도 일단 벗어나게 됐다. 국회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받거나 일반 형사사건에서 집행유예를 포함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재판부는 선고 전 “무엇보다 피고인은 30년 동안 열악한 상황 속에서 위안부 문제에 기여해왔다. 이 과정에서 유죄로 인정된 액수보다 많은 금액을 기부한 점, 국내 여러 활동가들이 선처를 호소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벌금형이 선고되자 방청석에선 “잘 됐다, 너무 잘 됐다”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윤 의원은 법원을 나서며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대부분 무죄로 밝혀졌다”며 “유죄로 인정된 1700만원도 횡령하지 않았다. 남은 항소 절차에서 소명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께해주신 후원자 분들께 감사하다”고 짧게 언급했다. 이에 보수단체들은 서부지법 입구에서 “윤미향을 구속하라” “윤미향 사형” 등을 외치는 집회를 열며 맞섰다. 국민의힘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윤미향 의원으로 인해 입으셨을 피해와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이번 선고의 형량은 깃털만큼이나 가볍다”는 논평을 냈다.

징역 15년형이 구형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지난 8일 1심 재판부가 벌금 800만원과 추징금 5000만원만 선고한 데 이어 윤 의원에 대한 선고가 벌금 1500만원형에 그치자 법조계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는 “전·현직 국회의원 피고인에 대한 국민법감정에 반하는 선고가 이어져 안타깝다”며 “검찰이 항소심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혐의 입증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부가 1심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피고인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균형을 잃은 것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하고 사실오인과 법리오해를 이유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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