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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도 무죄 판결문 뜯어보니…"50억 클럽 사실과 다른 측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특가법상 뇌물·알선수재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정치자금법 위반만을 인정해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특가법상 뇌물·알선수재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정치자금법 위반만을 인정해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법원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연루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의 핵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남은 ‘(50억) 약속 클럽’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 판결문에는 곽 전 의원뿐 아니라 약속 클럽 6인에 대한 의혹이 사실상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지적까지 담겼기 때문이다.

8일 곽 전 의원 사건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이준철)는 판결문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약속클럽 멤버로 언급한 사람들에게 50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으로 언급한 내용이 실제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썼다. 박영수 전 특검과 언론계 인사 홍모씨를 예로 들어 “화천대유와 고문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이 받은 고문료는 50억원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라고도 지적했다. 박 전 특검의 경우 2015년 7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화천대유와 고문 계약을 맺어 김씨가 50억원 약속을 언급한 시기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했고, 홍씨의 자녀에게 지급된 49억원의 대여금은 나중에 반환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는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김씨의 입장 변화를 재판부가 분석한 결과다. 재판부는 김씨가 2017년에 곽 전 의원 등 4명을 언급하며 50억원을 지급한다고 했다가, 2019년 8월 이후 공통비용 부담 문제로 다툼이 생기자 약속 클럽 인원을 6명으로 늘린 점을 지적했다. 당시 김씨가 이들에게 왜 50억원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가 “남욱 변호사 등에게 공통비 부담 책임을 늘리기 위한 ‘허언’에 불과했다”는 김씨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논리는 곽 전 의원이 특가법상 뇌물과 알선수재 혐의를 벗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

다만 병채씨가 받은 성과급 50억원이 이례적인 점을 언급하며 재판부는 “병채씨가 곽 전 의원의 대리인으로 금품 및 이익이나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는 한다”,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할 만큼 병채씨에게 중대한 질병이 발병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위로금 성격이었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병채씨의 객관적 건강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경증 병명이 적힌 진단서만으로 50억원의 성과급 액수를 정한 것은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김씨가 병채씨만을 보고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판시도 담겼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곽 전 의원의 도움이 필요했던 상황”이라며 “김씨는 이런 영향력을 내심 기대하는 한편,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약속클럽에 대한 언급이 모두 허언은 아님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성과급을 지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그러나 곽 전 의원과 병채씨 사이 연결고리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이 같은 의심은 결국 무죄로 연결됐다. 재판부는 “다른 사람이 공무원의 대리인으로 뇌물을 받은 경우 등에는 평소 공무원이 그 다른 사람의 생활비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 사회 통념상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병채씨가 독립된 생계를 유지한 만큼, 50억원의 성과급을 곽 전 의원에게 제공한 뇌물로 보기엔 입증이 부족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아들과 아버지 관계를 지나치게 형식 논리에 기대 판단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판결문은 더 명쾌하게 쓸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소위 법 상식에 비춰보았을 때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판결”이라며 “우리나라 특성상 자녀가 형식상 독립했다고 하더라도 유대관계가 계속 지속하는데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곽 전 의원과 병채씨의 연관성을 ‘통화량의 증가’만으로 입증하려던 것은 검찰의 부실 기소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회계사의 녹취록 증거능력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도 이뤄졌다. 재판부는 녹취 파일이 조작됐거나 편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녹음파일 속 진술의 증거능력은 개별적으로 엄격하게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고인이 녹음파일을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을 경우 각자 진술한 대로 녹음되었는지,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녹음된 것인지 인정돼야 한다.

앞서 김씨는 2020년 10월 녹음 파일에 대해 “정 회계사가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어 허위사실을 많이 섞어서 말했다”며 주장하며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녹음 파일에는) 약속클럽 등 외부에 알려질 경우 형사책임이 문제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이런 대화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나눴다는 점에서 유착관계도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오랜 기간 법조 출입기자로 근무해왔던 김씨가 정 회계사의 녹음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대화를 했다는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녹음파일 중 ‘전언’이나 ‘전언의 전언’이 담긴 부분에 대한 증거 능력은 엄격하게 판단됐다. 김씨가 정 회계사에게 “병채가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은 어떻게 하실 것인지’ 물었다”고 말한 파일이 대표적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원진술자인 병채씨가 사망 등 사유로 법정 진술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만, 병채씨가 법정에 나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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