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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청탁도 없으니 기간제부터" 임용 응시자 울린 이말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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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청탁 전화가 온 것도 아니고, 당장 20분 면접으로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공립학교는 성적 좋고 수업 잘하는 사람 뽑지만, 사립은 달라요. 사립학교에서 일하려면 기간제 교사로 먼저 시작해 일하다가 임용되는 게 맞죠.”

[연합뉴스]

[연합뉴스]

지난달 부산의 한 사립학교 교원 임용 면접에서 교감 A씨가 지원자에게 한 발언이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에 응한 B씨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B씨는 “기간제 교사로 먼저 시작해 열심히 일해야 정교사 전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곧장 정교사로는) 뽑아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부산시교육청 ‘문제 발언’ 조사 착수

부산시교육청은 해당 사립학교 A 교감 발언과 관련해 사실관계 조사에 착수했다고 8일 밝혔다. 시험에 참여한 일부 응시자들이 “채용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고 시험 과정에서 공정성 관리도 허술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조사가 시작됐다.

해당 사립학교는 부산ㆍ경남 지역에서 ‘명문’으로 불리는 학교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이 학교는 1차 필기시험을 시교육청에 위탁해 치렀다. 국어와 수학, 영어, 도덕ㆍ윤리 등 4과목 교원을 모집 공고했다. 지난달 11일부터 이틀간 교수지도안 작성과 수업시연, 심층 면접 등 2차 시험 과정을 진행했다. 도덕ㆍ윤리 과목 응시자를 대상으로 한 면접에서 문제의 A 교감 발언이 나왔고 실제 해당 과목 교원은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부산시교육청은 파악했다.

해당 학교 측은 “사립학교는 관련법에 따라 특수성을 보장받는다. 본교 건학이념과 이에 맞는 교원상 등이 면접 전형 범위로 명시돼있다. 관련 내용을 설명하던 중 기간제 교사 발언 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응시자 측에서 발언 취지를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부산시교육청에 전달했다.

전후 사실관계 조사를 마치면 부산시교육청은 응시생 민원에 답변해야 하며, 학교 측에는 필요하면 감사 의뢰 등 조처를 할 수 있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채용 공정성 등 관련 매뉴얼을 업데이트했으며, 사립학교에 안내할 예정이다. 조치 수위는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기간제 노예 뽑나” 예비 교원 낙담 깊다

이 같은 사실이 중등 임용을 준비생 커뮤니티 등에서 알려지자 예비 교원들은 크게 낙담하고 있다. 한 준비생은 “어렵게 사범대에 입학해 선생님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임용을 준비하며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이 크게 꺾인다”는 의견을 남겼다.

실제 예비 교원들의 취업 여건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부산에선 부산대와 신라대 사범대 24개 학과에서 해마다 졸업생 350여명이 배출된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5년간 매년 230~330명 규모로 중등 교원을 뽑았다. 한 사범대 관계자는 “공립ㆍ사립 할 것 없이 졸업 때 맞춰 임용되는 사례는 드물다. 해마다 선발 인원보다 많은 졸업생이 배출되는데, 학령인구 감소로 임용 적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사립학교 재단의 ‘갑질’이 더 심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남 김해 한 고교에서 일하는 30대 기간제 교사는 “사립학교는 암묵적으로 청탁이 작용하거나 ‘선(先)기간제 후(後)채용’ 구조를 당연시할 때가 많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동안 노예 부리듯 오만 잡무를 몰아주며 ‘내년엔 정규직 전환이 될 것’이라고 희망고문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신라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2년째 임용고시 공부를 하는 한 예비 교원은 “임용 여건이 워낙 어려우니 교사의 꿈을 접고 교육행정 공무원 등으로 진로를 돌리는 후배들이 늘어 안타깝다. 예비 교원 약점을 악용하는 일부 사립학교 재단 행태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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