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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뒤따른 엄마, 배경 된 고모…김정은 옆 女 3인 '뒤바뀐 위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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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할아버지뻘 장군들을 병풍처럼 세워놓고 정중앙에 앉아 웃었고, ‘엄마’는 딸의 한 걸음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권력의 중심이었던 ‘고모’는 군중 속에서 그들을 지켜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변에 있는 여성 3인의 권력관계가 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건군절(2월 8일) 75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건군절(2월 8일) 75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ㆍ2월 8일)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김정은이 군 숙소를 방문한 동선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김정은보다 더 눈에 띈 건 김정은의 딸 김주애와 배우자 이설주, 여동생 김여정이었다.

특히 사진 속에 담긴 딸 김주애의 위상은 파격을 넘어선 모습이었다.

김주애는 양옆에 김정은과 이설주를 두고 헤드 테이블 가운데에 앉았다. 사진의 초점 역시 김정은이 아닌 김주애에 맞춰져 있다. 뒤로는 환갑이 넘은 박수일 인민군 총참모장, 강순남 국방상,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 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정자세로 섰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5돌을 맞으며 2월7일 인민군 장령(장성)들의 숙소를 축하 방문하고 기념연회에 참석했다"고 8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부인 이설주 여사와 딸 주애도 동행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5돌을 맞으며 2월7일 인민군 장령(장성)들의 숙소를 축하 방문하고 기념연회에 참석했다"고 8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부인 이설주 여사와 딸 주애도 동행했다. 뉴스1

김주애는 모친인 이설주와 완전히 같은 코드의 의상에 같은 머리 모양과 화장을 하고 있다. 다른 점을 찾자면 가르마가 이설주와 반대 방향이라는 점 정도다. 김주애는 또 김일성ㆍ김정일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도 달지 않았다. 북한에서 배지를 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김정은 외에는 이설주 정도밖에 없었다.

김주애의 동선이 노출된 건 지난해 11월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때 이후 이번에 3번째다. 그런데 북한 매체를 통해 처음에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소개됐던 김주애의 호칭은 ‘존귀한 자제분’에 이어, 이번엔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바뀌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군 숙소를 방문한 장면. 북한의 공개한 사진의 대부분에는 김정은과 배우자인 이설주가 아닌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자리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군 숙소를 방문한 장면. 북한의 공개한 사진의 대부분에는 김정은과 배우자인 이설주가 아닌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자리하고 있다. 뉴스1

현장에서 이뤄진 김정은의 연설 역시 “개척도 위대했지만 계승 또한 위대하다”는 내용의 ‘계승’에 맞춰졌다.

반면 이날 통신의 보도에선 이설주는 김주애를 부각한 사진 속에만 존재할 뿐, 별도의 소개 등 관련 언급은 없었다. 연회장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이설주는 딸의 손을 꼭 잡고 레드카펫을 걸어들어가는 김정은과 김주애보다 한걸음 뒤에 떨어져 홀로 걷는 모습이 담겼다.

7일 군 숙소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다. 배우자인 이설주는 김정은 부녀보다 한걸음 뒤에 떨어져 입장하는 모습이다. 뉴스1

7일 군 숙소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다. 배우자인 이설주는 김정은 부녀보다 한걸음 뒤에 떨어져 입장하는 모습이다. 뉴스1

일각에서 북한 유사시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돼 온 김여정의 위상은 그보다도 낮아졌다. 이날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여정을 특정해 찍은 사진은 아예 없었다. 김여정의 모습은 기념연회장의 전체 전경을 찍은 사진 속 배경으로만 등장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 속에 담긴 김여정은 검은색 드레스 코드인 김주애 모녀와 다른 흰색 옷을 착용하고 김정은 가족의 입장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며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이 전부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을 기념해 지난 7일 딸 김주애와 함께 인민군 장병들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대부분의 사진은 김정은과 그의 딸 김주애에 초점이 맞춰진 가운데, 그동안 권력에 중심에 있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은 참석자들 사이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북한 매체는 김여정에 대해선 별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을 기념해 지난 7일 딸 김주애와 함께 인민군 장병들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대부분의 사진은 김정은과 그의 딸 김주애에 초점이 맞춰진 가운데, 그동안 권력에 중심에 있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은 참석자들 사이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북한 매체는 김여정에 대해선 별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 화면

일각에선 최근 김주애가 공개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을 놓고 “이설주와 김여정 사이에서 불거진 권력 암투의 산물”이란 해석도 나온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더타임스는 지난달 27일 보도에서 김주애의 잦은 노출에 대해 “김여정이 전면에 나서자 후계 구도에서의 변수를 우려한 이설주가 불안감을 느꼈고, 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김정은이 딸과 부인을 동행하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이날 사진 속에 등장한 이설주는 자신의 딸이 부각된 사진의 배경으로 쓰이고, 딸보다 한걸음 뒤에서 걸으면서도 내내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특히 이설주는 이날 신형 ICBM인 화성-17형을 형상화한 목걸이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공교롭게 지난해 11월 진행됐던 화성-17형의 시험 발사는 그의 딸 김주애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계기이기도 하다.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군 숙소 방문에 동행한 이설주. 이설주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형상화한 목걸이(붉은 원)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군 숙소 방문에 동행한 이설주. 이설주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형상화한 목걸이(붉은 원)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이설주는 백두혈통인 남편과 딸을 보필하는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자신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후계구도와 권력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정은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확정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상황에서 김주애가 최고 통치자가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특정 분야에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황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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