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 146명 늘어…600명 잡아 가둔 ‘학생 삼청교육대’ 실체도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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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146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또 삼청교육대 사건과 관련해선 청소년 600여명이 강제로 끌려간 사실도 확인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총 337명…사망한 뒤에야 가족 찾아

지난해 12월 6일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피해자 소송 제기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6일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피해자 소송 제기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진실화해위는 제51차 위원회를 통해 두 사건에 대한 추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1992년 사이 민간 사회복지법원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이 사람들을 강제수용해 폭행·강제노역 등의 가혹행위를 가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1차 진실규명을 통해 처음으로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공식 규정하고, 191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어 새로운 피해자 146명이 더 확인되며 피해자는 총 337명으로 늘어났다.

추가 피해자 중엔 어린 시절 형제복지원에 들어가며 가족들과 헤어진 뒤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하고 지난해 사망한 이모(사망 당시 75세)씨도 있었다. 이씨는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던 상태에서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됐다. 가족들은 이씨가 실종된 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1987년 이씨가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이후 행적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씨의 동생 등 가족은 형제복지원이 이씨의 행방을 숨겼다고 여겨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그 결과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이씨가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피해자이며 이름과 나이, 호적 등도 바뀐 채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씨는 조사관이 확인하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7월 한 요양원에서 홀로 눈을 감은 상태였다. 피해 사실은 밝혔지만, 끝내 가족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 것이다. 이씨의 동생은 지난달에야 납골당에서 고인이 된 형을 다시 만났다. 또 41년 만에 형제의 생존 사실을 알게 되거나, 48년 만에 헤어진 어머니와 재회한 피해자들도 있었다.

국가 기관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묵인하거나 두둔한 사실도 확인됐다. 1977년 10월과 12월에 작성된 중앙정보부의 문건들을 통해서다. 문건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는 당시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불법 감금·폭행과 관련해 내사에 착수했지만, 두 달 만에 “부산 시내의 부랑인을 수용, 선도함으로써 범죄의 사전 예방 및 건전한 부산시가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또 구타 등에 대해선 “수용을 거부해 강제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학생 삼청교육대' 확인…전과자처럼 사후 감시도

진실화해위는 삼청교육 피해사건 관련한 피해자 111명도 새로 확인했다. 지난해 6월 1차 조사 결과를 포함하면 총 152명의 피해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삼청교육 피해 사건은 군·경이 1980년 8월 4일부터 1981년 12월 5일까지 순화교육·근로봉사·보호감호 등의 명분으로 약 4만명을 군부대 삼청교육대에 수용하고 가혹행위를 가한 사건이다.

특히 이번 진실규명에서는 청소년 600여명을 강제 수용했던 ‘학생 삼청교육대’의 실체가 확인됐다. 해당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남산공업전수학교 재학 중 제11공수여단 62연대 유격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해당 부대에 자신을 비롯한 전국의 중‧고등학생들만 있었다고 진실화해위에 증언했다. 또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끌려간 홍모씨 등은 지난 2004년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로부터 ‘1980년 9월 수업 도중에 연행된 후 행방이 묘연하다가 약 4주 후에 본교에 복귀한 사실이 있음’이라는 확인서를 받아 제출했다.

국가 기관이 삼청교육대에서 귀가한 이들을 ‘순화교육 이수자’로 규정하고 전과자처럼 관리·감시한 정황도 새로 드러났다. 1981년 1월 25일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관할 동‧면사무소가 ‘순화교육 이수자 사후관리 기록카드’를 계속 작성한 사실이 문건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피해자들은 사후관리 명목으로 이뤄진 감시 때문에 직장에서 부당한 조치를 당하거나 해고를 당하는 등 지속적으로 피해를 받기도 했다.

'대외비'라 적힌 '순화교육 이수자 사후관리 기록 카아드'란 제목의 문서 모습이다. 사후관리상황 란에 대상자의 1981년 7월 20일 행적도 적혀 있다. 자료 진실화해위.

'대외비'라 적힌 '순화교육 이수자 사후관리 기록 카아드'란 제목의 문서 모습이다. 사후관리상황 란에 대상자의 1981년 7월 20일 행적도 적혀 있다. 자료 진실화해위.

1980년 9월 27일 노동부 근로기준국 근로기준과 ‘순화교육 이수 근로자에 대한 부당처우 방지’ 문서. 자료 진실화해위.

1980년 9월 27일 노동부 근로기준국 근로기준과 ‘순화교육 이수 근로자에 대한 부당처우 방지’ 문서. 자료 진실화해위.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따라 삼청교육 피해 범위를 모든 관련 인권침해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을 개정하고, 트라우마 실태를 조사할 전문가 위원회 설치와 장기적인 조사기구 설치 등을 권고했다.

1981년 2월 6일 서울시는 각 구에 ‘순화교육 이수 귀가자 사후관리 철저 재강조 지시’를 하달하며, 경찰의 협조하에 ‘유동자 및 행불자가 없도록 강력히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자료 진실화해위

1981년 2월 6일 서울시는 각 구에 ‘순화교육 이수 귀가자 사후관리 철저 재강조 지시’를 하달하며, 경찰의 협조하에 ‘유동자 및 행불자가 없도록 강력히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자료 진실화해위

‘5·16’ 이후 불법구금·고문 피해, ‘납북귀환어부’ 사건도 조사

한편 진실화해위는 5·16 군사정변 직후 정부가 사회단체 대표 등을 불법구금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31명을 추가 확인했다. 또 대양호 등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선 처음으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1968년 대양호 등 23척에 탑승한 150명의 어부들과 가족들이 수십년 동안 국가로부터 사찰을 당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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