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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 앞에서 더 강해진다, 언니들의 워맨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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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JTBC 드라마 ‘대행사’는 직장 내 이야기를 다룬 오피스 드라마로, 일·사랑·가정 등 각자의 한계를 마주한 세 여성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협력 관계를 형성한다. 왼쪽부터 고아인(배우 이보영)·강한나(배우 손나은)·조은정(배우 전혜진). [사진 하우픽쳐스·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JTBC 드라마 ‘대행사’는 직장 내 이야기를 다룬 오피스 드라마로, 일·사랑·가정 등 각자의 한계를 마주한 세 여성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협력 관계를 형성한다. 왼쪽부터 고아인(배우 이보영)·강한나(배우 손나은)·조은정(배우 전혜진). [사진 하우픽쳐스·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직장 내 이야기를 다룬 ‘오피스 드라마’의 미덕은 줄타기다. 현실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다소 비현실적이더라도 극적인 요소를 통해 통쾌함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 JTBC 토·일 드라마 ‘대행사’는 주말 오피스 드라마로서 이 같은 균형을 잘 잡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7일 첫 방송 당시 4.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출발했던 시청률이 8회 만에 12%를 기록했다. 9, 10회에서도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모두가 쉬는 주말에 드라마 속 회사로 시청자를 출근시킬 수 있었던 데는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이 크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대행사’의 여성 인물 세 명(고아인·강한나·조은정)은 어느 회사에나 있는 세 집단(임원·오너·직원)을 대변한다”며 “사표를 가슴 속에 품고 다니면서 직장 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인물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이 비현실적일 수 있는 드라마의 전개와 균형추를 잘 맞춘다”고 분석했다.

사내 최고 실력자 ‘고아인(이보영)’에 닥친 현실은 성별·학벌의 벽이다. 그는 광고대행사 VC 기획에서 최초로 여성 임원인 상무 자리에 올랐지만, 회사 이미지 개선을 위한 1년짜리 시한부 임원이었음을 알게 된다. 패배감은 잠시뿐 “패배했을 때 악랄해지는 인간들이 역사를 만든다”면서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드라마는 고아인이 경쟁자인 ‘최창수(조성하)’에 비해 불리한 상황을 역이용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직장 내 생존’을 넘어 유리천장, 사내 정치, 광고계 접대 문화 등 공고한 관행을 타파해 나가는 과정 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결국 생존하기 위해선 남성 위주의 사회, 그들만의 카르텔을 깨야만 하기 때문에 이러한 소재와 전개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봤다.

재벌 3세 ‘강한나(손나은)’는 여느 드라마 속 재벌집 막내딸과 다르다. 겉모습은 철부지 같지만 직감이 날카롭다. 고아인과 때로는 긴장 관계를 때로는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공 평론가는 “무턱대고 힘을 휘두르는 가진 자라기보다 나름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실현해가려는 주체적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부족할 것 없는 그에게도 현실은 있다. 사랑이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비서 ‘박영우(한준우)’에 마음이 있지만, 재벌 3세라는 신분 때문에 한계에 부딪힌다. 박영우는 그룹 내 승계 싸움에서 강한나의 입지가 불리해지는 상황 등을 이유로 대며 “우리는 융합하면 시너지가 아니라 독이 되는 사이”라고 마음을 거절했다. 하지만 강한나는 “내가 아닌 세상을 바꾸겠다. 내가 누군지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며 세상의 잣대와 시선을 뛰어넘을 준비를 시작한다.

성공한 광고인을 꿈꾸는 워킹맘 조은정(전혜진)에게는 가정이라는 현실이 있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은 쉴새 없이 엄마를 찾지만, 회의와 철야가 계속되는 ‘고아인’ 팀에선 좋은 엄마가 되기란 어렵다. “성공하려면 역시 미혼이 정답인가”라고 푸념하며 사직서를 준비하지만, 꿈에 그리던 CD(Creative Director)로 승진하면서 일에 대한 욕심을 놓지 않는다.

세 여성 캐릭터들은 서로의 부족한 점들을 채우며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사내에 자기편이 없다는 공통점을 지닌 고아인과 강한나는 전략적인 협력 관계를 택한다. 정 평론가는 “태생적으로 신분과 처한 상황이 다른 둘은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구도”라며 “실력이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고아인을 강한나가 도와주면서 ‘낙하산’으로 불안정한 자신의 사내 입지를 다지는 등 서로를 조금씩 이용해 나간다”고 말했다.

고아인과 조은정은 서로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도움이 되는 관계다. 조은정은 담배를 물거나 커피를 마시는 고아인에 달달한 사탕을 건네고, 고아인은 조은정을 승진시켜 역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신데렐라 드라마에서는 악녀가 여성 주인공을 괴롭혔지만, 이제는 여성과 여성이 연대한다”면서 “공통의 목표와 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협력을 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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