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가난한 노인, 젊은이의 미래가 되게 할 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실장

대한민국에서 늙음은 부끄러움이다. 젊어 보인다는 사교성 발언이 난무하고, 한 살이라도 더 어려 보이게 한다는 옷과 화장품이 인기다. 늙을 ‘노(老)’자는 아예 기피 대상이 돼 관청에서도 노인은 ‘어르신’이라는 단어로 대체됐다. 그 요란한 공경 뒤편에는 ‘틀딱’ ‘노인충’ ‘연금충’ 같은 혐노(嫌老) 비하어가 판을 친다.

늙음을 더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가난이다. 65세 이상 한국 노인 10명 중 4명은 ‘상대적 빈곤층’이다. 중위소득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살아간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수위다. OECD 평균(2019년 13.5%)의 3배나 된다. 그나마 소득 하위 70%의 고령자에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도입되면서 나아진 것이 이 정도다. 각종 경제지표에서 어느덧 OECD 상위권을 차지하게 된 한국이지만, 이 뿌듯한 수치(數値)를 만든 노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수치(羞恥)스러운 통계뿐이다.

OECD 압도적 1위 노인 빈곤율
60년 뒤에도 여전할 것이란 전망
국민연금 실질 소득대체율 20%선
더 내고 더 받는 방안 고민해봐야

문제는 노인의 현재가 젊은이의 미래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40.4%)은 18~65세 빈곤율(10.6%)의 4배에 가깝다(통계청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보고서 2022’). 그 격차가 선진국 중 노인 빈곤율이 비교적 높은 축인 스위스나 호주(각각 2.5배), 일본(1.5배)을 압도한다. 전체 인구보다 오히려 노인의 빈곤율이 더 낮은 프랑스·네덜란드 같은 나라와 비교는 언감생심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늙어서 가난해질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현재 국민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은 42.5%다. 기금 고갈을 늦추느라 해마다 낮춰 왔다. 2028년까지 40%로 낮아지게 돼 있다. 그러나 생애 평균 월급 400만원 받던 사람이 국민연금으로 160만원쯤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로는 그 절반 정도다. 명목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을 전제로 하는데, 평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8.7년에 불과하다. 그래서 실질 소득대체율은 22% 수준에 그친다.

지금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논의되는 두 축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높이자는 데에는 의견이 모이는 듯하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엇갈린다. 민간자문위원회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현행 유지안과 인상안을 나란히 제시했다.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2080년대가 되어도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 기간은 27년 정도다. 이 경우 실제 소득대체율은 23~24%에 불과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여유 있는 사람들은 국민연금과 더불어 퇴직연금·개인연금 등의 3중 전략을 짜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용돈 연금’에 만족해야 한다. 이래서야 불명예스러운 노인 빈곤율을 개선할 수 없다. 최근 국민연금연구원은 2020년 태어난 아이들이 노인이 되는 2085년이 돼도 노인 빈곤율은 29.8%에 달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지 않으면 ‘세계 최악의 노인 빈곤국’이란 타이틀을 미래 세대도 여전히 짊어질 공산이 크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열심히 일해도 안정적 노후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누가 자신의 노후비용을 미리 털어 자녀 양육에 쓰려 하겠는가. 연금 개혁의 목적은 연금 재정 고갈을 늦춰 공적 연금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고갈 시점을 아무리 늦춘들 연금 재정은 언젠가 바닥이 드러난다. 고갈 시점을 늦추는 데 몰입해 ‘푼돈 연금’을 이어간다면 연금에 대한 믿음 자체가 고갈될 수 있다.

공적 연금의 기능 확대를 사회적 부담으로만 여기는 것은 단견이다. 2060년대 이후 노인 인구 비중은 전체의 45%를 넘는다.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가난에 시달린다면 우리 경제는 위축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보험료율을 더 높이고, 점진적으로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더라도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높은 노인 빈곤율이 유지된다면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양극화와 이에 따른 갈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투표권을 가진 노인들의 공적 부조 요구가 강해지면서 재정 압박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2008년 도입된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의 전신)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략 10만원꼴로 올라갔다. 윤석열 정부도 임기 중 기초연금을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이미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느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제고에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정년 연장, 노인 일자리 확대, 복지 시스템 조정 같은 난제가 세트로 딸려 있다. 그러나 이대로 가난한 미래를 기다릴 수는 없다. 소모적인 현금 복지를 정리해 국민연금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노력 없이 얻는 유일한 것이 노년이라지만, 노년의 행복은 노력 없이 얻을 수 없다. 그 노력을 개인에만 맡긴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