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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강렬한 리얼리스트, 트럼프는 파격적”…아베 인물평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2년 일본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국유화 갈등 이후 열린 역대 중·일 정상회담 기념 사진 모음. 2014년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양자회담 사진(왼쪽 맨 위)의 무표정한 모습과 달리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양자회담(오른쪽 맨 아래)까지 점차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중앙포토

지난 2012년 일본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국유화 갈등 이후 열린 역대 중·일 정상회담 기념 사진 모음. 2014년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양자회담 사진(왼쪽 맨 위)의 무표정한 모습과 달리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양자회담(오른쪽 맨 아래)까지 점차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중앙포토

“만약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미국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고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입당했을 것이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정당은 의미가 없다.”
지난해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安培晉三) 전 일본 총리가 생전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두고 한 말이다. 8일 발매된 『아베 신조 회고록』(이하 회고록)에서 아베 전 총리는 시 주석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그는 사상과 신조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말이 된다. 그는 강렬한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라고 평했다.

대개 중국공산당 간부는 당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전위조직에 들어간 뒤 점차 권력의 중추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는다. 이런 과정이 큰 틀에서 대의명분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시 주석은 이와 달리 철저한 현실주의자 성향을 보였다는 게 아베 전 총리의 평가다.

아베 전 총리는 시 주석 외에도 회고록 곳곳에서 자신이 만난 세계 정상들의 인물평을 남겼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파격적’이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일벌레’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쿨해 보이지만 의외로 싹싹하다”고 평가했다.

8일 일본에서 출간된 아베 신조(安培晉三) 전 일본 총리의 회고록 책 표지. 아마존 킨들 캡쳐

8일 일본에서 출간된 아베 신조(安培晉三) 전 일본 총리의 회고록 책 표지. 아마존 킨들 캡쳐

“시진핑, 2018년부터 메모 없이 발언”

아베 전 총리 회고록에 따르면, 시 주석은 2018년부터 자신감을 보였다. 아베 전 총리는 “(취임 초 회담에서 준비된 메모만 읽던 시 주석이) 2018년경부터 메모를 읽지 않고 자유롭게 발언하게 됐다. 중국 국내에 자신의 권력기반을 위협하는 존재가 이제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했다.

시 주석을 여타 권위주의 체제 지도자들과 함께 고독한 인물로 묘사한 대목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시진핑의 행동 변천을 돌아보면 그는 ‘승천한 용’”이라며 “하지만 고독감은 엄청날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선거로 교체되지만 독재정권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고 했다. 이어 “따라서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의 압박 크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며 “시진핑도, 푸틴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정적을 차례차례 무너뜨려 왔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는 합의된 정권교체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시 주석은 항상 정치체제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중국의 체제 리스크도 지적했다. 아베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시 주석이 마오쩌둥과 대등한 존재를 목표로 하는 듯 보인다’는 질문을 받고 “제(아베) 임기 동안 시진핑은 점점 자신감을 굳혀간 것 같다”며 “마오쩌둥이 경제 실정으로 기아를 일으킨 반성 때문에 중국은 덩샤오핑 시대에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지만 지금 시 주석은 다른 의견을 막고 있다. 매우 위험한 체제가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리커창 총리, 예정 없던 대화 제의”

아베 전 총리는 중국이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구상에 일본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추파(秋波)’를 보냈다면서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일화도 소개했다. 아베 전 총리가 일대일로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던 당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리 총리가 예정에 없이 다가와 “시간이 걸려 짜증이 나니 일본어 통역을 데려왔다. TV 카메라 앞을 둘이서 걸어가자”고 제안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보통 중·일간 정상급 회담은 아베 전 총리가 일본어로 말하면 일본 통역이 영어로 통역하고 상대방이 영어를 중국어로 바꾸는 절차를 거쳤지만 이날은 예외였다. 아베는 “중국은 일대일로에 일본의 협력을 얻지 못해 국제 사회에서 신용이 오르지 않는 것에 위기감을 품고 있었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아베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두고는 “어쨌든 파격적이었다”고 묘사했다. 골프를 함께 하며 트럼프와 관계 맺는 데 힘을 쓴 이유에 대해 “현실 문제로 일본이 (트럼프의) 표적이 되면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대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통화는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넘게 이어졌는데 후반의 7~8할이 골프 이야기거나 타국 정상 비판이었다고도 했다.

“마크롱, 프랑스 영토 수호 의지 강해”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해선 “오직 일만 이야기했다”면서 “솔직히 친구 같은 관계를 구축하기 어려운 유형”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서는 “블랙 조크(유머)도 자주 한다”면서 “그의 이상은 러시아 제국의 부활”이라고 지적했다.

아베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와 관련해선 중국 편중 성향이라고 지적했다. “재임 중 중국을 12번 방문했지만, 일본은 6번밖에 오지 않았다” 등 대목에서다. 그러면서 “일본은 총리가 매년 바뀌어 마땅한 타이밍을 찾기 어려웠지만, 아베 내각은 오래 이어질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는 메르켈 총리와의 일화도 소개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토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남태평양에 뉴칼레도니아와 폴리네시아 등 프랑스령이 있어 이 지역의 권익을 중국에 빼앗기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회고록은 아베 전 총리가 총리직에서 퇴임한 이후 18회, 36시간에 걸쳐 요미우리신문 간부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전 국가안전보장국장의 감수를 거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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