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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보험금으로 몰래 빌라 산뒤…'박수홍 친형' 그법 내민 형 [당신의 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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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당신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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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는 노모가 재산을 사기당하지 않을까 걱정되거나 의식을 잃은 가족의 치료비 마련이 시급한데 그의 재산을 처분할 수 없을 때 요긴한 게 성년후견제도입니다. 그런데 자식이나 친형이 후견인이 되고 나서 그 재산을 마음대로 쓰면 어떻게 될까요? 가족끼리니 그래도 괜찮은 건지, ‘당신의 법정’ 3회가 속 시원하게 따져봤습니다. 다음엔 ‘아들만 많이 받은 유산, 그 공평성’을 짚어봅니다.

친족 간 재산범죄 소송

김경수(가명)씨는 2011년 친동생이 교통사고로 뇌병변 1급 장애에 사지마비 상태가 됐습니다. 그후 줄곧 동생을 돌보던 경수씨는 3년 뒤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습니다. 동생이 언제까지 입원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치료비를 해결하려면 동생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이듬해 동생의 보험금 1억4000여만원이 경수씨 통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경수씨는 몇 주 뒤 1억2000만원을 찾아 자기 이름으로 빌라를 샀습니다. 이 사실은 법원 감독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법원은 돈을 되돌려 놓으라고 했는데 경수씨가 버티자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죄명은 횡령! 연예인 박수홍씨 사건으로 최근 많이 알려진 ‘친족상도례’를 생각하면 의아하실 겁니다. 동거 친족 사이의 재산 범죄는 처벌 안 받을 수도 있다는 데, 웬 횡령? 핵심은 경수씨가 동생의 성년후견인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성년후견제도는 장애나 고령 등으로 일상적 일 처리가 어려운 사람의 재산 관리를 주변 사람이 돕도록 하는 건데요. 치매를 앓는 부모가 이상한 계약을 할까 봐 걱정될 때, 사고로 의식이 없는 배우자의 치료비가 필요한데 재산을 처분할 수 없을 때 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는 거죠. 후견인을 누구로 할지도 법원이 정해 주는데, 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고 변호사나 법무사·사회복지사 등 전문가가 선임될 수도 있습니다.

검찰은 경수씨가 성년후견인이었기 때문에 횡령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봤고, 경수씨는 형·동생 사이인 점을 강조했습니다. 둘 중 어느 주장이 맞는 것 같으신가요?

여기서 질문!

성년후견인이기 전에 친형이다! 동생 보험금으로 몰래 빌라를 사면 횡령일까 아닐까?

관련 법령은?

성년후견제도는 민법 9조 1항에 나와있습니다. 성년후견을 시작할지를 법원에서 결정하는 것처럼, 후견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도 법원에 청구해야 해요. 경수씨가 주장하는 ‘친족상도례’도 살펴보시죠.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 법이 가정사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형법에 ‘친족상도례’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배우자, 8촌 이내 혈족 또는 4촌 이내 인척 사이에 벌어진 재산 범죄는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를 규정한 형법 328조는 권리행사방해죄만을 면제 대상으로 꼽고 있긴 한데요. 절도와 사기, 공갈, 횡령·배임, 장물죄에도 친족상도례를 준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법정

1심 법원은 경수씨 가정의 문지방을 넘어가는 편을 택했습니다. 경수씨가 친형의 입장보다는 성년후견인의 도리를 다했어야 했다는 판단입니다. 친족상도례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재판부는 제도 특성상 대부분 후견인이 가족인 현실도 고려했습니다. 만일 경수씨에게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면죄부를 준다면 비슷한 일을 저지른 이들을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기죠. 가족과 후견인 사이 모호해질 수 있는 경계를 법원이 다잡은 셈입니다.

경수씨는 “동생을 돌보는 데 쓴 돈이 보험금보다 더 나가 손해를 봤다. 후견인 보수 청구권이 있다”고 항변했습니다. 뜯어 보니 사실과는 좀 달랐고, 나중에 보수로 받을 돈이었다고 해도 법원의 답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절차를 지켜서 돈을 받아 가라”였습니다. 결국 모든 횡령 혐의가 인정돼 1심 재판부는 2017년 경수씨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법정 구속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장 경수씨가 구속되면 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더 딱하게 보고 2년의 집행유예 기간을 줬지만 횡령이라는 법적 판단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재발 막으려면?

비슷한 사건이 이어지자 학계에서는 성년후견인 횡령 범죄는 ‘친족상도례’를 배제하도록 입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네요.

전문가들은 친족후견인의 횡령이 걱정되면, 즉각 법원에 연락해 모니터링을 요청하라고 조언합니다. 경수씨처럼 친족후견인을 맡고 있는 경우엔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후견 제도가 발달한 나라들은 친족 후견인 뿐 아니라 전문가 후견인이 벌이는 다양한 조직적 범죄까지 겪으며 재발 방지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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