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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이냐, 법 위반이냐…헌재 넘어간 '이상민 탄핵' 쟁점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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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김도읍 법사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소추 의결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스1

정성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김도읍 법사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소추 의결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스1

헌법재판소는 9일 오전 국회로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하고 탄핵심판 절차를 시작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날 오후 “헌재 배당 내규에 따라 ‘무작위 전자배당’을 통해 주심 재판관이 정해졌다”며 “다만 주심은 헌재의 비공개 원칙에 따라 이번에도 비공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사건의 쟁점과 법리를 검토하는 헌법연구관으로 구성된 전담 태스크포스 구성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상민 장관에게 보낼 답변서 제출 요청과 이해관계 기관에 대한 의견서 제출요청은 10일 발송할 예정이다.

이 사건에 부여된 사건번호는 ‘2023헌나1’로 ‘헌’은 헌재, ‘나’는 탄핵심판, ‘1’은 올해 처음 접수됐다는 의미다. 헌정 사상 네 번째 탄핵심판 사건이자 최초의 장관(국무위원) 탄핵심판 사건이다. 정원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이 장관은 탄핵된다.

국회가 이날 낸 소추의결서는 형사재판의 공소장에 해당한다. 헌재는 의결서에 기재된 내용을 기반으로 심리한다. 야3당은 71쪽짜리 소추의결서에 이 장관이 “헌법에 규정된 국가의 의무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국가공무원법 등 법률을 위반했다”고 적었다.

지난해 10월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을 방문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을 방문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쟁점① 헌법 위반인가, 노력 부족인가

헌법 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의결서는 이 조항에 행안부 장관이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이 조항을 근거로 만들어진 재난안전법이 행안부 장관에게 특정한 임무와 역할을 줬기 때문에 “헌법상 의무에도 불구하고 그 직무를 방임하거나 불성실하게 수행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노력’이 부족했다고 헌법 위반으로 보는 건 무리라는 해석도 있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이인호 중앙대 교수는 “헌법 34조 6항은 ‘노력 의무’인데 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고, 지금까지 노력 의무 위반에 대해 헌재가 판단한 사례도 없다”며 “징계 사유와 탄핵 사유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쟁점② 법률 위반인가, 무능인가

의결서는 이태원 참사를 전후해 이 장관이 재난안전법상 ‘사전 재난예방 조치의무’와 ‘사후 재난대응 조치의무’를 위반했다고 본다. ▶이태원에 다중이 운집할 경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대비하지 않았고 ▶대통령보다도 재난 발생을 늦게 인지해 경기도 일산에 사는 수행비서 관용차량을 기다렸다가 발생 2시간 30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간 이 장관은 “인근 병원과 협조해 사상자를 이송하라”는 지시를 했다. 하지만 의결서는 “이미 인근 병원으로 부족해 경기도까지 출동 요청 했던 상황에서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고 상황에도 맞지 않는 지시를 한 건 재난안전법상 대응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것”이라고 봤다.

헌재는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어 이 장관의 지시 등이 무능력·불성실을 넘어선 의무 위반이 되는지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다른 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지만, 수습본부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법률 위반 사항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쟁점③ 얼마나 중대한 위반인가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탄핵심판 당시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보통의 법 위반이 아니라 중대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 야3당은 “당시는 대통령 탄핵사안이었고, 장관의 파면을 고민할 때 ‘중대성’의 기준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고문현 숭실대 교수는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파면을 논할 때는 똑같이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며 “국무위원 탄핵을 대통령 탄핵보다 쉽게 보면, 어느 당이든 절반을 넘으면 탄핵을 통해 정권 흔들기에 나설 수 있어 대통령제의 책임정치 구현에도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헌재 연구부장 출신인 김승대 전 부산대 교수는 “법이란 것도 결국 상식인데, 상식적으로 조직을 수반한 큰 사고가 났는데 ‘책임은 관할 경찰서장까지만’이라고 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경찰 조직을 지휘하는 장관이 헌법이나 법률이 요구하는 만큼의 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걸 잘 지적한다면 탄핵이 인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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