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 본토 겨눈 북…화성-17형 무더기 등장, 신형 ICBM도 내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8일 밤늦게 연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또 기존 ICBM인 화성-17형을 대거 끌고 나왔다. 미국 본토를 향한 위협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가 9일 보도한 열병식 장면 사진에 따르면 화성-17형 뒤에 신형 미사일이 행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 신형 미사일은 5대의 이동식 발사대(TEL)에 실려 있었다.

북한이 8일 밤 건군잘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미사일. 고체연료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8일 밤 건군잘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미사일. 고체연료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

열병 행진 대미 장식한 ‘고체연료’ ICBM

해당 미사일의 TEL은 한쪽에 9개씩 양옆 18개 바퀴를 달았다. 한쪽에 11개씩 양옆 22개 바퀴를 단 화성-17형의 TEL에 비하면 작은 크기다. 사거리 1만 5000㎞로 추정되는 ‘괴물 ICBM’ 화성-17형보다 체급이 작지만, ICBM급으로 분류할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고체연료가 기반이 됐다면 액체연료 기반 화성-17형급 사거리를 유지하면서 이보다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4월 열병식에 등장한 8축 16륜짜리 TEL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에도 고체연료 ICBM을 싣는 TEL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고체연료 ICBM 개발 시사하더니 실물로…미국 직접적 위협

이 때문에 해당 신형 미사일이 고체연료 기반 ICBM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실제 북한은 신형 고체연료 ICBM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신속한 핵 반격 능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또 다른 ICBM 체계를 개발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북한 매체는 지난해 12월 15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 지상분출시험을 실시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2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오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출력고체연료발동기 지상시험을 지도했으며 시험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2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오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출력고체연료발동기 지상시험을 지도했으며 시험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와 달리 미사일 발사 준비 시간이 짧고 연료를 실은 채 장기간 보관도 가능해 사전 징후 포착이 어렵다. 북한은 기존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같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 고체연료 기술을 적용했지만, ICBM급 장거리 미사일은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많았다. 북한이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고체연료 ICBM을 확보한다면 미국 입장에선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신형 미사일 ‘모형’ 가능성도 제기

북한의 신형 ICBM이 실전배치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무기가 통상 2년 후쯤 실제 발사에 돌입한 전례를 보면 이번 신형 미사일은 향후 개발 목표를 반영한 ‘목업’(모형)일 가능성이 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북한이 연소시험을 공개한 고체연료 로켓엔진에 비하면 이번 신형 미사일이 지나치게 커 바로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다섯 번째)이 8일 밤 건군잘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미사일을 바라보고 있다. 해당 미사일은 고체연료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다섯 번째)이 8일 밤 건군잘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미사일을 바라보고 있다. 해당 미사일은 고체연료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

실물이 아닐 수 있지만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엔진 연소시험 등을 빠르게 진행하면 올해 상반기 중에도 고체연료 ICBM의 시험발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화성-17형, 양산 단계에 접어들었나

화성-17형이 대거 등장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7형은 최소 11기로 파악된다. 지난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화성-17형은 그동안 열병식에선 4~6기가 동원돼왔다.

북한이 화성-17형의 양적 성장을 강조한 것으로 군 안팎에선 해당 무기의 실전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매체는 열병식에서 ICBM 운용 부대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라고 강조했다. 류성엽 전문연구위원은 “화성-17형이 이제 양산형 모델로 진입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작전배치에 필요한 최소 규모를 확보한 상태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화성포-17형)' 10여기가 광장을 지나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화성포-17형)' 10여기가 광장을 지나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이 핵무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핵·미사일의 보유량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정황은 이미 포착돼 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전원회의 보고에서 “우리 핵무기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며 “현 정세가 나라의 핵탄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최근 북한이 목표로 하는 핵탄두 보유량이 300여 기에 이르며 이미 80~90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핵을 탑재하는 미사일과 핵탄두 양을 함께 늘리고 있다는 의미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화성-17형의 대거 공개 역시 미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8일 밤 열린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 입장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8일 밤 열린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 입장하고 있다.

전술핵운용부대 첫 등장, 미사일 총국 존재 재확인

북한 전술핵운용부대는 이번 열병식에 처음 참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강한 전쟁억제력, 반격 능력을 과시하며 도도히 굽이쳐가는 전술핵운용부대 종대들의 진군은 위엄으로 충만되고 무비의 기세로 충천했다”고 소개했다. 북한 매체는 전술핵운용부대가 지난해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훈련을 실시했다며 해당 부대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

북한은 지난해 4월 김 위원장 참관하에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시험 발사했을 당시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과 화력 임무 다각화를 강화한다”며 “앞으로 전술핵무기는 최전선 포병부대에서 운용한다”고 밝혔다. 해당 부대는 전술핵을 탑재한 KN-23 또는 초대형 방사포인 KN-25 등 SRBM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부대의 핵심 표적은 한국이며 일본의 미군 기지도 노리는 것으로 한·미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북한 군인이 미사일총국 깃발(흰색 원)을 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북한 군인이 미사일총국 깃발(흰색 원)을 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이밖에 지난 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깃발로 처음 등장한 ‘미사일 총국’ 조직의 존재도 다시 확인됐다. 해당 조직은 탄도미사일을 직접 운용하는 부대인 ‘전략군’과 별개로 미사일 개발을 총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해당 조직의 잇따른 노출은 핵능력 고도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