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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인가" 포털서 병 검색…"병 키우는 짓" 직접 나선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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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리 포티파이(40FY)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오렌지플레닛에서 심리케어 서비스 '마인들링(MINDLiNG)'을 시연하고 있다. 문 대표는 서울대병원 정신과 전문의,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다. 김현동 기자

문우리 포티파이(40FY)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오렌지플레닛에서 심리케어 서비스 '마인들링(MINDLiNG)'을 시연하고 있다. 문 대표는 서울대병원 정신과 전문의,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다. 김현동 기자

‘마음의 병’ 치료를 의학적으로 접근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고대 그리스에선 정신장애를 마귀의 장난으로 여겼고, 머릿속에서 이 마귀를 꺼내면 치료된다고 믿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의학서에 머리뼈에 구멍을 뚫는 ‘천두술’이 소개될 정도였다. 189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치료법(자유연상법)에 ‘정신분석’이란 말을 붙였고, 1900년대 들어 분석·상담 등을 통해 이를 치료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혁신창업 인터뷰<41>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실태조사(2021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한해 약 355만 명이 우울·불안장애, 알코올·니코틴 사용장애 등 정신장애를 겪는다. 하지만 이를 치료하기 위해 평생 의사 등 전문가를 찾는 사람은 12.1%에 불과하다. 열에 아홉은 속으로 삭이며 병을 키운다는 얘기다.

17세기 소개된 '천두술' 도구. ″고대 그리스시대 고안됐던 도구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사진 MIT프레스

17세기 소개된 '천두술' 도구. ″고대 그리스시대 고안됐던 도구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사진 MIT프레스

“유튜브·포털서 검색…병을 키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문우리(여·36) 포티파이 대표는 정신건강 진단과 치료를 돕는 스마트폰 앱 ‘마인들링’으로 마음의 병 치료에 도전장을 냈다. 서울대병원을 떠나 2020년 7월 포티파이를 창업하면서다. 지난 7일 서울 역삼동 오렌지플레닛에서 만난 문 대표는 “환자들이 병원을 예약하고 몇달씩 기다려서 의사와 만나는데, 진료는 단 5분 만에 끝나버린다”며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돌볼 수 없을까’ 고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4000명에 불과한데, 환자 수는 2015년 약 150만 명에서 2021년 약 250만 명으로 늘었다.

정신질환자의 경우 유독 병원 찾기를 꺼리는 문화도 창업에 한몫을 했다. “정신건강 문제로 끙끙 앓으면서도 혼자 해결방법을 찾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많아요. 유튜브나 포털 등을 검색하는데, 잘못된 정보도 많고 개개인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러면 되레 병을 키우는 거지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AI로 심리 상태 진단…맞춤형 치료 제공

포티파이가 개발한 ‘마인들링’은 심리도식·인지행동·수용전념치료 등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는 치료 기법을 기반으로 개인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맞춤형 심리 치료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마음(mind)을 핸들링(handling)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 대표 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3명과 임상심리 전문가 3명이 함께 연구한 결과다.

“혈압을 재면 고혈압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지만, 정신질환은 진단도 어렵고 사람마다 증상도 달라요. 우울증도 모두 똑같은 우울증이 아니지요. 내면까지 들여다본 뒤 원인을 찾고,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신체 신호 등을 측정해 맞춤형 해결책을 찾는 게 핵심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곤란함을 혼자 헤쳐나갈 능력이 부족하다’ 등의 질문에 5점 척도로 이용자가 답을 하면 성격 유형을 분석한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엄격이’, 불안감과 민감성이 높은 ‘콩콩이’, 미움받기 싫어하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물렁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버럭이’ 등으로 나뉜다. 한 가지 이상의 유형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용자의 66%는 ‘엄격이’ 성향을, 50%는 ‘콩콩이’ 성향을 가졌다고 한다. 진단 후에는 단계별 처방법을 제공한다. 800여 가지의 영상·애니메이션·인터랙티브 치료 프로그램이 담겼다.

“공황장애가 있는 환자는 사람 많은 곳에 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힘들어해요. 치료 1단계는 집 근처의 넓은 공간에, 2단계는 조금 더 좁은 공간에 가는 식으로 점차 범위를 좁히며 자연스럽게 경계에 노출해줘요. 앱에는 공황장애 증상이 발현될 때 이완을 돕는 릴렉세이션 훈련도 담겨 있습니다.”

지난해 7~11월 서울대병원과 공동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심리도식 검사의 신뢰·타당성도 인정받았다. 구성타당도(KMO스코어) 0.89점, 외적타당도(기존 검사와 상관계수) 0.5~0.8점, 신뢰도 0.77~0.88점을 받았다. 1점에 가까울수록 임상적 의미가 크다는 의미다. 자체 연구에선 마인들링 처방을 이용한 우울증 환자의 우울감이 38%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문 대표는 “같은 기간 약물치료의 우울감 감소 효과가 32%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면서도 “약물은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다. 개인의 행동방식이나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윤나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음에도 전문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마인들링’은 일반인이 전문가의 도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게 특징이다. 또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에 쉽고 친근하게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문우리 포티파이(40FY)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오렌지플레닛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심리케어 서비스 '마인들링(MINDLiNG)'을 시연하고 있다. 마인들링 서비스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혈류를 통해 HRV(심박변동수)를 측정한다. 김현동 기자

문우리 포티파이(40FY)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오렌지플레닛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심리케어 서비스 '마인들링(MINDLiNG)'을 시연하고 있다. 마인들링 서비스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혈류를 통해 HRV(심박변동수)를 측정한다. 김현동 기자

마인들링 서비스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HRV(심박변동수)를 측정한다. 이를 통해 현재 스트레스 상태와 회복력을 분석해 심리케어를 제안한다. 김현동 기자

마인들링 서비스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HRV(심박변동수)를 측정한다. 이를 통해 현재 스트레스 상태와 회복력을 분석해 심리케어를 제안한다. 김현동 기자

‘의사 코스’ 포기 뒤 컨설턴트 변신

문 대표는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의료 서비스의 임팩트 확산’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2007년 졸업을 앞두고 유엔-스파이더(UN-SPIDER)로 떠난 이유다. 그는 “재난 상황에 인공위성 등 우주기술을 활용해 환자를 찾아내고 치료하는 연구에 참여했다”며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도 할 일이 많다고 느낀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수련의(인턴)→전공의(레지던트)→전문의로 이어지는 이른바 ‘의사 코스’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과 경영학(MBA)을 전공했다.

문 대표는 “대학원 재학 때 ‘사회적 창업’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비즈니스를 통해 지속가능한 효과를 내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재단·비정부기구(NGO) 등이 펀딩 주체에 휘둘리는 것에 실망했는데, 창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비즈니스 경험을 쌓기 위해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서 3년간 근무했다.

“높은 업무 강도 탓에 스스로 ‘멘탈이 무너진다’고 느낀 시기가 찾아왔어요. 동료들도 정신건강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 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사람의 정신세계는 어떻게 돌아갈까 궁금증이 생겼어요. 다시 돌아가 정신건강의학을 전문적으로 배워봐야겠다고 결심했지요.”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돌아와서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의료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주로 했다. 예컨대 음성으로 우울감의 정도를 진단하는 등 연구였다. 연구개발(R&D) 성과가 좋았지만, 실제 비즈니스로는 연결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 이후 멘탈케어 서비스를 구상하면서 병원에 사표를 냈다. 이때까지 모아둔 6000만원으로 회사를 차렸다.

문우리 포티파이(40FY)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오렌지플레닛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심리케어 서비스 '마인들링(MINDLiNG)' 분석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문우리 포티파이(40FY)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오렌지플레닛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심리케어 서비스 '마인들링(MINDLiNG)' 분석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CES서 혁신상…모빌리티 기업과 협업  

회사 규모를 키운 건 스마일게이트그룹 ‘오렌지플래닛 창업재단’, 삼성전자 ‘C랩’ 등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지난해 11월부터는 구매 방식으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구독형으로 전환했다. 유료회원 수는 1만 명을 넘었다. 삼성전자·롯데하이마트·성남시의료원·넥슨 등도 임직원 멘탈케어를 위해 이 앱을 채택했다. 지난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3’에선 혁신상을 받았다.

“CES에선 제약사의 관심도 뜨거웠지만, 글로벌 모빌리티 회사들이 큰 관심을 보여 의아했습니다. 자율주행차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모빌리티 기술보다는 ‘콘텐트 싸움’이 될 거라고 예측하기 때문이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에서 신체 신호를 센싱하고, 디스플레이·음향 등 차량 내부 기기를 통해 맞춤형 멘탈케어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들 기업과 협업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포티파이에 투자한 남홍규 끌림벤처스 대표는 “코로나19가 확산해 우울증과 사회관계 단절이 사회적 이슈가 돼 왔는데, 마인들링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멘탈헬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중 가장 빠르게 글로벌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츠는 멘탈헬스 소프트웨어 시장이 2030년 188억1170만 달러(약 23조79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마인들링 앱 시연모습. 사진 마인들링

마인들링 앱 시연모습. 사진 마인들링

마인들링은 문답과 신체 신호 등을 측정해 개인 맞춤형 해결책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사진 마인들링

마인들링은 문답과 신체 신호 등을 측정해 개인 맞춤형 해결책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사진 마인들링

2030년 글로벌 멘탈헬스 SW 시장 24조

문 대표는 “미국에선 수면·약물중독 등 질환에 대해 이미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아직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지 않고 있는데, 관련 제도가 하루빨리 마련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페어테라퓨틱스의 약물 중독 치료앱 ‘리셋’을 디지털 치료제로 처음 허가했다. 이어 “정부가 R&D 지원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실제 사업화에는 판로 개척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훌륭한 R&D 기술이 만들어져도 사업화하지 않으면 결국 그 기술은 사장되고 맙니다. 특히 스타트업은 신기술을 내놓을 시장 형성이 중요한데, 공공부문에서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판로를 열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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