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였다구?…배우 김유정 문호의 뮤즈로 변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까요? 그대는 더 사랑스럽고 따스합니다.”

무명의 극작가, 젊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한눈에 반한 비올라에게 보낸 편지의 첫 구절이다. 이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연작 소네트 18번에서 따왔다. 발코니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셰익스피어와 “달콤한 시를 더 들려달라”고 속삭이는 비올라의 이야기는 훗날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재탄생한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한 장면. 젊은 셰익스피어는 우연히 귀족들의 무도회에 참석해 비올라에게 한 눈에 반한다. 비올라 역할의 배우 김유정(왼쪽)과 셰익스피어 역할의 배우 김성철. 사진 쇼노트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한 장면. 젊은 셰익스피어는 우연히 귀족들의 무도회에 참석해 비올라에게 한 눈에 반한다. 비올라 역할의 배우 김유정(왼쪽)과 셰익스피어 역할의 배우 김성철. 사진 쇼노트

지난달 28일 개막한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직접 경험한 뒤 이를 토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작했다는 설정이다. 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출연한 1998년 원작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극작가 리 홀이 각색해 연극으로 만들어냈다. 이번 한국 초연에서는 배우 김유정·정소민·채수빈이 셰익스피어의 연인 비올라 역을, 김성철·이상이·정문성이 셰익스피어 역을 맡았다.

연극에서 원작 찾는 재미…오마주 곳곳에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소네트를 곳곳에 차용했다. 무도회에 잠입한 로미오가 줄리엣과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 수많은 작품에서 오마주됐던 발코니 사랑 고백 장면 등이 비올라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이 극장주 헨슬로를 위협하는 장면은 '베니스의 상인', 귀족 웨섹스 경이 비올라의 아빠에게 결혼 지참금을 요구하는 장면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따왔다. 셰익스피어가 비올라를 떠올리며 희곡 '십이야'를 쓰는 장면으로 연극이 끝난다.

송한샘 프로듀서는 7일 기자간담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해 관객들이 16세기의 분위기를 맛보도록 했다”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해석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클래식은 아니지만, 클래식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소환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탁자 한 가운데 젊은 셰익스피어(배우 정문성)가 희곡 작품을 쓰고 있다. 사진 쇼노트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탁자 한 가운데 젊은 셰익스피어(배우 정문성)가 희곡 작품을 쓰고 있다. 사진 쇼노트

화려한 승강 무대, 조연 감초 연기 탁월 

대작 뮤지컬 못지않게 화려한 무대 장치와 귀족들의 무도회 의상 등 볼거리가 화려하다. 16세기 영국 런던을 재현한 무대는 회전하고 상승하며 여왕의 궁전으로, 거리의 선술집으로, 비올라가 사는 저택의 발코니로 시시각각 변한다. 특히 무대 아래에 숨겨진 지하 2층 깊이의 승강 무대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비올라의 유모, 셰익스피어의 친구 말로우, 극장주 헨슬로 등 조연들의 유머러스한 감초 연기도 탁월하다.

배우 김유정은 연극 데뷔작임에도 비올라 역할을 잘해냈다는 평이다. 비올라는 여자가 직업을 가질 수 없던 시절 배우가 되기 위해 남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당찬 캐릭터다. 김유정은 남장 여자 배우 토마스 켄트와 셰익스피어의 뮤즈 비올라를 오가며 우아한 연기를 펼친다. “내가 숨 쉬는 한 이 시는 살아있을 것이며, 이 시가 그대를 살게 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셰익스피어에 “이제 나는 불멸이 되었구나”라고 독백하는 등 예스러운 대사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그는 "시적인 대사가 많아서 처음엔 어려웠지만, 연습하다 보니 대사의 표현이 와 닿는 순간이 있었다”며 “매일 조금씩 다른 비올라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유정과 함께 비올라 역할을 맡은 정소민은 “드라마는 NG가 나면 촬영을 다시 하지만 연극은 매 순간이 라이브고 모든 회차가 다르다”며 “그 생동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음달 26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