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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아톰부츠'…30년 전 만화가 지금 폭발한 이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왼손은 거들뿐.”  

30년 전의 명대사가 최근 다시 회자하고 있다. 이른바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사람)’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만화 ‘슬램덩크’ 얘기다. 같은 시기를 풍미했던 만화 ‘달의요정 세일러문’은 한 구두 브랜드와 협업 상품을 내놨다. 새삼 30년 전 캐릭터들이 소환되는 데는 친숙한 캐릭터를 통해 불황을 타파해보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9일 기준 누적관객수 248만명을 돌파한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사진 에스엠지홀딩스(주)

9일 기준 누적관객수 248만명을 돌파한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사진 에스엠지홀딩스(주)

유통가로 번진 슬램덩크 열풍

지난달 4일 개봉한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시작된 슬램덩크 열풍이 유통가까지 휩쓸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13일간 열렸던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의 누적 방문 고객은 1만8000여명에 이른다. 매출은 개점 5일 만에 5억원을 돌파했다. 굿즈(기념품) 판매로만 일평균 1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내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내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슬램덩크 만화책 전권 총 2000세트를 준비해 오는 10일부터 예약 판매에 돌입한다. 이 편의점은 지난 1일 롯데칠성음료와 함께 ‘슬램덩크 와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술 품목인데도 판매 첫날부터 오전에 구매자가 몰리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며 “인기를 대비해 평소 주류 품목 발주량의 수십 배를 주문한 지점이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슬램덩크 와인. 사진 세븐일레븐

슬램덩크 와인. 사진 세븐일레븐

친숙한 캐릭터, 눈길 끄네

공교롭게도 슬램덩크와 같이 1992년 초판이 나왔던 만화 ‘달의요정 세일러문’은 최근 영국 명품 구두 브랜드 지미추와 함께 ‘세일러문 부츠’를 내놨다. 만화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협업 컬렉션이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장식을 추가한 강렬한 분홍색 부츠는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양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달의요정 세일러문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슈즈 브랜드 지미추가 협업 상품을 내놨다. 사진 지미추

달의요정 세일러문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슈즈 브랜드 지미추가 협업 상품을 내놨다. 사진 지미추

9일 찾은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 1층 팝업 공간에는 남다른 위용을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세트가 자리했다.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가 2004년 제작한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스페인 패션 브랜드 로에베의 협업을 기념해 만든 임시 매장이다. 만화 속 마법의 성이 똑같이 구현된 매장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이다영(34)씨는 “지나가다가 익숙한 캐릭터가 보여서 매장 구경을 하고 있다”며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만든 가방을 보니 살 생각이 없다가도 다시 보게 된다”고 말했다.

9일 찾은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1층의 로에베X하울의 움직이는 성 협업 팝업 매장. 유지연 기자

9일 찾은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1층의 로에베X하울의 움직이는 성 협업 팝업 매장. 유지연 기자

즐거움이 힘, 불황엔 복고가 뜬다

유통 및 패션 시장은 어떤 시장보다 시류에 민감하다. 올해는 고금리·고물가로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불황의 시대다. 지난달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패션 시장을 전망하면서 ‘도파민 비즈니스’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도파민은 즐거움을 관장하는 호르몬이다. 상품, 매장 구성 등에서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패션가에서는 난데없는 ‘아톰 부츠’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기반의 예술집단 ‘미스치프’에서 17일 출시 예고한 ‘큰 발 붉은 부츠(Big red boots)’다. 강렬한 붉은색의 투박한 부츠는 어린 시절 만화 속 아톰의 신발 그 자체다. 신발인지 장난감인지 모를 우스꽝스러운 부츠를 신은 모델 이미지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독특한 외양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미스치프의 아톰 부츠. 사진 미스치프 스니커즈 인스타그램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독특한 외양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미스치프의 아톰 부츠. 사진 미스치프 스니커즈 인스타그램

동심을 자극하는 만화 캐릭터의 등장은 과거의 향수와 만날 때 더 폭발적이다. 슬램덩크와 세일러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톰 등은 모두 19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지금의 밀레니얼·Z세대가 공감할만한 추억의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비 주체로 떠오른 밀레니얼·Z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전면에 등장시켜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전략이다.

유년 시절의 향수 어린 캐릭터를 소환하고 있는 패션계. 사진 로에베

유년 시절의 향수 어린 캐릭터를 소환하고 있는 패션계. 사진 로에베

과거의 흥행작을 재해석하는 것은 기업이나 브랜드 입장에서도 ‘안전한’ 선택이다. 친숙한 데다 이미 호감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불황에는 과거 추억을 상기시키는 복고가 뜬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불황이어서 과거 캐릭터가 인기를 끈다기보다, 불황이어도 추억의 캐릭터에는 지갑을 여는 것”이라며 “캐릭터를 통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위로를 받는 등 주관적 효용에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 심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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