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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잔치' 은행들, 사회환원 나섰다가 "짠물 공헌" 욕먹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 주요 금융사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거뒀다. 금리 상승기에 이자 수익을 끌어올리면서다. 금융 소비자는 은행이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의 차이(예대 금리차)로 ‘이자 장사’를 벌였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중이다. 서둘러 은행권은 벌어들인 돈을 주주와 사회로 환원하겠다고 나섰다.

4대 금융지주 순이익, 전년 대비 9% 증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9일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3조6257억원으로 전년(3조5261억원)보다 2.8% 증가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신한금융지주·KB금융그룹·우리금융그룹과 마찬가지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4조6423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리딩 뱅크(1등 금융)’를 3년 만에 탈환했다. KB금융은 전년 대비 0.1% 성장하며 4조413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우리금융은 3조1693억원을 달성하며 처음으로 순이익 3조원을 돌파했다.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종합하면 총 15조8506억원으로, 전년(14조5428억원) 대비 9% 증가했다.

이들 금융사 모두 핵심 계열사인 은행이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은행이 예대 금리차를 통해 벌어들인 이자수익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덕이다. 우리은행의 이자이익 증가율이 25.3%로 가장 컸다. 하나은행 23.7%, KB국민은행 20.2%, 신한은행 16.3%로 뒤를 이었다. 기준금리 인상 랠리에 따른 고금리 기조가 은행 예대마진 확대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서민은 빚 부담이 늘어났는데, 은행만 ‘이자 장사’로 이익을 챙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함께 실적을 발표한 JB금융그룹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60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6%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앞서 BNK금융그룹도 810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자사주 소각, 사회 기부에도…‘짠물 공헌’ 눈총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모습. 뉴스1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모습. 뉴스1

금융사는 지난해 올린 수익을 주주와 나누겠다며 앞다퉈 선언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올해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자사주 소각은 주식 총량을 줄여 주당 가치를 올리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주주 환원 정책 중 하나로 꼽히는 수단이다.

KB금융도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의결하고, 총주주환원율(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인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자사주 매입금액 비율)을 전년 대비 7%포인트 올려 33%로 맞추겠다고 했다. 하나금융도 연내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고, 장기적으로 총주주환원율 50% 달성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금융도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매년 총주주환원율 30%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치솟은 국내 난방비부터 해외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복구비용까지 기부 행렬에도 잇따라 뛰어드는 중이다. 지난달 말 KB국민은행과 하나금융은 각각 기초생활수급가구와 장애인 가구, 자립 준비 청년, 미혼모 등에 난방비 5억원씩을 지원했다. 신한금융도 전국 아동보호시설(그룹홈)에 해마다 3억원씩 3년간 총 9억원의 난방비를 기부하기로 했다. 또 하나·우리금융은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복구와 이재민 지원에 각각 30만 달러(약 3억7800만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KB금융도 기부 캠페인을 벌여 국민이 모은 기부액과 같은 금액을 KB금융이 적립해 최대 3억원의 구호 성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금융사가 공히 환원에 참여하고 있지만, 벌었던 돈에 비해 밖으로 푸는 돈은 적어 ‘짠물 공헌’이라는 비판적 시각은 당분간 해소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작 은행 내부에서는 기본급의 300~400%에 이르는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한 사람당 억대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하는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 공헌 노력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주주에 대한 환원도 외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적다는 점도 지적 대상이다. 앞서 국내 상장된 7개 금융지주사에 주주 환원 확대를 요구한 행동주의(주주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사모펀드 얼라인파트너스에 따르면 해외 주요 은행의 주주환원율은 평균 64%인데 한국은 24%에 그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사회 공헌 역할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6일 “은행이 일종의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역할은 소홀히 한 채 과도한 수익성만 추구한다면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또 “일각에선 은행권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통상적인 관행이나 업무에 포함된 것을 포장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며 “사회공헌의 경쟁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어떤 금융회사의 사회공헌도가 높은지를 국민이 알 수 있게 한다면 노력하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이미지 제고 등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 결제 늘었지만, 카드사 실적은 악화

한편 은행 계열 카드사의 실적은 대체로 전년 대비 악화했다. 지난해 신용카드 결제가 늘어나는 등 영업 상황은 나쁘지 않았지만, 카드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금리가 높아지며 수익성이 떨어졌던 탓이다.

이날 하나카드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920억원으로 전년(2505억원) 대비 23.4% 감소했다고 밝혔다. 앞서 1위 카드사인 신한카드도 전년 대비 5% 감소한 641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고 공시했고, KB국민카드는 전년 대비 9.6% 줄어든 378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카드채 금리가 상승하기 전에 자금을 미리 조달해 둬 상대적으로 이자비용 지출이 크지 않았던 삼성카드는 전년 대비 12.9% 증가한 6223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우리카드도 전년 대비 1.69% 증가한 204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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