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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탄핵 후 정중동 대통령실, “협치는 끝났다”

중앙일보

입력

대통령실의 9일은 고요했다. 이번 주 신년 대법회 참석과 세종 국무회의 주재, 중앙통합방위회의 주재 등 잇따른 현장일정을 소화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에 머물며 통상업무를 봤다. 윤 대통령의 자타공인 최측근이자 핵심 부처의 수장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야당 주도로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지만, 그 직후 대통령실 명의로 내놨던 “의회주의 포기입니다.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는 스무자 남짓한 반응 외엔 추가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언급하거나 지시한 사항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실 전체 의견을 모아 발표한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 공백 없도록 총리실과 대통령실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이라고만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대신 정부 운영을 추슬렀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장관이 직무 정지되고 차관이 행안부를 이끌게 되는데, 자치행정이나 인사 등의 업무 분야가 나뉘어있어 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창구가 돼 원스톱 서비스를 행안부에 해주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무수석실이 담당하던 행안부 관련 업무는 당분간 국정기획수석이 맡게 된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튀르키예 민간 지원도 행안부 장관이 앞장서서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애로사항이 있다”며 “재난관리시스템 개선 방안 마련이나, 정부 혁신 등도 예정대로 추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안부 업무 중 일부를 이관하는 방식 등은 검토되지 않고 있다. 한때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됐던 실세 차관 임명도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조용한 내부 정비와는 별개로, 이 장관 탄핵안 가결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는 더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아직 정권 교체가 안 됐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며  “명시적으로 얘기를 안 할 뿐이지, 내년 총선까지 협치는 끝났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이 장관 탄핵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에 대한 대응이자, 지지세력 집결을 위한 수단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체포 뒤 이 대표 수사가 야권 전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대북 송금으로 확장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위기감이 커진 만큼, 지지층의 이탈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총선 때까지 이어질 여론전의 필요조건이란 시각이다. 여권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따른 위기감 외에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분열 요인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획책하려 들 수 있다”며 “야당은 이 대표 검찰 수사와 내년 총선에만 모든 시선이 쏠려 있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실은 원칙대로 흘러가게 둔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검찰 수사는 검찰 수사대로, 이태원 참사 관련해선 수사와 서울시의 대응 그대로 두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1호 발의 법안’으로 초과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강행처리를 벼르고 있는데,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에 대비한 실무 준비에 착수했다. 기존 9~11명인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이사회를 21명으로 늘리고, 직능단체 등에 추천권을 명시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여권이 “방송 장악 음모”라고 반발하고 있어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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