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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염색가공산업 존폐 기로…뿌리산업에 추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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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섬유업체 성보산업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백일현 기자

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섬유업체 성보산업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백일현 기자

지난 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성보산업 공장. 염색 가공을 주로 하면서 일부는 수출도 하는 섬유 업체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염색 기계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눈에 띄었다.

창업 26년째인 이 회사 하득룡(71) 대표는 “현장 직원이 40명이 조금 넘는데 한국인은 10여 명뿐”이라고 말했다. 거의 매달 채용 공고를 내고 있지만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외국인 인력을 할당받아 숨통을 트고 있는 형편이다.

제품 품질을 인정받고,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회복하면서 지난해 수출이 45억원으로 전년보다 50% 늘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적자가 6억5000만원이었다. 최근 3~4년 새 누적 적자만 22억원이다. 인건비와 원자잿값·전기료 인상, 고금리 탓이다. 지난해엔 이탈리아·스페인·브라질 등에서 주문을 받았지만, 납기일을 맞출 수 없어 거절했다. 하 대표는 “인력 부족으로 20만 달러(약 2억5000만원)어치를 중국에 빼앗겼다”며 씁쓸해했다. 이어 “워낙 상황이 안 좋아 석 달 전 직원들에게 폐업을 통보했다가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그동안 쌓아온 게 사라지지 않습니까’라는 답을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비단 성보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소 섬유 업계가 존폐 기로에 섰다. 최근 2년 새 반월산업단지에서만 염색 가공업체 65곳 중 5곳이 문을 닫았다.

섬유 산업은 25만 명이 종사하고, 연 37조원어치를 생산하면서 전후방 파급 효과가 크다. 사업체 수는 4만7000개로 국내 제조 기업 수의 10.2%를 차지한다. 지난해 수출액이 123억 달러(약 15조원)로 13대 수출 주력 품목 중 하나다. 그러나 10인 미만 중소기업 비중(90%)이 커 금리 인상이나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다.

실 염색인 사염을 25년간 해오던 나영식산업은 3년 전부터 휴업 상태다. 한때 직원이 180명이었던 회사다. 나영식(70) 대표는 “원자잿값·전기료·인건비가 오르니 수주가 늘어도 도리가 없다. 1년에 적자가 40억원이 나니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과 헤어지면서 1년치 급여를 주면서 나중에 작게라도 다시 가동하는 게 목표라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업계에선 ‘뿌리산업’ 지정만이 살길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간담회에서 “섬유염색가공산업을 뿌리산업에 추가해달라”고 건의한 데 이어, 이달 1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의 만남에서도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지난달 국회에선 기존 뿌리산업의 공정 기술 범위를 섬유 가공기술로 확대하는 뿌리산업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현재는 금형·열처리·정밀가공 등 14개의 뿌리기술(제조업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공정 기술)을 활용하는 제조업종에 대해 ▶외국인 근로자 한도 확대 ▶기술 인력 양성 ▶자동화·첨단화 ▶자금·금융 등을 지원한다.

하득룡 대표는 “섬유가 사양산업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환경 관리나 품질 경영 측면에서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구홍림 반월패션칼라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뿌리산업 예산이 전반적으로 증액돼야 한다”며 “외국인 인력이라도 안정적으로 충원되면, 여기에 더해 관리·연구직으로 한국인을 채용할 여력이 생긴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면 업계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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