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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첫 장관 탄핵안 가결…여야, 타협없는 극단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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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이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묻겠다며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 본 회의를 통과했다. 표결 순간 이 장관은 국무위원 대기실에 머물러 본회의장의 행안부 장관 자리가 비어있다. 장진영 기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이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묻겠다며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 본 회의를 통과했다. 표결 순간 이 장관은 국무위원 대기실에 머물러 본회의장의 행안부 장관 자리가 비어있다. 장진영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169석) 주도로 통과됐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에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여권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2차 소환조사(10일)를 이틀 앞두고 ‘방탄 탄핵’을 강행한 거야(巨野)의 극단의 정치가 만든 결과다.

이 장관 탄핵안은 이날 본회의 개의 후 1시간22분 만에 통과됐다. 재적 의원 299명 가운데 293명이 무기명 투표한 결과, 찬성 179명, 반대 109명, 무효 5명이었다. 지난 6일 탄핵안 발의에 정의당 의원 6명 전원을 포함해 야 3당 176명이 참여했고 그 외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이 7명인 점을 감안하면 무효표 5명 외엔 이탈표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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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표결에 앞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먼저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조사하자”는 동의안을 제안했지만 재석 289명 중 찬성 106명, 반대 181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송 의원은 “이 장관의 탄핵안에서 헌법이 정한 탄핵 요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민주당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탄핵 절차를 형해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탄핵안 제안 설명에 나선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이 장관은 재난예방 및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 공직자로서 성실 의무를 위반한 책임, 국회 위증, 유족에 대한 부적절 발언, 2차 가해 등이 탄핵 사유로 적시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기도 했다.

이후 탄핵안 가결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민주당 지도부가 전날부터 소속 의원들에게 본회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며 이탈표 방지를 위한 표 단속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초 김진표 국회의장은 사회 분야 대정부질문을 마친 뒤 탄핵안을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민주당 의원 169명이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면서 탄핵안 표결이 가장 먼저 본회의에 상정됐다.

여당 “막무가내 이재명 방탄” 야당 “이상민 물러났으면 될일”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앞줄 왼쪽 둘째부터) 등 의원들이 8일 오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후 로텐더홀 계단에서 탄핵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앞줄 왼쪽 둘째부터) 등 의원들이 8일 오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후 로텐더홀 계단에서 탄핵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당 안에서도 무리한 탄핵안 강행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5선 중진인 이상민(대전 유성을) 의원은 이날 오전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와 인터뷰에서 “탄핵소추 요건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고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내에 법조인 출신으로 탄핵안이 헌재에서 인용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는데 사법시험 볼 때 헌법 공부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지도부로부터 표 단속을 받았나란 질문엔 “정직하게 얘기해야 되냐”며 “누구로부터 종용받았다고 영향을 받을 일이 아니다”고만 답했다.

당사자인 이상민 장관은 이날 대정부질문 참석차 국회를 찾았다가 국무위원 대기실에서 본인에 대한 탄핵안 표결을 지켜봤다. 가결 직후 곧바로 국회를 떠나 이후 대정부질문엔 참석하지 않았다. 이 장관은 입장문을 내고 “헌재 탄핵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며 “오늘 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종 탄핵 여부, 헌재서 180일이내 결정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 장관은 이날 오후 5시쯤 국회로부터 인편으로 소추의결서를 전달받으면서 행안부 장관으로서 직무가 정지됐다.

이 장관 최종 탄핵(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열어 통상 180일 이내에 결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 장관을 해임할 수도 없다.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이 장관 탄핵안이 가결된 지 20분 만에 공식 입장을 내고 “의회주의 포기다.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입장문은 김은혜 홍보수석이나 이도운 대변인의 명의가 아닌 대통령실 명의로 나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국무위원의 탄핵안이 의결된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대통령실 전체의 입장으로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별도로 “헌법재판소가 국정 혼란을 용인하지 않고 탄핵소추안을 빠른 속도로 종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탄핵소추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참모는 “다수당의 비민주적 횡포로 아직 국회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한 야당의 정치적 획책”이라고 비판했다.

한덕수 총리도 대정부질문 답변 형식으로 “대내외적으로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의정사에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진 점에 대해 국무총리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행정안전부가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들, 헌법공부 안했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여당인 국민의힘은 탄핵안 가결 직후 곧바로 본회의장 밖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의원들은 “거대야당 수퍼갑질, 협박 정치 중단하라” “민주당의 방탄정치, 국민들이 심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 민주당이 국회에서 저지른 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반헌법적 폭거이자 의회주의 파괴”라고 말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막무가내식 이재명 방탄을 위한 행태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탄핵안 가결은 국민의 중요한 명령”이라며 “159명의 무고한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를 놓고 이 장관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미 물러났으면 됐을 일이나 윤석열 정권은 끝내 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간담회에서 “국회가 유족과 국민을 위해 해야 될 정말 최소한의 도리를 했다”며 “헌재가 국민에 대한 책무, 안전을 놓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헌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탄핵안 발의에 반대 입장이었던 한 재선 의원은 “국무위원인 이 장관이 어떠한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는지 혐의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역풍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회가 공무원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사례는 3건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중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만 2017년 3월 유일하게 인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 탄핵소추 두 달 만인 2004년 5월 기각됐고,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안은 2021년 10월 각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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