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현호의 법과 삶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유교 경전 서경에서는 인생의 ‘오복(五福)’을 이렇게 들었다. 오래 살고, 풍족하게 살고, 건강하게 살고, 이웃과 더불어 살다가, 마지막에는 살던 집에서 편안히 여생을 마치는 것. 대가족이 모여 살던 농경사회에서는 어른이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다가도 돌아가실 때가 되면 집으로 모셔 가족이 모인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였다.

대만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사망학자(thanatologist)인 푸웨이쉰(傅偉勳·1933~96) 교수는 저서 『죽음 그 마지막 성장』에서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지적했다. 그 말처럼 가족들은 천국의 계단에 서는 환자와 임종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했다.

사망자의 80% 가까이가
낯선 병원서 마지막 맞아
품위 있는 마무리 되도록
자택 임종 지원 확대해야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다. 품위를 지키며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재가치료와 가정형 호스피스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앙포토]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다. 품위를 지키며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재가치료와 가정형 호스피스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앙포토]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사이 급속한 산업화로 사회가 핵가족화하고, 의료 전달 체계는 의료 공급자 중심의 시설 급여형으로 바뀌면서 의료기관에서의 임종은 2010년 67.6%에서 2019년 77.1%로 늘어난 반면 집에서의 임종은 20.3%에서 13.8%로 줄었다. 환자는 아프고 불편해도 살던 집에서 지내다 최후까지 지내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낯선 의료기관에서 세상과 이별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2015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세계 죽음의 질 지수’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80개국 중 18위에 그쳤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의료기관에서의 임종이 2010년 80.3%에서 2019년 69.9%로 줄어들고 자택 임종이 늘면서 죽음의 질이 우리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일본에서 자택 임종이 늘어난 이유는 스스로 일상생활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환자를 퇴원시킨 뒤 방문 간병 및 간호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환자가 간병이 필요해도 익숙한 지역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 간호, 예방, 생활지원, 주거를 포괄적이고 지속해서 제공하는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우리나라도 죽음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운용을 바꾸어야 한다. 시설 급여를 제한하고 집에서 임종하는 비율을 높이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의료 기관에 입원 중인 환자는 옆 침상에서 죽어 나가는 동료 환자를 지켜보면서 공포심과 우울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면회 온 가족에게 “제발 집에 좀 데려다 달라”며 울며 애원한다.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존엄사 논쟁을 일으킨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기 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낳아 주시고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하는 임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직접 느꼈다.

우선, 급성기 치료 이후엔 집으로 돌아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탈원화(脫院化) 정책에 나서야 한다. 이는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 제도로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호스피스 사업 유형을 입원형, 자문형, 가정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입원형 호스피스가 중심이다. 입원형은 정부 입장에서는 행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의료공급자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이익을 더 얻을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도일 수 있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정신적 고문에 가까운 제도이므로 가정형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재가 치료로의 전환을 위해서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에서 재가치료 시 환자에게 현금 급여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입원 시에만 의료 기관에 치료비를 지급하는 현물 급여 제도가 원칙이어서 환자가 집에서 치료받을 때는 현금 급여를 하지 않는다.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의료 기관에 입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임종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환자가 재가 치료를 원하면 병원이나 시설에 지급되는 입원치료비의 2분의 1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환자는 그 돈으로 요양보호사 등을 고용해 도움을 받는다.

셋째, 사망진단 절차를 간편화하여야 한다. 집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경찰은 이를 변사처리 하고 가족들은 노인학대 혐의로 조사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임종 직전에 다시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재가 사망 시 의사가 왕진하여 사망 진단을 의무화하게 하거나, 암·심질환 등 지병 사망이 확실한 경우 사체 검안을 간편화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죽음 교육을 활성화하고, 죽음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도록 우리 사회 모두 노력해야 한다.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