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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애, 김정은보다 높은 곳 앉았다…"4대 세습 기정사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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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일(건군절)인 8일에 열린 열병식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둘째 딸 김주애가 김정일과 나란히 주석단에 올랐다. 김주애는 열병식이 열린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부터 김정은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었고, 그 뒤를 모친인 이설주가 뒤따랐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열병식에 참석해 주석단 귀빈석에 자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의 모습.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열병식에 참석해 주석단 귀빈석에 자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의 모습. 노동신문=뉴스1

'귀빈석'서 열병식 내려다본 김주애

조선중앙통신이 9일 공개한 열병식 사진 속 김주애는 검은색 바지 정장에 코트와 모자 차림이었다. 이설주의 스타일을 빼닮은 모습의 김주애는 김정은의 오른손을 잡고, 오른쪽 뒤편에 어머니 이설주를 두고 걸었다. 지난 7일 건군절 기념연회에서 부모를 양옆에 두고 기념촬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위치는 또다시 정중앙이었다.

어머니보다 딸을 앞세워 걷게 함으로써 김씨 일가를 지칭하는 '백두혈통'의 위상을 강조하려는 의도된 동선 배치로 풀이된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행사장에 딸 김주애와 함께 들어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설주 여사가 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행사장에 딸 김주애와 함께 들어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설주 여사가 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7일 건군절 75주년 기념연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는 김 위원장과 이설주 여사 부부 사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7일 건군절 75주년 기념연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는 김 위원장과 이설주 여사 부부 사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부모를 양옆에 두고 입장한 김주애는 주석단 위에 배치된 귀빈석에 앉았다. 귀빈석은 주석단 전면에 서서 열병식을 내려다본 김정은보다 위쪽에 배치됐다. 김주애를 귀빈석으로 안내한 사람은 조용원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조직비서다. 그는 북한의 실질적 2인자이자 김정은의 최측근이다.

김씨 일가가 자리를 잡자 김일성광장을 가득 메운 북한 군인들은 주석단을 향해 "김정은 결사옹위"에 이어 "백두혈통 결사보위"를 외쳤다.

노동신문 '도배'한 김주애 사진 

무려 10개면에 걸쳐 열병식 소식을 전한 북한 노동신문의 보도 역시 사실상 김주애를 중심에 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노동신문은 이날 총 150장의 열병식 사진을 게재했는데, 무기 및 열병식 전경을 담은 116장을 제외한 34장의 사진 가운데 김주애가 포함된 사진은 절반에 가까운 15장이었다. 이 가운데는 사실상 김주애의 독사진이 2장이 포함돼 있고, 김정은과 나란히 등장하는 사진도 9장에 달했다.

김정은을 제외하고 독사진이 실린 인물은 김주애가 유일했다. 이설주의 경우 대부분 김씨 부녀의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수준이었고,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은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보이지 않았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주석단 귀빈석에 자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 이설주 여사. 바로 뒷줄에는 조용원 당 중앙위 조직비서가 함께 손뼉을 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지난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주석단 귀빈석에 자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 이설주 여사. 바로 뒷줄에는 조용원 당 중앙위 조직비서가 함께 손뼉을 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핵 강국 목표 그 자체"

김주애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1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 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이날 열병식까지 모두 다섯 차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다섯 차례의 공통점은 모두 군 관련 행사란 점이다.

북한이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인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주민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인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주민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북한이 특히 핵·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군 관련 행사에서 김주애를 부각하는 배경과 관련해 "김주애 자체가 북한의 미래 세대를 상징하며, 이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핵 강국 건설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을 내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서 '화성-17형'은 핵강국으로서 전략적 지위를 과시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라며 "이번 열병식은 물론 화성-17형과 연관된 행사에 딸을 계속 대동한 것은 미래 세대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한다는 측면과 함께 북한 주민들과 핵·미사일 간의 연대를 강화시키려는 가교 역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계자 발표장 됐던 열병식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인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주석단에서 딸 김주애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인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주석단에서 딸 김주애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과거 김일성·김정일은 모두 열병식을 후계구도를 명확히하는 결정적 계기로 삼아왔다. 김정은 역시 2010년 열병식을 통해 대중 앞에 처음 나서면서 후계자 지위를 공고화했고, 2012년 열병식은 그의 첫 대중연설의 무대가 되며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호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1992년 열병식에서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김주애의 4대 세습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김정은이 김주애를 이번 열병식에 참석시킬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은 그동안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 등에서 김주애의 후계자 내정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해왔다. 그러다 이날 김주애가 열병식에 공식 등장한 이후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주애의) 후계 구도는 이른 감이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4대 세습 의지 공고화"

전문가들도 김주애가 등장한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김정은이 '4대 세습'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김주애를 최소한 후계자 '후보군'에는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딸을 공개활동에 동행시키며 4대 세습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김주애를 열병식 주석단에 세웠다는 것은 후계 구도와 관련해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도 "김주애의 등장은 북한의 절대 통치권력은 백두혈통을 중심으로 앞으로도 계속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다만 "후계자 내정보다는 백두혈통의 영속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또 미성년의 딸을 열병식에 등장시켜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는 북한의 호전성을 희석시키려는 노림수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행사를 바라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행사를 바라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할아버지 김일성 따라한 김정은

한편 이날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별도의 대중 육성연설을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이날까지 총 13차례의 열병식에서 2012년, 2015년, 2018년, 2020년, 2022년 등 5번 직접 연설했다. 이날도 5년, 10년으로 꺾어지는 해(정주년)에 해당하는 건군절 열병식인만큼 공개 연설을 할지 관심을 모았지만, 딸 김주애를 대동하고 나와 병력과 각종 군 장비를 사열하는 데 그쳤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일성 전 주석(왼쪽)을 연상케 하는 검은 중절모와 코트 차림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일성 전 주석(왼쪽)을 연상케 하는 검은 중절모와 코트 차림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공개 발언을 아낀 데 대해 외교가에선 "북한이 당장 손에 쥐고 있는 도발 카드가 자꾸만 소진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말 폭탄'만 자꾸 던져 대남·대미 자극을 하기는 부담스럽다는 정무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말 발표한 올해 첫 담화를 이례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내용으로 채우는 등 북한은 올해 들어 최근 최고위급에서 대남·대미 '말 폭탄'을 피하는 모양새다.

한편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연상시키는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흰색 원수복, 뿔테 안경, 헌팅캡 등 꾸준히 김일성 따라하기를 시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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