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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유학 간다" 학교 떠난 아이, 온몸 멍든채 세상 떠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 오전 몸에 멍이 든 채 숨진 초등학생 C군이 살던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 현관 앞에 자전거들이 놓여 있다. 경찰은 전날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C군 부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8일 오전 몸에 멍이 든 채 숨진 초등학생 C군이 살던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 현관 앞에 자전거들이 놓여 있다. 경찰은 전날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C군 부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된 아버지 A씨(40)와 그의 부인 B씨(43)가 “훈육 위해 때린 사실이 있다”며 8일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 경찰은 이들 부부에 대해 9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A씨 부부는 지난 7일 인천 남동구 논현2동 자택에서 아들 C군(12)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이날 오후 1시 44분쯤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C군은 호흡과 맥박이 없는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C군의 몸에서는 타박흔(외부 충격으로 생긴 상처)으로 추정되는 멍 자국이 여럿 발견됐다.

소방당국의 공동대응 요청을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학대 정황을 확인하고 A씨 등을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이날 C군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다발성 손상을 확인했다. 직접적인 사인은 정밀검사를 통해 확인할 예정”이라는 1차 구두소견을 전달받았다. 초기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했던 A씨 부부는 이날 오후 조사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고 한다.

학교 떠나면서 외로워진 아이 

부모와 여동생 2명과 함께 살아온 C군은 무던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필리핀으로 1년여간 유학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2021년까진 학교 수업을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교육 당국의 한 관계자는 “C군은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등 수업 참여도가 높았고 운동을 잘해서 계주 선수로 뛰기도 했다. 친구들과 두루 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가정체험학습을 여러 차례 신청하는 등 등교하지 않는 날이 늘었다. 가정학습과 교외체험학습 1년 최대일수(57일)을 넘어서면서 ‘미인정 출석’이 되자 학교 측은 C군 부모에게 학업중단숙려제를 권유했다. 학업중단 위기를 맞은 학생에게 전임 상담원과의 상담 및 체험행사 등을 제공해 학업 중단을 막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A씨 부부는 C군과 함께 학교를 찾아 “필리핀 유학을 준비 중이다. 홈스쿨링 하겠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사망 전날까지 C군은 학교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부터 C군의 교우 관계는 사실상 단절된 것으로 추정된다. “C군이 학교에 나오지 않자 친구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유학을 간다고 하니 다들 수긍했다. 따로 C군의 집을 찾아가거나 친분을 이어간 친구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교육 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아파트 주민들도 지난해 말부터 C군이 말수가 줄고 어두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김모(61)씨는 “C군은 분리수거할 때만 집 밖에 나왔다. 인사를 건네도 대답을 잘 안 하고 위축돼 보였다”며 “부모가 여동생들만 챙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 부부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평소 대화 내용이나 포털사이트 검색어 등을 확인하면서 사진 등 학대 관련 증거가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학대 정황은 추가조사로 증거자료 등 보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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