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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의 싱가포르서 보는 중국] 싱가포르와 중국

중앙일보

입력

싱가포르. 사진 셔터스톡

싱가포르. 사진 셔터스톡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학교 차원에서 “Happy Lunar New Year (음력 설을 축하합니다)”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하였는데 일부 중국(중화인민공화국) 학생들이 이를 훼손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 학생들의 과도한 국수주의는 비단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한국 등 전세계의 문젯거리가 되고 있다. 음력 설이라는 개념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베트남, 몽골 등 중국과 민족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사용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Chinese (중국)”보다는 “Lunar (음력)”을 사용하는 것이 다양성을 더 존중하는 행위일 것이다.

이를 필자의 수업에서 설명하자 즉시 한 중국 학생이 반대를 한다. “그것은 교수님이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중국 문화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겁니다.” 학생의 용기를 칭찬하며 필자는 재차 물었다. 티베트인들과 위구르족은 음력 설을 쇠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은 “중국”인이 아닌가? 중국 신년이라고 하면 이들도 포함해야 되지 않겠나? 명절에 국가 명칭을 넣으면 이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한 싱가포르 학생이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 CNY (Chinese New Year)가 있는 주에 수업하나요?”

사실 이는 중국어를 영어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라고 볼 수 있다. “중화민족”으로서의 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의 중국을 모두 “Chinese”라고 혼용한 결과이다. 싱가포르에서 사용하는 “Chinese”라는 개념은 “중국인(중화인민공화국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중화민족(華人)”을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이며 전 인구의 75%가 중국계 “화인”이다. 인도계, 말레이시아계 사람들과 자신들을 비교하기 위해서 “Chinese”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지, 그들이 중국 학생들과 같이 국수주의의 의미를 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싱가포르 중국계들은 자신들을 “Chinese”라고 지칭하면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람들을 “신거주민” 아니면 “기타” 항목으로 분류한다.

싱가포르 대중들에게 중국이란?

따라서 싱가포르 사람에게 “중국”을 좋아하나요? 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싱가포르는 왜 중국을 좋아할까?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 태도와 무분별한 확장 정책, 동남아 전반의 경제적 침투 및 압박, 독재정부의 인권 및 소수 민족 탄압 등 중국 외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싱가포르 일반 대중들은 “중화민족으로서의 중국,” “덩샤오핑 이후 개혁개방의 중국,” 그리고 “시진핑 정권으로서의 중국”을 분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국”에 대한 호감은 “중화민족으로서의 중국”에서 온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싱가포르 기성 세대들은 중국에 대한 호감이 확실한 편이다. 그들은 덩샤오핑 이후 개혁개방 시대의 중국의 발전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그 당시 중국은 싱가포르와의 관계도 매우 좋았다. 싱가포르의 국부라고 할 수 있는 리콴유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지지했으며, 덩 역시 리콴유 치하의 싱가포르를 중국의 롤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근 40년 이상 중국과 싱가포르의 긴밀한 관계는 많은 싱가포르 사람들을 매료 시켰으며, 서방 민주주의 국가와 구별된 동양의 “중국계 권위주의” 국가끼리의 협의를 더욱 더 가속시켰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자신들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중화민족의 부상을, 그리고 정치적으로 가까운 권위주의 국가의 발전을 목도하며 “중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싱가포르 엘리트들에게 중국이란?

하지만 시진핑 주도 하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은 많은 싱가포르 엘리트들과 전문가들에게 중국의 우호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였다. 특히 싱가포르의 비중국계 엘리트들은 싱가포르 정부에게 중국에 대해 더욱 더 자주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대부분 중국계이지만, 역사적으로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비중국계인들이 차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인구의 비율보다 더 많은 비중국계를 정부 관료 및 전문가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과 민족적 문화적 연관이 없는 이러한 비중국계 엘리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철저히 안보 및 경제적 분야이며, 최근 중국의 무차별적인 남중국해 병합 시도와 일대일로를 통한 경제적 침투는 그들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중국계 엘리트들 조차도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싱가포르 국내 정치의 상황은 싱가포르와 중국의 관계를 더욱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싱가포르 정부는 시진핑의 남중국해 전략과 일대일로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왔으며, 그 결과 2017년도 베이징에서 개최한 일대일로 포럼에 시진핑은 싱가포르 총리 리센롱을 초청조차 하지 않았다. 싱가포르 국방부 역시 “Project Starlight”라는 이름 하에 대만과의 군사 협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야당들은 그들의 반중국 정서를 국내 정치에서 표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세대 차이는 싱가포르-중국 관계를 더욱 더 비관적으로 보게 한다. 기성 세대와는 달리 시진핑의 중국만을 관찰해 온 젊은 세대들은 중국에 관해 호감이 높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들의 “화인”으로서의 특성 역시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자신들을 끊임 없이 “중국인”들과 구별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중국어를 쓰는 젊은 중국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싱가포르와 중국의 관계는 특별하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 역시 싱가포르이며, 향후 미국과 중국 경쟁의 중심지가 될 곳도 싱가포르이고, 향후 중국이 세계와의 재접촉을 희망할 때 찾을 국가도 싱가포르일 것이다.

이종혁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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