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주역 대가 "굉장한 괘 나왔다, 장부냐 소인이냐 택해야" [백성호의 현문우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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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주역 대가 "굉장한 괘 나왔다, 장부냐 소인이냐 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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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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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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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세계적으로 큰 변화가 있는 해다.”

대산(大山) 김석진 옹은 올해 96세다. 야산(也山) 이달(李達ㆍ1889~1958)의 수제자인 그는 ‘주역(周易)의 대가’로 통한다. 야산 선생은 주역에 통달해 당대 사람들이 “이주역”이라 불렀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진한 장관을 보내 정치참여를 권했으나, 야산 선생은 거절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비서를 보내 합작의사를 타진했지만, 이 역시 거절했다. 그때 백범의 제안을 거절하며 ‘근호부지(近虎不知)’의 뜻을 담은 시 한 수를 써주었다. 범이 가까이 있어도 알지 못하니 걱정이란 의미다. 신변을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주역을 놓고 스승께서 가장 강조한 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김석진 옹은 “종도(從道)”라고 답했다. 김 옹은 “역(易)은 항상 변한다. 그러니 우리도 때를 따라서 변화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도(道)를 따르기 위함이다. 도가 뭔가. 도는 옳은 일이다. 스승님은 늘 이걸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대산 김석진 옹은 "제 스승께서는 주역을 가르치면서 늘 '종도(從道)'를 강조하셨다. 옮은 일을 따르라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대산 김석진 옹은 "제 스승께서는 주역을 가르치면서 늘 '종도(從道)'를 강조하셨다. 옮은 일을 따르라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지난달 27일 경기도 광주에서 대산 선생을 만났다. 마침 둘째 아들네에 머물고 있었다. 지난해 초에 만난 기억이 났다. 그때는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가 가장 큰 이슈였다.

당시 김 옹은 “올해(2022년)는 코로나에 막혀서 함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고 내다봤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의 공포가 치솟을 때였다.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는 “군자는 표범처럼 바꾼다. 겨울을 앞두고 털갈이할 때 자기 털을 모두 바꾼다. 반면 소인은 겉모습만 바꾼다. 속은 바꾸지 않고 화장만 바꾼다. 그래 놓고 바꾸었다고 말한다. 군자를 뽑을 건가, 소인을 뽑을 건가”라고 일갈했다.

올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플레이션에 이어 경기침체가 우려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한창이다. 국내 정치권도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다. 한국만 어려운 게 아니다. 전 세계가 그렇다. 김석진 옹에게 ‘2023년의 주역적 전망’을 물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나.
“올해는 ‘택뢰수(澤雷隨)’에서 ‘중택태(重澤兌)’로 변화하는 괘가 나왔다.”

주역의 괘는 점을 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계묘년은 60년마다 돌아온다. 60간지에 의해 60년 전에 이미 올해의 괘가 정해져 있다. 다만 그 괘를 풀어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깊이와 통찰이 달라질 따름이다. 김 옹은 “올해의 핵심은 따를 수자, 수(隨)괘”라고 했다.

수(隨)괘,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수시변역(隋時變易)’이다. 때를 따라서 변화하고 바꾸라는 뜻이다. 그래야 계속 생명력이 생긴다. 올해는 모든 것을 혁신하고, 개혁하고, 바꾸는 해다. 그래서 힘이 든다. 무언가를 크게 바꿀 때 힘이 들지 않나. 올해는 힘이 많이 드는 괘다.”
 김석진 옹은 "올해는 큰 변화가 있다. 그래서 여러모로 힘이 많이 드는 괘다"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김석진 옹은 "올해는 큰 변화가 있다. 그래서 여러모로 힘이 많이 드는 괘다"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어렵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래도 바꾸어야 한다. 힘들다고 안 하거나 못하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수시(隋時)’가 중요하다. 때를 잘 따라야 한다. 가령 때를 모르고 여름인데 겨울인 줄 알면 어찌 되겠나. 안 그래도 더운데 난로를 켜게 된다. 겨울인데 여름인 줄 알면 어떻겠나. 추운데도 에어컨을 틀고 있다. 그래서 때를 정확하게 알고, 거기에 맞추어 변할 줄도 아는 ‘지시식변(知時識變)’이 필요하다.”

김 옹은 올해 주역 괘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천하수시(天下隨時)’라는 네 글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구십 평생 주역을 하고 있지만, 주역의 괘에서 ‘천하(天下)’라는 말은 좀체 나오지 않는다. 천하수시,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온 세계가 때를 따라서 움직인다는 거다. 올해는 굉장한 괘가 나왔다. 그러니 큰 인물이 나올 것이다.”

왜 올해의 괘가 굉장한가.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터졌다. 옛날에도 그랬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난리(전쟁)가 나는 법이다. 전염병과 난리는 서로 따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세계전쟁 아닌가. 그런데 ‘천하(天下)의 수(隨)’괘가 나왔다. 모든 일이 우리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벌어진다.”
천하가 때를 따른다(天下隨), 무슨 말인가.  
“올해는 세계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 수시변역(隋時變易)을 잘한다면, 코로나19 전염병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다 거두어들이고 정지시키는 해가 된다. 주역에서 어지간하면  ‘천하수시(天下隨時)’괘가 안 나온다. 전염병 퇴치 방법을 찾고, 세계 지도자들은 지혜를 모아 전쟁 종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천하(天下)가 모두 때를 잘 따라서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김석진 옹은 "주역은 결정론적 운명론이 아니다. 세상과 우주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김석진 옹은 "주역은 결정론적 운명론이 아니다. 세상과 우주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주역은 결정론적 운명론이 아니다. 세상만물이, 이 우주가 끊임없이 변해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주역 역시 그런 변화를 따른다. 올해 계묘년의 수(隨)괘는 태(兌)괘로 변화한다. 수괘가 체(體)라면, 태괘는 용(用)이다. 수괘가 몸통이라면, 태괘는 팔다리에 해당한다. 몸 전체의 역할로 보면 팔다리가 더 중요하다.

기쁠 태자, 태(兌)괘다. 무슨 뜻인가.  
“수시변역(隋時變易)만 잘하면 기쁜 일이 온다는 뜻이다. 기쁘다는 건 만족하는 것이다. 성취하는 것이다. 올해 희망은 있다. 그런데 변역(變易)을 잘해야 한다. 변화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그러니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인도 그렇다. 때를 따라서 변화를 이루면 지지율이 올라간다.”

이 말끝에 김 옹은 변화를 이룰 때 지도자가 꼭 명심해야 하는 한 가지를 꺼냈다. “계소자(係小子)면 실장부(失丈夫)다. 소자(小子)에게 매이면 장부(丈夫)를 잃게 된다.” 이 말은 주역에 있는 구절이다.

주역이 말하는 소자는 누구이고, 장부는 누구인가.
“소자는 작은 사람이고, 장부는 큰 사람이다. 소자는 사사로움을 앞세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작은 사람이고, 장부는 공정하고 나라를 위하는 큰 사람이다.”
지도자라면 누가 봐도 장부를 취하지, 소자를 취하겠나.
“맞는 말이다. 그런데 소자가 나와 가깝고 친분이 있을 때는 오판을 하게 된다. 뻔히 보이는데도 소자를 취하고, 결국 장부를 잃게 된다. 선택을 잘해야 한다. 누구를 따를 건가. 국민의 편에서 판단해야 한다. 소자를 따라서는 안 된다. 장부를 따라야 한다. 여기서 선택을 잘못하면 기쁜 일이 오지 않는다.”
그게 수시변역(隋時變易)과도 관계가 있나.
“그렇다. 때를 따라서 변화를 이루라고 했다. 큰 변혁을 이루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소자에게서는 그런 힘이 나오지 않는다. 장부를 취할 때 그런 에너지를 얻게 된다. 만약 친소 관계에 얽매여서 소자를 취하고 장부를 버리면 어찌 되겠나. 변화와 개혁에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김석진 옹은 "큰 변혁을 이루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자가 아니라 장부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김석진 옹은 "큰 변혁을 이루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자가 아니라 장부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김 옹은 마지막으로 “불겸여야(弗兼與也)”라고 했다. 아닐 불(弗)자, 겸할 겸(兼)자, 더불 여(與)자다. 앞서 말한 소자와 장부를 다 따를 수 없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여자가 시집가는 괘에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어쭙잖은데 자꾸 와서 나하고 같이 살자는 남자가 있고, 또 가정을 행복하게 할 인품 좋은 남자가 있다. 그런데 어쭙잖은 남자는 손쉽게 교제할 수가 있고, 인품 좋은 남자는 좀 점잖다. 둘 중 누구를 따를 건가. 불겸여야(弗兼與也). 둘 다 따를 수는 없다. 하나만 따라야 한다. 여기서 선택이 무척 중요하다. 개혁과 변화의 성패가 여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국운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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