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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 잘못이었다"…'제2의 대처' 컴백 노리나, 입 연 전 英총리

중앙일보

입력

'최단기 재임'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5일(현지시간)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AP=연합뉴스

'최단기 재임'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5일(현지시간)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AP=연합뉴스

영국 최초의 40대 여성 총리로 ‘제2의 마거릿 대처’가 되리란 기대를 모았지만 취임 45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던 리즈 트러스(47)가 사임 뒤 처음으로 입장을 내놨다. 그는 퇴임의 도화선이 됐던 ‘감세 정책’에 대해 “위험 요소를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재무부에 책임을 돌렸다. 한동안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던 그가 적극적으로 입을 연 것에 대해 ‘정치적 재기’를 노린 것이란 분석과 함께, 책임 회피만으론 민심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함께 나온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트러스는 5일(현지시간)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장문의 글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다. 그는 먼저 당시 재무부에 화살을 돌렸다. “재무부는 감세 정책안을 준비하는 어떤 시점에도 부채연계투자(LDI)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정책 발표 뒤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나서야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주장했다.

트러스는 기고문에서 재임 당시 재무부를 비롯한 영국 경제 기득권층 때문에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트러스는 기고문에서 재임 당시 재무부를 비롯한 영국 경제 기득권층 때문에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이어 ‘영국 경제 기득권층’을 저격했다. 이들 때문에 정책을 실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정치적으로도 지원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우닝가(총리 관저)에 들어올 때 나는 내 일이 존중 받고 수용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틀렸다”며 “슬프게도 재무부엔 영국의 경제 성장 잠재력에 대한 회의론이 만연해있었다”고 말했다.

트러스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법인세ㆍ소득세 인하 등을 골자로 하는 ‘미니 예산’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감세로 줄어든 재정을 메꾸는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고, 금융 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세율과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는 폭락했다. 결국 트러스는 쿼지콰텡 당시 재무부 장관을 경질하고 ‘정책 유턴’을 시도했지만,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사임했다.

리즈 트러스를 조롱하는 취지의 조각상. 그의 '미니 예산'으로 영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의 어깨엔 최단기 재임 기간을 비꼬는 양배추도 얹혀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즈 트러스를 조롱하는 취지의 조각상. 그의 '미니 예산'으로 영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의 어깨엔 최단기 재임 기간을 비꼬는 양배추도 얹혀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영국의 경제 성장은 올해 세계 주요국가 중 가장 낮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EO)에 따르면,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6%다. 이는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낮은 성적표다. 영국 BBC는 “트러스 총리 시절 대규모 감세 발표로 금융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고, 이어 영국 경제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러스 정권 때문에 영국 경제는 여전히 ‘멍청이 프리미엄(moron premium)’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트러스의 주장을 두고 ‘책임 회피’라는 비판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찰스 리드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당시 금리 급등 등 부작용을 콰텡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영국은행의 통화정책위원을 역임했던 그레이엄 블란치플라워 다트머스대 교수도 “영국 경제를 칼날처럼 취약하다고 폭로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장에 참석한 리즈 트러스(왼쪽) 전 총리와 전임인 보리스 존슨. 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장에 참석한 리즈 트러스(왼쪽) 전 총리와 전임인 보리스 존슨. AP=연합뉴스

트러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시대의 마지막 총리이자, 찰스 3세 국왕 시대의 첫 총리였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빨리 퇴진하면서 여왕의 장례를 치른 것이 유일한 업적이라는 조롱도 받았다. 당시 “그의 임기는 양배추 유통기한보다 짧다”는 내용의 밈(인터넷 유행 콘텐트)이 화제가 됐다. 트러스 전까진 19세기 초 총리를 역임한 조지 캐닝이 취임 119일 만에 사망해 최단기 기록을 보유했다.

트러스는 영국 정치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옥스퍼드대 PPE(철학·정치·경제 전공) 출신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정치인을 꿈꿨던 것으로 유명하다. 10대에 부모와 핵무기 폐지 집회에 참여할 정도로 확고한 진보 성향이었지만, 보수당으로 전향한 뒤 성공 가도를 달렸다. 35세에 하원 입성한 뒤 재무·환경·교육·외무·국제통상 등 장관직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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