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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FDA 속여 주가 1079% 훌쩍…카이스트 출신 '코로나 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확도를 2배 부풀린 진단키트, 배양액도 없는 검체수송배지…. 코로나19 대유행 때 6개월 만에 주가가 1079% 뛴 어느 ‘코로나19 테마주’의 실상은 이랬다. 그조차도 직접 만든 게 아니었다. 체외진단의료기기(진단키트·검체수송배지)를 자체 생산할 기술·인력·설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조된 서명과 조작된 자료만으로 한·미 보건당국을 감쪽같이 속였다. 그렇게 주가를 부양해 수백억대 돈 놀음을 한 일당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이 지난달 25일 구속기소한 코스닥 상장사 피에이치씨(PHC) 주가조작 사건 얘기다.

8일 중앙일보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PHC 주가조작 사건 공소장 등에 따르면, PHC의 대표는 최모(50)씨이지만 검찰은 기업사냥꾼 이모(55)씨가 이 회사의 실소유주라고 의심하고 있다. 최씨와 이씨, 그리고 이씨의 측근인 김모(51)씨는 모두 필로시스 경영진이었다. 필로시스는 최씨가 2003년 설립한 회사다.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딴 최씨는 간편하게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혈당측정기를 개발했다. 필로시스는 혈당측정기를 국내에 유통하는 한편 수출도 했다. 최씨는 지역 신문사에 ‘우리시대의 성공기업인’으로 소개되는 등 나름 명성을 얻기도 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수요가 급증했던 자가진단 키트 업체의 주가를 띄워 조작한 의료기기 업체 피에이치씨(PHC) 대표 최모씨가 지난해 12월 28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유행 당시 수요가 급증했던 자가진단 키트 업체의 주가를 띄워 조작한 의료기기 업체 피에이치씨(PHC) 대표 최모씨가 지난해 12월 28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최씨의 인생은 기업사냥꾼 이씨가 필로시스의 경영진으로 들어오면서 바뀌었다. 기업사냥꾼이란 헐값에 기업을 인수한 뒤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해 부당이득을 거두거나 비싼 값에 기업을 팔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자들을 뜻한다. 이씨는 필로시스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서 점점 회사를 지배했고, 최씨·김씨 등과 짜고 당시 토필드라는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필로시스를 우회 상장하기로 했다. 전도유망한 바이오 분야 사업을 띄워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의도였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들은 2019년 5월 토필드를 무자본으로 인수한 뒤 사명을 필로시스헬스케어, 현재의 PHC로 바꿨다. 당시 PHC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회사라 전망이 밝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들은 당시 수요가 폭증하던 체외진단의료기기에 주목했다. 이를 생산해 수출까지 하는 이른바 ‘코로나19 테마주’로 알려지면 주가가 큰 폭으로 뛸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필로시스가 혈당측정기 제조·개발 회사일 뿐 체외진단의료기기를 자체 생산할 능력이 전혀 없었단 점이다.

결국 최씨 일당은 2020년 3월 최모(43) 대표가 운영하는 바이오 업체 비비비가 개발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납품받아 마치 필로시스가 자체 개발한 것처럼 위장했다. 특허를 출원하고 유럽 체외진단시약(CE-IVD) 인증을 받았다는 허위 보도자료를 냈다. 2020년 5월엔 검체정보와 시험결과를 조작한 자료에 현직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의 서명을 위조해서 넣는 방식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수출용 제조허가를 받았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자가진단키트 업체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의료기기 업체 피에이치씨(PHC) 관련자 최모 시스웍 대표, 이모 필로시스 대표, 김모씨가 지난달 4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유행 당시 자가진단키트 업체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의료기기 업체 피에이치씨(PHC) 관련자 최모 시스웍 대표, 이모 필로시스 대표, 김모씨가 지난달 4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들의 사기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검체수송배지였다. 검체수송배지는 튜브·배양액·면봉 등으로 이뤄진 제품이다. 이들은 2020년 8월 다른 업체에서 만든 코로나19 검체수송배지를 필로시스가 자체 생산한 것처럼 위장했다. 교묘히 조작된 임상적 성능시험 결과보고서 등 자료를 만든 뒤 현직 의사의 서명을 위조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판매업체등록(Listing) 통지를 받았다. 판매업체로 등록한 것일 뿐이지만, 실사 등 요건이 까다로운 FDA 허가(Approved)를 받았다고 허위 보도자료를 뿌리고 공시도 했다.

PHC의 주가는 호재성 정보에 힘입어 2020년 3월~9월 1079%(3월 19일 기준 종가 775원→9월 9일 기준 종가 9140원)나 올랐다. 이후 이들은 PHC를 인수할 때 활용한 페이퍼컴퍼니 등 다른 회사 명의 계좌로 PHC 주식을 팔아 총 214억원의 이득을 거뒀다. 2021년 1월엔 진단키트의 양성반응 민감도(양성 검체를 양성으로 진단하는 비율)를 43.7%에서 87.5%로 뻥튀기해 식약처의 수출용 허가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PHC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비비비의 최 대표는 2020년 9월 코스닥 상장사 시스웍을 무자본 인수했는데, 그 무렵부터 PHC의 주가 부양과 유지를 위해 시스웍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필로시스는 2020년 10월 검체수송배지 300만개를 PHC에 66억원에 넘기고, PHC는 다시 이를 시스웍에 132억원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필로시스가 만들었다는 검체수송배지는 정작 핵심 구성품인 배양액도 없는 엉터리였다. 튜브와 면봉, 캡 등 원부자재를 사들여 그대로 포장해 필로시스 로고가 붙은 박스로 교체만 한 것이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최모 PHC 대표 배후로 지목된 기업사냥꾼 이모씨에 대한 수사를 계속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검 본관의 모습. 뉴스1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최모 PHC 대표 배후로 지목된 기업사냥꾼 이모씨에 대한 수사를 계속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검 본관의 모습. 뉴스1

이 모든 게 당시 상폐 위기에 몰린 PHC의 영업이익을 허위로 꾸며내기 위한 것이었단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들은 외부감사에 나선 회계사에게도 정상적인 검체수송배지라고 속여 외부감사를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비비비의 최 대표가 갑자기 최씨 일당에 포섭된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최 대표도 PHC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최씨의 배후로 지목된 기업사냥꾼 이씨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은 이씨 등을 통해 시스웍에 대한 무자본 인수 과정을 비롯해 기업사냥꾼 세력의 손길이 미친 곳을 추가로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PHC와 시스웍은 지난해 3월 2021년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인 감사의견이 ‘의견거절’로 나오면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현재 거래 정지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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