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8일 오후 11시 25분. 울산시 울주군 일대 주민에 '곰 3마리 탈출…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재난문자가 왔다. 지진이나 태풍·화재 같은 재난 경고가 아니라 곰을 조심하라는 낯선 경고 문자였다. 1시간 뒤 경찰·엽사 등 27명은 울주군 일원에서 곰 3마리를 사살했다.
이들 곰은 사살되기 전 인근 농장형 방목장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탈출했다. 먹이를 주고 키워준 60대 부부를 잇달아 습격하면서다. 도심 외곽 농장에서 자란 4살짜리 곰 3마리. 그리고 습격을 받은 60대 부부. 목숨을 앗아간 곰과 60대 부부 사연을 알아봤다.
"곰 신지식인에게 곰 3마리 받아"
2018년 7월. 33만㎡(10만평) 이상 대형 방목장을 울산 울주군에 가진 축산 관련 신지식인 A씨는 한 신지식인 모임에 참석했다가 B씨를 만났다. 곰을 키우며 신지식인상을 받았다는 B씨는 "생후 3개월쯤 된 새끼 곰 3마리가 있는데, 탈수 증세 등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좀 키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닭·염소·말·돼지·강아지 등을 키우고 대형 방목장까지 소유한 A씨는 새끼 곰을 키워보기로 했다. 그렇게 곰 3마리는 울산으로 왔다. A씨는 반려견처럼 곰 3마리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갔다. 새끼 곰은 침대에 올라가 장난을 치고, 우유 마시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이름도 '삼손'이 형제로 지었다. A씨 유족은 "삼손이 형제는 공격성이 없었다. 아기 때부터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반려견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아파트서 키우다 방목장으로 옮겨
이들 곰은 털이 뻣뻣해지고, 덩치가 점점 커지자 아파트에선 더 키울 수 없게 됐다. A씨는 울주군 자신의 방목장으로 곰 거처를 옮겼다. 방목장 주변은 염소 등 가축이 밖으로 나갈 것을 대비해 높이 1m 이상 되는 전기목책이 둘려 있다.
삼손이 형제는 사료를 먹으면서 방목장 강아지 등 다른 동물과 잘 어울려 지냈다. 방목장 한편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재주를 부리고,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등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이때쯤 방목장에 추가로 새끼 곰 1마리가 더 왔지만, 병으로 죽기도 했다.
삼손이 형제 중 한 마리가 2021년 전기목책을 넘어 방목장 인근으로 한차례 가출했다가 다시 붙잡혀 오는 일이 있었다. 당시 울주군 야산에 곰이 출몰했다고 전해지면서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곰을 방목장에서 키우는 게 불법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곰을 사육하려면 적정한 사육시설을 갖추고 환경부 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
곰 합법 사육 논란 불거져
A씨는 "농장을 합법적인 사육시설로 등록할 테니 곰을 키울 수 있게 해달라. 아픈 새끼 곰을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며 사법당국에 호소했다. A씨 유족은 "당시 정부 부처에서 '압수' 조치를 해서 방목장에 있던 곰을 다 데려갔다면 부모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지 않나. 그땐 곰을 수용할 시설이 없으니 무조건 방목장 안에 가두라고만 했다. 관련 부처에 책임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들 곰은 몰수대상이다. 몰수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곰을 가두라고만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배경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후에도 곰 3마리는 사람이나 농장의 다른 동물을 해치는 등 공격적인 모습 없이 사육시설 등에서 잘 생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A씨의 곰 사랑은 4년여 만에 안타까운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끼니를 챙겨주려고 방목장을 찾은 그를 곰이 습격했고, 이어 뒤이어 남편을 찾으러 온 부인마저 습격했다.
젖병 물려 키운 곰, 주인 습격
A씨 유족은 "사고 뒤 부모님이 곰을 키우면서 웅담이나 쓸개즙을 채취하려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고 곰을 가두어 키우며 괴롭혀 벌을 받은 것이라는 인터넷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국내 곰 사육은 1981년 정부에서 농가 소득증대 차원으로 수입을 권장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4년 뒤 곰 보호 여론에 따라 사육곰 수입이 금지됐고, 남은 사육곰만 남게 됐다. 1993년 정부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웅담 등 수출도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