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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치킨게임이라는데…삼성 이유있는 '거꾸로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3를 찾은 기업 관계자 및 관람객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 뉴스1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3를 찾은 기업 관계자 및 관람객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 뉴스1

지난 1일 찾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개막한 반도체 전시회인 ‘세미콘 코리아 2023’.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겹으로 똬리를 틀며 이어져 있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입장 인원을 제한 중”이라며 “사전 등록은 3만 명이었는데 예상 밖으로 두 배가량 인원이 몰렸다”고 말했다.

① 이병철 ‘도쿄선언’ 40년 후 메모리 한파

반도체 한파가 반도체 행사 성황 만들어 

이번 세미콘 코리아에는 반도체 기업 450곳이 참여하고, 6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지난 15년간 박람회에 참석했다는 한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렇게 인파가 몰린 적은 없었다. 오히려 반도체 시장이 어렵다는 대변을 하는 것 같다”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미래 모색에 더 적극적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반도체 시장이 얼어붙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K반도체’가 주력으로 하는 메모리 분야는 13년 만에 최악의 한파를 맞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해 97% 감소했다. SK하이닉스도 10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1983년 2월 8일 이른바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지 4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경계현“메모리 40%에 만족하면 안돼”

메모리 가격이 급락하고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실적 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삼성전자는 올해도 투자를 축소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1일 임직원들에게 “왜 감산하지 않냐는 질문이 많지만 지금 우리가 손 놓고 다른 회사와 같이 가면 좁혀진 경쟁력 격차를 (다시) 벌릴 수 없다”라며 “지금이 경쟁력 확보의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메모리 점유율 40%에 만족하면 안 된다. 예전 인텔 CPU처럼 90% 점유율이 왜 안 되겠느냐”라고 강조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선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에 대해 “우리가 수십년간 겪어온 교훈과 충돌하는 상황”이라며 “실적이 악화하고 재무구조가 훼손되면 대부분 투자를 줄이고 공급을 감축하는데 이와 반대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이러한 결정에 일각에서는 ‘반도체 치킨게임’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1976년 삼성그룹 전산실 개장식에서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1976년 삼성그룹 전산실 개장식에서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

치킨게임 반복한 메모리 반도체의 역사 

업다운 사이클을 반복하는 메모리 시장의 특성상 과거 수차례 치킨게임(상대방이 포기를 기대하고 정면충돌까지 치닫는 상황)이 펼쳐졌다.〈그래픽 참조〉 1970년 D램을 처음 선보였던 인텔은 도시바·후지쯔·NEC 등 일본 기업의 공세에 1986년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한다. 2007년에는 대만 D램 업체들이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리자 가격이 폭락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세계 2위 독일 키몬다가 2009년 파산했다. 불과 1년 후 2010년 후반, 대만과 일본 기업이 다시 한번 맞붙으면서 3위였던 일본 엘피다가 미국 마이크론에 흡수되며 치킨게임은 마무리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전자는 이 과정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 이후 3년간 삼성전자는 상당한 손해를 봤지만 되려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투자 결단을 내린다. 삼성은 1993년 메모리 세계 1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왕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치킨게임이 끝나고 나면 시장에는 그만큼의 공급 공백이 발생한다. 승자들이 누리는 과실이다. 가령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 정점인 2018년 삼성전자는 58조89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치킨게임 가능성은 작아…공급망 문제” 

세계 1위 삼성이 공급량을 줄이지 않으면 메모리 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 D램 범용제품인 DDR4(1Gx8)의 지난달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1.81달러였다. 2021년 7월 4.10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반 토막 이하다. 하락세가 계속된다면 수익성은 더 떨어지고 특히 자금 여력이 부족한 기업의 피해는 더욱 커진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삼성의 결정을 ‘1등 업체의 여유’로 표현했다. 김 교수는 “다른 기업보다 손해를 덜 볼 것이란 자신감이 있어서다”라며 “후발 업체부터 타격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치킨게임이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요컨대 게임판은 훨씬 더 커졌는데, 플레이어 수는 줄어서다. 지금처럼 3~4개의 소수 업체만 남은 상황에서 한 곳이 무너지면 공급망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반도체 장비나 소재를 사줄 회사가 한두 곳 밖에 없다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에도 영향이 생긴다”라며 “일정 숫자 이상의 회사가 존재해야 하기에 치킨게임을 벌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실패할 경우 떠안게 될 손해도 커졌다. 치킨게임으로 얻는 열매보다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선 ‘삼성 피봇’에 무게  

삼성도 움직임이 있을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술적 감산이 그 시작이다.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지 않는 대신 첨단 공정 도입, 생산라인 효율화 등을 통해 출하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김선우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도 결국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 2분기 말쯤이면 메모리 공급 기조가 180도 전환될 것”이라며 “업계에서는 이를 ‘삼성피봇(pivot·전환점)’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어 “감산 정도가 아니고 투자까지도 깎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고도 전망했다.

하반기 들어서는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면 분위기가 반전될 여력도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최근 DDR5를 지원하는 인텔의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가 수요를 견인할 것”이라며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챗GPT 등 인공지능(AI)에는 처리 데이터가 많아 앞으로 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반도체다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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