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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50억 퇴직금' 곽상도·김만배, 1심서 뇌물 무죄…정치자금법 위반만 인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회의원에게 1심 법원이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뇌물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정치자금법 위반 부분만 유죄로 인정한 결과다. 하지만 당장 “김만배씨가 곽 전 의원의 아들만 보고 50억원을 줬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곽 전 의원의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고 ‘부실 기소’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돕고 아들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대장동 개발사업을 돕고 아들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준철)는 8일 곽 전 의원과 김만배씨의 뇌물수수 및 공여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남욱 변호사는 곽 전 의원과 같은 정치자금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만 벌금 4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가 2021년 4월 화천대유에서 퇴직금으로 받은 50억원이 국회의원 직무와 관련한 뇌물이고, 하나은행이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이탈하지 않도록 곽 전 의원이 알선한 대가로 보고 지난해 2월 곽 전 의원을 구속기소 했다. 화천대유 회삿돈을 건넨 김만배씨는 특가법상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 남 변호사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곽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 5000만원을 준 혐의를 각각 받아왔다.

“아들이 독립 생계, 곽 전 의원 관련 없어”

재판부는 “병채씨가 받은 성과급이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고, 곽 전 의원이 국민의힘 부동산투기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면서도 뇌물은 아니라고 봤다. “병채씨가 성인으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성과급이 곽 전 의원이 병채씨에게 쓸 비용을 덜어주는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또 “성과급 중 일부라도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됐거나 곽 전 의원을 위해 사용됐다고 볼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곽 전 의원이 직접 돈을 받았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병채씨가 성과급을 받은 뒤 곽 전 의원과 통화한 횟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점을 들며 둘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망한 곽 전 의원 아내의 상속재산 정리 문제 등으로 인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퇴직금 50억원을 ‘알선의 대가’로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곽 전 의원이 대장동 사업에 관여했다거나 성남의뜰 컨소시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곽 전 의원이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김만배씨와 돈 문제로 언쟁을 벌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알선 대가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곽 전 의원 측은 “김씨가 이전보다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고 술에 취해 후원금을 내라고 농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영학 녹취록’ 신빙성도 ‘흔들’

대장동 사건 본류와는 무관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을 부인하는 김만배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김씨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대화를 한 것은 맞지만, 공통 비용을 덜 부담하려는 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김씨와 남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사이 공통 비용 분담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 김씨가 이른바 ‘약속클럽’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약속클럽은 허언’이라는 김씨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남아 있는 ‘약속 클럽’ 관련자들에 대한 향후 수사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50억 클럽’의 핵심인 권순일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를 막겠다는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사실상 법원이 ‘50억 클럽’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2016년 실시된 20대 총선을 앞두고 남 변호사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것은 정치자금법 위반이 맞는다고 보고, 곽 전 의원과 남 변호사에 대해 각각 벌금 800만원과 400만원을 선고했다. 곽 전 의원 측은 “남 변호사가 수사받던 사건에 대해 변호사로서 법률 상담한 대가”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당시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곽 전 의원에 대한 정치자금”이라고 판단했다.

김만배씨가 곽 전 의원의 아들만 보고 50억원을 줬다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조인들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내놨다.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사회통념상 곽 전 의원을 보고 돈을 지급한 것으로 보이고, 객관적으로 ‘뇌물’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데, 법원이 부자관계를 너무 좁게 해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도 “아들의 독립 생계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 돈을 누굴 보고 준 것인지 따졌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일반적인 퇴직금 액수가 아닌 이상 곽 전 의원에게 준 것이라고 보거나, 제3자 뇌물 제공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검찰, 철저한 수사 했는지 의문”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재판부의 여러 의심을 충분히 해소할 만큼 철저한 수사가 진행됐는지도 의문”이라며 “50억원이라는 큰 금액이 실제로 제공됐는데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뇌물 약속’ 의혹이 있는 ‘50억 클럽’ 수사는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인 곽 전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사법부의 이런 판단에는 검찰의 부실하기 그지없는 수사가 좋은 핑곗거리를 제공했다”며 “당초 검찰은 이른바 ‘50억 클럽’의 박영수 전 특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수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클럽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나은행에 힘을 써준 혐의에 대해서도 수박 겉핥기였다”며 “애초부터 봐주기로 작정한 것이나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선고 후 곽 전 의원은 “예비후보자는 (법률 상담을 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냐”며 항소심에서 정치자금법 부분에 대해서도 무죄를 다투겠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항소할 뜻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객관적인 증거 등에 의해 확인된 사실관계에 비추어 재판부의 무죄 판단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입장을 냈다.

이번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대장동 일당 5명에 대한 재판도 맡고 있다.

한편 JTBC는 이날 김만배씨가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불리는 인물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돈 액수를 확인하는 육성 녹음파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최재경 전 검사장, 박영수 전 특검, 곽상도 전 의원, 김수남 전 검찰총장,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권순일 전 대법관이 차례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정영학 녹취록’과 같은 녹취 내용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같은 내용이 김만배씨의 육성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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